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왕산 참사 현장엔 다시 억새 무성
연합뉴스주민 등 "아픔 다시 없길"..창녕 공무원들 "다시 떠올리기 싫어 언급 기피"
(창녕=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다시는 그 같은 참사가 없도록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8일 경남 창녕군 화왕산(火旺山.해발 757m)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 박모(62) 씨 부부는 1년전 88명의 사상자가 난 억새 태우기 행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참사 발생 1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화왕산에는 짙은 안개 속에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렸다.
산 정상의 광활한 억새평원은 새까맣게 타버렸던 당시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억새들이 어른 키 만큼 쑥 자라있었다.
참사 당일 인명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정상 부근 배바위에도 바짝 마른 억새들이 비바람에 흩날리며 그날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배바위는 비를 맞아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듯 아찔했지만 여전히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 설치돼 있지 않았다.
거센 불길에 휩싸였던 정상에는 이제 봄의 전령인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파란 풀들이 쏟아나오는 등 새로운 생명들이 그날의 아픔을 묻고 있었다.
화왕산 등산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 김모(58) 씨는 "참사 이후 등산객들의 발길이 한동안 뚝 끊어져 가게 곳곳이 문을 닫는 등 이 지역 주민들도 긴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다시 화왕산이 힘찬 기운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왕산 아래에 위치한 창녕군청에서는 참사 1주년을 하루 앞둔 상황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업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군청 관계자는 "솔직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큰 아픔이어서 직원들 모두 언급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 군청의 일정에도 `화왕산 참사'와 관련한 것은 일절 없다.
참사 당일 화왕산 정상 배바위 주변 행사 안전요원으로 투입됐다가 순직한 군청 직원 故 윤순달(당시 환경직 7급) 씨 등에 대한 1주기 위령제를 검토했던 공무원노조 창녕군지부도 최근 운영위원회를 통해 공식행사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노조 석상훈 창녕군지부장은 "일년전 화왕산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6.2 지방선거에서 이슈화해 정치적인 공방거리가 될 소지가 높아 고심 끝에 위령제 등을 갖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군민 조모(58.창녕군 창녕읍) 씨는 "한해의 액운을 막아주고 만복을 기원하는 전국 최고의 정월대보름 행사가 한순간의 방심으로 참사를 빚고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철저하고 안전한 예방책을 마련해 그 멋진 우리 군의 자랑이던 정월대보름날 행사가 다시 부활되길 소망해 본다"고 말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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