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증거 없지만' 철거민 기소.."잘못했지만" 경찰 불기소

2009. 2. 9. 19: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검찰 '편파수사' 논란

구체적 행위자 특정못한채 '공동책임' 적용

화재위험 명백했는데도 '적법한 작전' 감싸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관계 규명에는 미흡했고, 확인된 사실에 대한 판단은 중립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핵심 쟁점인 화재 원인과 경찰의 책임 부분이 특히 그렇다.

[영상]용산 참사 화재 원인 논란검찰 수사 발표 vs 진상조사단 반박

■행위자 특정 못하고 '간접증거'만

검찰은 수사 막바지까지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 시너를 누가 부었는지 특정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다. 화재로 증거 찾기가 어려웠고 농성자들이 진술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은 화재 발생 당시의 동영상 자료와 '3층 계단에서 불이 났고', '화염병이 4층에서 3층으로 떨어지는 걸 봤다'는 경찰 특공대원 진술 등을 근거로 농성자들을 기소했다. 화재 직전 누군가 시너로 추정되는 액체를 망루 밖으로 뿌리는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화염병 투척자를 가리지 못했지만 모두 복면을 쓰고 있고 사전 모의를 한 만큼 농성자 3명에게 공동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망루 밖에서 촬영한 사진·동영상에 나타나는 화재 직전 상황과, 철거민 책임론에 무게를 싣는 진술을 짜깁기해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죄목을 적용하면서 구체적 행위자를 지목하지 못한 것은 이례적이다. 3명에게 적용된 특수공무방해 치사는 '단체의 폭력 등으로 공무원을 사망하게 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죄목이다.

변호인단은 "농성자들이 망루 내에서 시너를 뿌린 사실이 동영상만으로 입증되기에는 너무 불명확하고, 설사 시너라 하더라도 이를 발화 원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또 발화 지점에 대해 "검찰이 '3층 계단에서 발화된 걸 보았다'는 김아무개씨의 진술을 근거로 들지만, 김씨는 '발화가 불이 시작된 곳이 아니라, 불을 보았던 곳으로 생각했다'고 진술을 정정했다"고 밝혔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도 이날 "옆 건물에서 진화작업을 했던 용산소방서 조아무개 소방위는 의원실 보고 때 '첫 발화는 계단의 대각선 반대쪽이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화염병에 3층 계단에서 발생한 불이 시너를 타고 밑으로 번져 1층에서 큰불이 됐다는 검찰의 결론과 어긋나는 설명이다.

[영상] 검찰의 수사 발표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반박

■경찰 진압, 문제 있지만 처벌은 안 해

검찰은 "사전 준비와 작전 진행상 아쉬운 점"을 언급하며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전날 진압작전을 세울 때는 300t짜리 크레인 2대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100t짜리 1대만 동원했고, 소방차 등 안전장비도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진압 결과가 바뀔 만큼 중요한 변화로 보지 않는다"며 경찰의 판단을 옹호했다.

검찰이 경찰에 면죄부를 준 기본 전제는 두 가지다. 우선 특공대 투입을 통한 조기 진압을 강행한 것은 "시민 피해가 크게 우려돼 시간을 끌면 더 위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차 화재 뒤 2차 진압을 강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화재는 시너와 화염병으로 저항한 농성자들의 책임으로, 경찰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진압이 화재 원인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화재 위험이 명백했는데도 '정상적 판단에 따른 적법한 작전'이었다고 판단했다.

농성자들의 변호인단은 검찰이 경찰 투입 전인 지난달 19일의 급박한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를 하지 못하고, 진압 결정 자체가 정당하다는 이유로 명백한 위험을 간과한 점 등을 짚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유사 사례와 비교해 이번 진압은 매우 이례적이고, 경찰관 직무집행법 1조 2항의 '경찰력을 동원할 때는 … 수단 또한 목적의 중요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경찰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법한 과잉진압이 사건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