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국정원·검찰 '감청 중독증' 제동

2009. 11. 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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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범민련 사건때 2년넘게 감청연장횟수 제한없어 논란일어

"수차례 감청 기간을 연장하면서도 증거 수집이나 범인 검거 등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면 결국 그와 같은 감청의 필요성이 애초에 없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 기간 연장 횟수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어, 장기간 감청을 통한 수사권 남용이 일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27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결정한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법 조항을 악용한 수사권 남용을 직접 거론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터넷 '패킷 감청' 장비가 대폭 확대 도입되는 등 통비법이 '통신비밀침해법'이 됐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가 수사기관의 '감청 중독증'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실제 범민련 사건은 '감청의 종합판'으로 불릴 만큼 광범위한 감청으로 논란을 빚었다. 국가정보원은 2004년부터 무려 28개월 동안 이 단체가 사용한 인터넷 전용회선을 실시간 '패킷 감청'해 왔다. 이 감청은 서울서부지법이 2004년 11월26일 허가했는데, 국가정보원은 이를 무려 13차례나 연장한 것이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정보를 중간에서 가로채기 때문에,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대화 내용이나 검색어까지도 감청할 수 있다.

국정원은 또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이 단체에 대해 모두 18차례의 통신제한 조치 허가서를 발부받아, 이 단체 회원들의 전자우편과 팩스, 유·무선 전화 사용 내역까지 모두 파악했다. 범민련 원진욱 사무차장은 "만약 문제가 되는 활동이 있었다면 6년 동안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와 상관없이 상시적으로 감청해 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결정문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감청 기간 연장을 계속 신청하는 경우 횟수와 관계없이 연장을 허가하는 예가 드물지 않다"며 감청이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적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연장 횟수, 연장 가능한 날짜의 제한이 아예 없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봤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연장된 감청 기간도 총 30일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미국 △연장 가능한 감청 기간을 10일로 한정하고, 연장된 감청 기간도 총 30일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 일본의 예를 들며, 손쉬운 감청이 결국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깊이 우려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재판부의 결정을 반겼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논평을 내어, "재판부의 결정은 그동안 국정원과 검찰의 무제한 감청과 이를 견제하지 못한 법원의 관행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며 "패킷 감청과 무제한 감청 연장의 근거가 되고 통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통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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