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밴쿠버 한인교회 집사 한국서 검거… 선물투자 고수익 미끼 피해 속출
"한인 교회부터 찾아가 보세요."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조언이다. 한인 이민 사회에서 교회는 이민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장소다. 한인교회는 종교를 불문하고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 모이고 정보가 집결되는 작고 끈끈한 '가족 같은 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교회에서의 신망을 바탕으로 거액의 투자 사기를 벌여 캐나다 교민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다.

↑ 캐나다에 이민 온 한국인을 상대로 거액의 투자 사기를 벌인 김 모씨(39)가 지난 10월17일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공항 로비의 이민자들. (경향신문)

↑ 김 모씨는 캐나다 밴쿠버의 한인교회를 무대로 교민 200여 명으로부터 330억원을 투자 명목으로 받아 한국으로 잠적했다. 사진은 밴쿠버 시내. (경향신문)
캐나다 밴쿠버의 모 한인교회를 주 무대로 교민 200여 명으로부터 330억원을 투자받아 한국으로 잠적한 C선물투자회사 대표 김 모씨(39)가 10월17일 경찰에 붙잡혔다. < 경향신문 10월22일 보도 > 330억원은 밴쿠버 영사관에서 영주권자들의 피해사례만을 접수한 것이기 때문에 시민권자인 피해자까지 합하면 착복 금액이 7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수십년 이민생활 전 재산 모두 날려
김씨는 어떻게 이런 거액을 의심없이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왜 교민들은 빚까지 내 가며 그에게 투자한 것일까.
그는 밴쿠버 교민 사회에서 선량한 기독교인 사업가 '김 집사'로 알려져 있었다. 교회에서 하는 각종 자선행사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쾌척하는 사람도, 가장 많은 헌금을 내는 사람도 '김 집사' 였다. 전폭적인 신뢰 속에 그는 교회 회계를 담당했고, 한 기독교실업인단체를 조직해 회장직도 맡았다.
그의 화려한 생활도 교민들을 현혹시켰다. 현지 피해교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아우디 A6와 혼다
아큐라 MDX 등 고급차 2대를 몰고 다녔으며, 고급 주택에 거주했다. 자녀들은 캐나다의 최고급 명문 사립학교에 다녔다. 수시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명품을 쇼핑하는 그의 가족들은 다른 교민들에게 '캐나디안 드림'의 전형으로 보였다. 한 교민은 "모든 교인에게 성공한 사업가로 인식된 그는 대내외적인 신망도 두터운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신망을 바탕으로 그는 같은 교회 교인들에게 미국
선물 투자를 권유했다. 사업을 시작한 2002년부터 그의 주요 고객은 교인들이었다. "미국 선물과 국채가 가장 안전한 투자처다. 한 해 30~40%의 이자를 보장하겠다"는 김씨의 말에 수많은 교민이 투자를 결심했다. 성공한 자선사업가인 김 집사의 말이기에 믿을 수 있었다.
적게는 5000달러(약 500만원)부터 많게는 500만달러(55억원)까지 투자금이 밀려들었다. 현지 치과의사, 자영업자 등 고소득층은 물론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교포들도 김씨에게 돈을 맡겼다. 식료품 가게를 하는 김 모씨(48)도 알뜰살뜰 모은 3억원을 투자했으며, 작은 가게를 하는 전 모씨(55)도 이민 생활 15년 동안 모은 전 재산 5억원을 김씨에게 맡겼다.
실제로 김씨는 몇 년동안 약속대로 고이율의 이자를 지급했다. "김 집사가 돈을 잘 불려 준다"는 입 소문을 타고 투자자는 더 몰려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부터 슬슬 이자 지급이 끊기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원금 상환을 요청했지만 그는 차일피일 상환을 미뤘다. 지난 5월터는 아예 모든 이자와 원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 유치는 계속됐다. 그는 "투자금은 캐나다 정부에서 보호해 준다"는 내용의 문서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금융감독원의 인증을 받은 것처럼 위조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투자자들의 압박이 심해진 10월5일, 김씨는 "모든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모든 투자자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연락은 끊겼다.
피해자 후유증 극심, 교민 불신감 팽배
김씨는 메일 전송 하루 전인 4일 이미 교민들의 눈을 피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밴쿠버 집은 급히 처분했으며, 회사도 문을 닫았다. 가족들은 여동생이 머물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사실상 모든 도주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는 국내로 도피해 숨어 지내던 중 결국 지난 10월17일 서울 명동에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가 잠복해 있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캐나다 영사관으로부터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김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한국 내 계좌를 동결하며 김씨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 김씨는 이미 2007년 초부터 '선물 및 국채 투자'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금융감독원(BCSC)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김씨의 선물거래 자격을 영구 박탈한 상태였다. '투자의 귀재'가 아니라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인 '
폰지 사기'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교민들의 투자금 330억원 가운데 국내 계좌에 입금된 116억원은 김씨의 고교 동창생 등 여러 개의 차명계좌로 분산돼 있는 상태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16억원은 회사운영비, 2억3000만원은 부인 통장, 일부는 친인척 통장으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범행 전모가 드러나면서 밴쿠버 교민 사회는 배신감과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다. 빚까지 내 투자금을 마련했다가 고스란히 날린 투자자는 몸져 누웠고, 전 재산을 날림으로써 쓰러진 노부부도 있다. 사건 후유증으로 자살을 기도한 새댁까지 흉흉한 소식들이 이어지면서 서로간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피해교민 전씨는 "가족처럼 지내던 교민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무서운 분위기가 됐다"면서 "이역만리 떨어진 좁은 교민사회에서 서로 의지하며 꿈과 희망을 다져 가는 사람들에게 자선 사업가로 행세하며 기독교와의 친분을 미끼로 교묘히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캐나다 현지언론에까지 대서특필되면서 한국 교민들에 대한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40여 년의 캐나다 이민역사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미지가 자칫 깨질 위기라며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피해 교민은 "김씨의 화려한 생활을 보며 진짜 돈 잘 번다고 했지 우리 돈으로 쓰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근면하고 묵묵하게 일해 온 한국인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몹시 걱정된다"고 말했다.
< 사회부·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