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운 겨울> ③너무나도 서러운 쪽방촌 (끝)

입력 2008. 11. 23. 08:43 수정 2008. 11. 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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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굶어야만 하나"(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최근 들어서는 일용직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입니다."경기가 나빠지고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들은 경제학자나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최저생계비'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기초수급자들은 심각한 불경기가 시작됐다는 것을 이미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주말인 22일 기초생활수급가정 700∼800여 세대가 몰려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

기자의 시야는 대개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가득 메워졌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해 실직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한 40대 중년 남성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쪽방촌의 역설'이라고 할까. 온갖 걱정을 안고 사는 `바깥 세상' 사람들과 달리 이들의 걱정은 `일자리' 딱 한 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일자리라는 말도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그저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할 `일거리'라는 자조가 누군가의 입에서 외마디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80세 홀어머니를 모시며 최저생계비 70여 만원으로 살고 있는 김모(44) 씨는 요즈음 하루하루의 생활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한때 김씨는 최저생계비 외에도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해서 받은 추가 고정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허리디스크가 재발해 공공근로를 그만두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최저생계비 70여 만원 가운데 월세 25만원, 병원비 20∼30여 만원을 제외하고 남는 돈은 불과 10여만원.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액수다.

김씨는 "하루 일거리를 찾으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일거리가 없다'는 말들 뿐"이라며 쪽방촌 주민 대부분이 겪는 일상의 고통을 털어놨다.

오랫동안 가구공장에서 일하다 실직했다는 주민 이모(45) 씨도 "요즘 일거리가 너무 없다"며 "불경기 여파 때문인지 이곳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씨는 "요즘 들어서는 기존 주민들 가운데 방값을 여러 달 내지 못해 쪽방에서조차 쫓겨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달라진 마을 풍속도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개했다.

동자동 주민들은 당국이 발표하는 물가지수가 어떤지는 몰라도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들썩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했다.

100원, 200원도 소중한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소폭의 물가상승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

하물며 올해처럼 기름 값이나 채소 값이 다른 물가보다 특히 많이 오르는 것은 이들에게 정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젠 만 원을 가지고 시장에 나가면 2∼3가지 반찬을 사 오기가 어렵다"는 게 노모를 모시는 김씨의 푸념이다.

최근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왔다는 최모(40.여)씨는 당국이 제발 공공요금만은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신장병 때문에 을지로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왕복 버스비 2천원을 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버스비 100원 오르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전에 없이 좋지 않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는 것은 기초수급자들만이 아니었다.소규모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50대 아주머니는 "가게 안에만 있어서 불경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담배 피우던 사람들조차 담배를 잘 안 사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게의 음식 냉장고 안에는 주민들에게 팔려고 만들어 놨으나 오랫동안 팔리지 않고 있는 각종 반찬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부에서는 불경기로 "중산층이 무너진다"고 걱정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그야말로 최전선에서 불황의 그늘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동현 간사는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물가가 상승하면 빈곤계층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의외로 쉽게 설명했다.

"올해 물가는 작년에 비해 5% 이상 올랐지만 기초수급자들에 대한 최저생계비는 1∼2% 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 한결같이 `이젠 굶어야 하는가'하는 체념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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