일본이 폐기한 '토건국가' 길로 가는 한국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0. 4. 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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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의 빚이 급증하고 있다. 지방정부들은 초대형 토건 사업을 동시 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지방공기업에 공약 사업을 떠넘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한 해 1조원대 빚을 진 인천시를 중심으로 '토건국가 대한민국'을 점검한다.

글 싣는 순서1) '인천에 상륙한 '토건 포퓰리즘'

2) 일본이 폐기한 '토건국가' 길로 가는 한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토목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빚을 끌어들이면서, 한국이 자칫 '일본식 토건국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원래 '토건국가'는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몰락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이다. 일본이라는 토건국가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저축을 지방정부를 매개로 건설회사에 몰아주었다. 건설사들은 이런 공사를 발주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 관료 등과 결탁하면서 시장 수익 이상의 성과를 얻는다. 그리고 이런 성과의 일부를 지역 주민들에게 '부스러기'로 나눠준다. 단기적이긴 하나 일자리를 창출해서 소득을 이전하고 지역경기에 붐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 토건국가는 성장동력이자 사회통합 기제였다. 변형된 케인즈주의이며, 대다수 국민이 혜택을 누린 강력한 포퓰리즘 체제이기도 했다. 일본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매년 40조~50조엔(400조~500조원)을 토건사업에 쏟아 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체 노동인구의 10%인 1백만여 명이 이 부문에서 직간접적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송도국제도시 진입도로, 지하철 공사 현장, 공유수면 매립공사 현장

거품이 터진 199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격심해진다. 어떻게 보면 불황으로 없어진 일자리와 소득을 토건사업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시 단위의 지방정부들이 민관합자 방식을 통해 1천억~2천억엔(1조~2조원) 대의 거대한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미야자키현이 세계 최대의 테마파크로 조성한다고 공언했던 '시 가이아 오션 돔'. 그러나 이 사업은 2001년 초 2천760억엔(2조7000억원)의 채무만 남기고 중단된다. 시설은 미국 회사에 불과 18억엔(180억원)으로 팔렸다. 1990년대에 일본 지방정부들의 채무는 70조엔에서 187조엔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1998년에 발표한 '국토 그랜드 디자인'에서도 초대형 토건사업들을 계획했다.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한국의 '4대강 사업'을 연상케하는 '슈퍼 제방' 프로젝트다. 치수 안전도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의 주요 강들을 따라 '슈퍼 제방'을 쌓겠다는 계획이다. '슈퍼 제방'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방을 쌓은 뒤 수백m 규모로 흙을 쌓는 방식으로 사실상 국토를 바꾼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동아시아 연구자인 개빈 맥코맥은 이에 대해 "2백년에 한번 발생하는 대홍수에 대비해서 일본의 주요 강을 따라 '슈퍼 제방'을 쌓는다는 정신병리학적 계획 … 완공에 1천년이 걸린다는 계획표를 짜기는 했다"고 냉소한다.

이러다보니 일본의 국가채무(중앙정부+지방정부)는 GDP의 150%를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대부분 토건사업에서 진 빚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토건에서 복지로 방향타를 돌리고 있지만 세계사적으로 초유인 거대 규모 부채는 이후 일본 국민경제의 운신을 극도로 제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본식 토건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자민당-건설사-금융사로 이루어지는 '철의 삼각동맹'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공자금(국민의 돈)으로 초대형 건설사업을 주도하며 이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사익'을 취하고, 그 결과엔 절대 책임 지지 않는다. 이런 토건국가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작동 중이라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인천시가 지난해 초대형 토목건설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빌린 1조원 중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의 자금이다. 중앙정부에 모인 세금이 지방정부에 채무의 형태로 이전되면서 초대형 토건사업을 일으키고, '지역 경기'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엔 수많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이 얽혀 있다. 중앙 및 지방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이 된다. 문자 그대로 '토건 포퓰리즘'이다.

한국의 공공 건설사업들에서도 행정권력-정치권-건설사가 긴밀히 결탁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예컨대 경실련 신영철 정책위원은 공공 건설사업에서 정부 측이 건설사에 주는 공사비가 실제 시장 가격보다 크게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토목공사 중 덤프운반, 발파 등만 봐도 공사비가 실제 시장가격보다 2배 이상 부풀려져 있다. 이런 구조 하에서 건설업체들은 단지 수주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청와대 일상화된 초대형 토목사업은 토건국가의 특징이다. 경인운하 공사장.

이런 특혜적 제도 하에서 과다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계속 늘어나고, 정치인과 관료가 지대(rent)를 취할 여지를 발견하며, 국가 전체적으로는 과도한 공사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토건사업을 주도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부채가 도산으로 폭발할 시점에 '그 자리'에 없으면 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공기업의 대주주지만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인천 경실련 김송운 사무처장은 "현재 인천도개공이 추진하고 있는 송도 국제화복합단지, 영종물류산업단지 등 다수의 토목사업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안상수 후보의 공약사항이었다"고 말한다. 지방공기업이 지방정부의 한 부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비용 22조원 중 수자원공사에 8조원을 떠맡긴 것과 비슷한 사례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일본 토건국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사'에서 완료된다. 인천도개공의 2대 사장은 인천시 도시계획국장, 3대 사장은 행정부시장, 현임 4대 어윤덕 사장은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모두 '안상수 시장의 남자'이다.

그리고 일본의 토건국가 시스템은 장기 불황이라는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른 산업이 적절한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토건국가라는 포퓰리즘으로 돈을 뿌린 것이다. 실업과 양극화는 토건 포퓰리즘의 다른 얼굴이며, 한국도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토건국가의 대안으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토건 부문에 대한 거대 투자를 복지로 돌려 성장 잠재력을 재구축하자는 것이다. 참여예산제, 예산실명제 등을 통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지출을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만드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박준복 정책위원장은 "인천의 경우, 사회복지 재원을 일반회계 자체재원의 5% 미만에서 6%로 늘리고, 행사성·낭비성 예산을 줄이며, 순세계잉여금을 사회복지 예산으로 이월 활용하면 .전면적 무상급식, 아동수당, 보육 강화 등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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