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올림픽 종합 5위가 아니라 7위가 맞다?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2010. 3. 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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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는 금메달리스트들이 앉았다. 앞줄 가운데에는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 줄에는 은·동메달 리스트가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 줄에는 코치들이 앉았다. 3월2일 있었던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장 풍경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누리꾼들이 주목한 이는 곽민정 선수였다. 곽 선수는 이번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13위를 차지하며 '제2의 김연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앉지도 못하고 단상 옆에 그냥 서 있었다. 카메라와 기자들의 시선은 메달리스트들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필자는 텔레비전 화면 언저리에 서 있는 곽 선수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카메라 풀 샷 장면에서 가끔 그녀의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곽 선수에게 질문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따르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힘들어하던 곽 선수는 회견이 끝날 무렵 결국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 모습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와 누리꾼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1등만 기억하는 언론'이 되려는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기자회견(위) 방식에 대해 누리꾼과 블로거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메달리스트만 참석하는 기자회견인데 일부 착오가 있었다"라는 것이 기자회견을 주관한 대한체육회의 해명이다. 이해한다. 분명 착오였을 거다. 하지만 그 착오라는 말이 더 불편하게 다가왔다. 메달을 딴 선수들만 기자회견을 할 자격이 있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봅슬레이에 출전한 선수들이 선전(19위)했음에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을 메달의 색깔에 따라 자리를 배치한 건 이날 기자회견의 최대 압권이었다. 누가 봐도 금·은·동이라는 서열을 매긴 순서라는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말은 '외교적 멘트'일 뿐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스포츠 관계자들의 속내가 어떤지 이날 기자회견은 정확히 보여줬다.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국내 미디어의 반응이었다. 당시 회견에서 일부 방송 관계자들의 수준 낮은 질문은 그냥 웃어넘긴다 해도, 이런 식의 기자회견 방식에 대해 누군가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선수단의 활짝 웃는 사진과 메달리스트들의 답변 내용 위주로 지면과 화면을 채웠다. 메달을 딴 선수들 위주의 환영 기자회견에 대한 질책과 반성의 목소리는 오히려 블로거들과 누리꾼들로부터 나왔다. 제도권 언론인들의 시각과 감수성이 블로거들의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은 종합순위 7위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여전히 종합순위 5위로 보도한다. 전체 메달 획득 수가 아닌 금메달 위주의 집계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메달 집계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이 금메달 위주의 집계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은 '1등'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메달리스트, 특히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 중심의 기자회견은 앞으로 계속될지 모른다. 이 말은 '제2의 곽민정'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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