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비'와 죽은 '장자연'은 닮았다

2009. 3. 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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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탁현민 기자]

가수 비의 'RAIN'S COMING-06/07 RAIN WORLD TOUR' 첫날 공연

ⓒ 스타엠

총체적 연예비리에 희생된 배우 장자연의 죽음 위로 이제 '비'까지 내리고 있다.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이라 했던가? 실체도 없는 '한류'에 광분하고 취약한 토대 위로 미련하게 쌓아 올렸던 연예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만 같다. 주류는 아니지만 연예'바닥'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또 대중문화를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서, 이름도 생소하던 어느 신인배우의 죽음과 톱스타 '비'에게 닥친 서늘한 위기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배우 장자연의 죽음이 기획사와 신인배우, 그리고 제작주체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했다. 또 이번 비의 송사와 2007년 있었던 그의 미국투어공연 역시 이러한 연예'바닥'의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2007년, 가수 '비'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가장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서 그토록 소원하던 세계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의 성공적이었던 공연과는 달리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제외한 미국 본토와 하와이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공연의 막도 올리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가수 '비'의 세계시장 공략 실패, 왜?

그때 나는 신문과 방송에서 "비의 실패는 공연산업의 고질적인 병폐 때문이다, 가수와 그의 소속사가 공연을 직접 주관하지 않고 공연의 판권을 대행사에 판매하고 대행사는 다시 그 공연을 지역의 공연기획사에게 재판매하면서 공연에 대한 책임이 혼란스러워지고 공연의 제작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제작사인 스타엠은 기자회견을 통해 "비의 공연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며 "몇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미국투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켜지지 않았을 뿐더러, 설상가상으로 지난 19일 하와이 공연취소와 관련돼 진행된 소송에서는 비와 그의 이전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패소했다. 이번 일로 비는 이미지에 손상을 입으며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게 됐고, 거기에 감당하기조차 힘든 소송비용과 징벌적 배상금을 내야할 처지에 놓였다.

재판에서 비는 '공연계약 그리고 취소와 관련한 내용은 본인의 책임도 아니고 몰랐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연예인이 매니저를 고용해 모든 계약여부를 결정하는 미국의 연예시스템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연예'바닥'은 기획사에 연예인이 소속되고 기획사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스타의 반열에 오르고 돈이 생기면 연예인이 직접 회사를 차려 스스로 기획사 사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실제 비도 2007년 이후에 그렇게 회사를 차렸지만),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투자비용 부담과 기획사와 제작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연예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청→하청→하청으로 이어진 비공연 판권

가수 비

ⓒ 스타엠

아마도 미국의 재판부는 이 부분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가수가 자신의 공연에 철저하게 배제되고 공연 계약과 취소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물론, 비가 공연에 대해 진짜 아무 것도 몰랐을 리는 없다. 그가 말하는 '몰랐다'의 의미는 자신이 공연의 계약과 취소에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찌됐든 배심원제도를 채택하는 미국 재판부로서는 미국까지 와서 공연을 기획했던 아시아 최고의 가수 '비'가 어떻게 자신의 일에서 배제될 수 있었는지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까지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패소로 이어진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당시 JYP 소속이었던 '비'가 공연의 계약과 취소에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그가 아시아 최고의 스타였지만 한국에서의 계약 관행상 JYP가 공연판권을 스타엠에 팔고 스타엠이 다시 레볼루션에 팔고 레볼루션이 다시 클릭엔터테인먼트에 파는 일체의 과정에는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철저히 기획사 경영진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마치 고 장자연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라마든 영화든 혹은 접대자리에든 불려나가야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비의 경우 고 장자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확실히 '뜬' 스타였지만 이전의 계약에 묶여 있던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기획사가 공연의 완성도나 배우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으로 최대한의 이익만을 창출하려고 할 때 배우와 가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기획사가 자사의 콘텐츠로 최대한의 수익을 내겠다는 것을 말릴 근거는 없다. 하지만 그 최대한의 수익을 위해 가수의 공연을 망치고 배우를 죽음으로 모는 것까지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은 범죄다. 그런 점에서 비와 장자연은 분명한 피해자다.

비 공연 진행한 기획사들의 반성은 없었다

< 꽃보다 남자 > 출연 당시 장자연.

ⓒ KBS

하청과 재하청의 복잡한 구조로 기획된 비의 공연 역시 착실한 매니지먼트와 연예활동보다 M & A와 우회상장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고 장자연 죽음의 배경과 닮아있다. 이미 밝혀졌지만 당시 스타엠은 비의 공연판권을 JYP로부터 구매하면서 주가가 상승했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스타엠의 몫이 되었다.

그 후 스타엠은 곧바로 공연 제작 경험이 일천한 레볼루션에 판권을 되팔았으며 레볼루션은 그 판권을 또다시 클릭엔터테인먼트 등에 판매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공연은 잘 되리라는 무지한 확신이 있었겠지만, 달리 보면 공연쯤은 망가져도 돈은 벌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돈 안 되는 연예산업보다는 연예산업을 빌미로 M & A를 성사시켜 돈을 벌어보겠다는 점에서 장자연 사건과 비 패소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수 비가 소송 패소로 엄청난 심적, 물적 피해를 보는 이 시점에 JYP와 스타엠, 아예 사라져버린 레볼루션, 그 어떤 곳에서도 책임을 표명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 패소는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연예'바닥'이 보인 반응과 닮아있다.

배우와 가수의 처지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로지 자사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하는 연예기획사들의 태도는 분명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미지가 곧 생명인 이들 연예인들에게, 사건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그들의 명예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산 자의 명예든 죽은 자의 명예든 말이다. [☞ 오마이 블로그][☞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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