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짓눌린 대한민국 우리 엄마 아빠는 빚쟁이

이철현·이은지 기자 lee@sisapress.com 2010. 3. 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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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허경미

이와 달리 한국 기업은 사상 최대의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 세계 금융 위기나 경영권 위협 같은 돌발 악재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보니 경제와 기업이 성장할수록 가계가 가난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금, 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계 자산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 시사저널 > 은 국내 자산 관리 전문가들을 만나 가계 빚 급증이 초래할 위기를 밝히고 가계 차원의 대책을 알아보았다.

대한민국 가계(4인 가구 기준)는 지금 가구당 6천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전체 가계가 지고 있는 빚은 7백33조6천6백억원(지난해 말 기준)이 넘는다. 가계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6.6~11.6% 늘었다. 가계가 벌어들이는 실질 소득은 지난해 월 3백5만원이다. 세계 금융 위기 탓에 지난해 실질 소득은 1.3% 줄었다. 소득은 줄어들고 빚은 늘어나니, 가계는 가난해지고 엄마·아빠는 빚쟁이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내 10대 대기업 집단 산하 계열사들은 자본금의 15배가 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 시사저널 > 이 집계한 국내 기업 이익잉여금 현황(지난해 말 기준)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은 3백조원이 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57쪽 표 참조). 삼성전자가 63조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 빚의 비율, 세계 두 번째로 높아

가계 빚은 지난 2000년 초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계 빚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금리가 낮고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자 빚을 내서 집을 산 이가 많은 탓이다. 은행도 거들었다.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앞다투어 쏟아낸 것이다.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므로 떼일 염려가 없어 은행은 무위험 상품인 주택담보대출 판매에 열을 올렸다. 기업 대출보다 가계 금융에 치중한다는 비난까지 감수했다. 집값이 오르면 소비 지출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자산 가치가 오르니 소득 효과로 인해 소비 성향이 커진 탓이다. 이 와중에 원화 가치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해외여행이 크게 늘었고, 과소비 행태까지 만연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가계 빚이 2000년에 비해 3.42배 늘어났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지난해 1분기 살짝 줄었으나 2분기에 들어서자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2분기에서 4분기 사이에 가계 빚은 50조원이 늘어났다.

은행 주택 자금 대출 창구에서 고객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계 빚이 크게 늘어나면서 가계 재무 구조가 나빠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말,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 빚의 비율이 1백50%나 되었다. 한 해 벌어들인 개인 소득에서 세금을 내고나니까 빚이 1.5배 많아진 것이다. 이 비율은 한국이 세계 2위이다. 전세계 국가 가운데 영국만이 1백70%로 한국보다 높다. 한국 가계가 지닌 자산에서 금융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45%이다. 자산 가운데 절반가량이 빚이라는 뜻이다. 일본 20% 초반, 미국 30%, 영국 35% 등 가계 빚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훨씬 높다.

자산 가운데 빚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빚을 갚는 데 드는 비용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률이 상당히 높은 나라로 손꼽힌다. 원리금 상환 부담률은 총소득에서 빚을 갚는 데 드는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일컫는다. 한국의 원리금 상환 부담률은 15%를 웃돈다.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파생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시달리는 미국이 13%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금리가 오르면 가계가 갚아야 할 빚은 늘어난다. 경제 당국은 올해 안에 출구 전략을 실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구 전략은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해 경기 안정을 꾀하는 방안으로 금리 인상이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금리가 1% 오르면 가계가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7조3천억원이 넘는다. 가계 대출 금리가 지난 2008년 말 수준(7.13%)까지 올라간다면 가계가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12조원이 넘는다. 가계(4인 가족 기준)당 추가 비용이 99만원을 웃도는 것이다.

가계 빚이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초 여건이 취약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 한국 경제가 금융 위기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집값이 안정된 덕에 가계 빚이라는 뇌관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가계 빚이라는 뇌관을 건드리면 한국 경제는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세계 금융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해외 시장 의존도가 70%에 이르는 한국 경제에게 '남유럽 국가 재정 위기' 같은 해외 돌발 변수는 악재이다. 가계 빚 탓에 영국 경제는 지금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이 폭락한 탓에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다.

한국의 가계 실태는 영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나은 것이 없다. 국내 가계 자산은 집이나 땅 같은 실물 자산에 기초한다. 이 탓에 시장 여건이 나빠지더라도 현금화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경기가 빠르게 후퇴하면서 고용 시장이 불안해지면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자칫 집값이 급락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집을 팔아 빚을 갚기가 쉽지 않게 된다.

"정부는 중산층이 실물 자산 현금화할 제도 마련해줘야"

국내 자산운용 전문가들은 "집값은 앞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산 80%를 집에 투자하고 있다. 이 세대가 은퇴하면서 자녀 결혼 자금이나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내놓고 있으나 매물을 받아줄 세대가 없다. 35~50세 연령층은 줄어들고 있다. 대형 평형 위주로 시장에 물량이 나오고 있으나 매수 주체는 적다 보니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현수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차장은 "과거처럼 집값이 오르면 시세 차익이라도 거두기 위해서 빚을 내어 집을 샀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정체되어 있으면 자산을 구조조정해 빚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계 빚의 62% 이상이 소득 상위 4, 5분위가 보유하고 있다. 자산운용 전문가들은 "정부는 가계 빚의 비중이 높은 중산층이 실물 자산을 현금화할 제도나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가계는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실물 자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예금 위주 금융 자산에서 탈피하고 주식, 보험, 연금처럼 자본 시장 상품을 적절히 배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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