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비행기는 '하청 노동자'가 띄운다

입력 2010. 1. 19. 08:10 수정 2010. 1. 1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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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산업계 전반 확산되는 사내하청] 상

공사직원 6900여명중 6000명 비정규직

환경미화·보안요원 등 3년마다 '고용불안'

"공사 기간제면 정규직 전환 꿈이라도 꾸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노동부 통계에 잡힌 300명 이상 사업장 36만8590여명 외에 중소규모 사업장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계약은 하청업체와 맺지만 일은 원청업체에서 하면서 불리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공항 직원'이 아니라 '영종도 직원'이라고 말한다. 탑승교를 비행기에 연결하는 운전기사도, 비행기에 짐을 싣는 노동자도, 엑스선으로 보안검색을 하는 요원도 법적으로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식 직원이 아니다. 이들은 "영종도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 하청노동의 계류장

18일 비행기가 계류장으로 들어오자 김인국(가명)씨는 조이스틱을 조종해 탑승교를 움직였다. 그가 비행기 문을 연결하자, 승객들은 연결통로를 통해 게이트로 쏟아져 나왔다. 탑승교는 승객이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도록 설치된 구름다리 형태의 연결통로다.

비행기가 엔진을 끄고 나서야 그는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비행기가 없을 때 탑승교 운전 노동자들이 대기하는 공간은 난방이 되지 않는다. 야간조 노동자들이 쉬는 공간도 비좁다. 이들은 매트리스 2장 위에서 3명이 함께 잔다.

추위나 '칼잠'보다 서러운 것은 3년마다 오는 재계약이다. "공항에서 일한다고 주변에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항이라고 하면 전부 높은 월급을 받는 정규직인 줄 아니까." 인천공항에서 일한 지 벌써 9년째. 하지만 김씨는 올해 새 업체와 계약을 하고 다시 '신입'이 됐다. 노조가 교섭을 벌여 호봉은 인정받았지만, 연차휴가는 19일에서 다시 '1년차'인 14일로 줄었다. 그는 "공사에서 기간제로 일하면 2년 뒤 정규직 전환이라도 되지만, 우리에겐 아무 희망도 없다"고 말했다.

■ 노동3권의 바깥

"테러 같은 게 나야 우리 존재를 알겠죠." 박천제(가명)씨는 인천공항 외곽 울타리에서 사람과 짐을 검색하는 특수경비대다. 이들은 경찰이 아닌 민간업체 소속이다. 4년 넘게 공항에서 일한 그는 지난해 6월30일 갑자기 해고됐다. 하청업체가 바뀔 때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업체는 7명에 대해 고용승계를 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5명이 노조 간부였다. 박씨는 "수년을 일했는데도 법으로 보호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으나 각하 결정을 받았다.

특수경비대 노조 관계자는 "하청업체에서 노조를 만들다간 거의 해고를 당한다"며 "공사가 다른 업체로 계약을 바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노동의 미래?

인천공항은 개항 때부터 광범위하게 사내하청을 도입했다. 탑승교, 셔틀버스, 터미널 환경미화뿐 아니라, 내·외곽 경비, 보안검색, 소방대까지 민간기업이 하청을 맡고 있다.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2개 회사로 분리된 경우도 있다. 이들의 수는 현재 42개 업체 6000여명에 이른다고 공사는 밝혔다. 반면 공사 직원은 900여명이다.

사내하청업체는 3년마다 입찰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계는 이런 사내하청 방식이 원청 업체가 법적 책임 없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고용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8년 펴낸 보고서는 "사내하청이 임금비용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고, 원청 노조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을 수 있어 사용주들이 선호하고 있지만, 사내하청은 지속적인 노사관계 불안정을 낳을 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정과 임금 및 근로조건의 질을 악화시켜 사회적 양극화를 확대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천공항이 '사내하청 공항'이 된 이유는 개항 직전 외환위기가 터져 공항 운영 대부분을 아웃소싱했기 때문이다. 공사 관계자는 "아웃소싱 용역비 대부분이 인건비이기 때문에 임금 부분의 직접 삭감은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인력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하청의 '달콤한 유혹'을 사업주가 피하기는 어렵다. 공사의 2010년 아웃소싱 비용 절감 목표는 446억원에 달한다.

그래서 '인천공항 모델'의 확산이 갖는 파급력은 심각하다. 인천공항지역노조 관계자는 "인천공항이 모델이 돼 다른 공항도 모두 사내하청으로 바뀌고 있다"며 "산업 전 부문 확산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영종도/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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