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주민등록법 위반 '경미한 범죄' 아니다

2009. 8.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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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 부과할 수 있지만 실제론 '솜방망이'

위장전입은 이제 고위공직자의 준법정신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꼽히는 단골 메뉴가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과 장대환 매일경제 대표는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져 국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위장전입 문제는 되풀이됐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후임자로 내정된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아들 교육 문제로 주소지를 서울 강남구로 옮긴 것이 인사청문회에서 들통났다. 천 전 후보자 낙마로 발탁된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 역시 두 딸의 주소지를 '강남 8학군'에 거주하는 지인의 주소로 기재한 것이 드러났다.

검찰총장 후보자 2명이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준법기관 수장이 어떻게 위법행위를 할 수 있느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실제 주민등록법 37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해서는 안되며,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형사처벌 당한 공직자 거의 없어

폭행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과실치사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 주민등록법 위반 행위는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행위가 드러나 형사처벌을 당한 공직자는 찾아보기 드물다. 김준규 후보자의 경우에는 위장전입을 두 차례나 했기 때문에 최고 4년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지만 공소시효(3년)가 경과해 죄를 물을 수 없다. 장상·장대환·천성관 등도 공소시효가 지나 '면죄부'를 받았다.

그렇다면 법정 최고형이 징역 3년과 벌금 1000만원으로 정해진 위장전입 행위는 통상 어떻게 처벌을 받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되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는 유·무형의 이득이 생기는 사기적 성격의 범행과 위장전입이 동시에 벌어져야 사법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판례의 흐름이다.

예를 들면 위장전입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분양권을 따내거나 선거권 확보를 위해 위장전입하는 경우 등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구속되거나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벌금 액수도 100만원 미만이 대부분이다.

지난 2007년 충남 당진군은 '도·농복합시' 승격에 필요한 인구 5만명을 채우기 위해 위장전입을 시도했다. 2007년 8월 현재 인구가 3만8000여 명이었지만 그해 말까지 5만명을 채웠다. 민종기 당진군수는 간부회의 등을 통해 목표 할당과 실적 점검을 하는 방식으로 위장전입을 주도했지만 검찰은 민 군수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부하 직원들은 기소유예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공무원이 위장전입을 기획·주도했지만 구속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과 가족의 주소를 선거구로 위장전입 신고한 뒤 다시 주소지를 옮긴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도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50만원,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2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군사 비행장 소음피해와 관련해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자 실제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주소지를 옮겨 수백만원씩의 손해배상금을 받아간 '가짜 주민'들도 검찰 수사에 적발됐지만 벌금형에 그쳤다.

실제 처벌 사례가 이렇다 보니 위장전입이라는 결함이 드러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검찰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 자리가 걸려 있다고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녀 교육 차원의 위장 전입은 피해 정도가 낮고 이런 유형의 위장전입은 아주 흔하기 때문에 이를 문제삼아 형사 처벌에 나서게 되면 수많은 전과자가 양산되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단순한 위장전입은 원상회복에 주안점을 둘 뿐 형사 처벌을 하지 않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일한 사안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미국은 교육 차원의 위장전입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구속수사까지 하고 해당 학생은 퇴학 조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3일 <미주 중앙일보>는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위장전입 수사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US뉴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경찰당국은 자녀들을 좋은 학군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를 거짓 기입한 부부를 구속했고, 이들은 자녀당 1만달러의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뉴욕 로체스터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자녀 4명을 어머니 주소지로 변경했다가 3급 중절도와 1급문서 위조죄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에 보도된 한 여성은 입학원서에 자신의 어머니 주소를 기재했다가 허위대리에 의한 사기 죄목으로 기소됐다.

미국은 구속수사에 학생은 퇴학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주는 우리나라 법 집행과는 극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물론 우리 검찰도 위장전입 하나만으로 사법 처리에 나선 경우가 없지는 않다.

지난 2005년 서울동부지검은 현직 검사를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사가 아들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검사는 이 사건으로 옷을 벗었고, 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후관계를 고려하면 미국의 사례와 큰 차이점이 있다.

원래 이 사건의 핵심은 검사 아들을 포함해 '귀한 집' 자제들이 학교 교사의 도움을 받아 중간·기말 고사의 시험 답안지를 고쳐 성적을 조작한 것이다. 그러나 답안지 조작을 처벌해야 하는데 실정법상 성적 조작을 처벌할 법 조항이 없었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부정적 여론까지 비등해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법 위반을 적용해 사법 처리에 나선 사안이다. 쉽게 말해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서 기소한 사건이다.

김현성 변호사는 "교육 차원의 위장전입은 피해가 크지 않아 가벌성이 떨어진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자가당착적 논리"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위장전입으로 입학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 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뺏길 수밖에 없다"면서 "더욱이 위장전입은 의도를 갖고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 피해만 없을 뿐 명백한 사기행위로 볼 수 있는데도 관대하게 처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부·조현철 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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