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애환 서린 피맛골 '역사 속으로'

입력 2009. 3. 3. 09:54 수정 2009. 3. 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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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계획 심사결과 8일 발표..허물기 본격화될 듯(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김은정 기자 = "생선구이는 역시 연기에 그을려야 제맛이야. 피맛골을 떠나고 나면 이 맛도 못 내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서울 종로구의 명소 피맛골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피맛골의 명칭은 조선시대 종로 일대에서 서민들이 말 탄 관리들을 피해 다니는 것을 뜻하는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곳곳에 서민들을 위한 선술집ㆍ국밥집 등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소박하고 특유의 정취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600년간 서울 한복판을 지켜온 피맛골도 `현대화'와 `재개발'이라는 대세에 밀려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까지 공모한 재개발 계획 심사결과를 오는 8일 발표하고 곧 시공사를 선정하는 등 본격적인 피맛골 허물기를 진행한다.

시 관계자는 "전통의 거리를 지키자는 목소리도 컸지만, 경제적 효율성뿐만이 아니라 건물들이 지나치게 낡아 위험하다는 점까지 고려해 보면 재개발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3일 둘러본 피맛골은 절반이 넘는 가게가 불을 끈 채 `이전 안내판'을 붙여 놓고 곳곳에서 벽을 허무는 공사가 진행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몇몇 가게 주인들은 아직 이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피맛골을 지키며 장사를 계속 하고 있지만 표정은 예전만큼 밝지 못했다.

30년째 생선구이 집(우정집)을 해 온 석송자(66.여)씨는 "요즘 이웃 가게들이 이사를 많이 가서 골목이 썰렁해졌다"며 "그래도 가게를 옮기면 왠지 이 생선 맛을 내지 못할 것 같아 버틸 때까지는 버텨볼 생각"이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50년째 막걸리 주점(열차집)을 지킨 윤해수(71.여)씨 역시 "시에서는 인근 빌딩으로 옮기라고 하지만 임대료 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게다가 깨끗한 건물에서 막걸리를 먹으면 맛도 없을 텐데 어느 손님이 찾아 오겠는가"라고 털어놨다.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이곳에서 위로를 받던 단골손님들도 아쉬운 마음은 마찬가지다.대학 때부터 50년째 단골이라는 우순구(75)씨는 "옛날 피맛골은 지금보다 더 커서 국세청에서 단성사까지 길이 이어졌는데 그 거리를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면서 "개발이 대세라면 따라야 하겠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14년 전 한국에 왔다는 미국인 키난 패건(42.대학강사) 씨 역시 "오래된 벽지에서 나오는 예스러운 느낌이 좋아 자주 이곳을 찾았다. 이만큼 한국의 역사를 느끼게 해 주는 장소는 없다"며 "서구적인 거리만을 동경하며 전통의 자취를 허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에서는 피맛골을 보존하겠다는 취지로 인근 빌딩 1층에 새로 `피맛골' 간판을 걸고 일부 가게들은 이곳으로 옮기기도 했지만 상인과 손님 모두 "원조 피맛골의 정취를 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 피맛골로 국수 가게(미진)를 옮긴 판문경(47.여) 씨는 "이 곳에서는 예전처럼 노인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할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라며 "분위기가 달라져서 그런지 맛이 달라졌다고 푸념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자주 피맛골을 찾았다는 회사원 김모(26.여) 씨도 "새 피맛골은 아무래도 푸근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피맛골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지만 마치 양복을 입고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한 느낌"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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