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고발하기 전에 의원실 나가요!"

입력 2008. 11. 18. 20:16 수정 2008. 11. 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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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신 의원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 남소연

"의원님, 3분만 말씀드리고 갈게요. 요점만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메모도 했습니더."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다 뒤로 돌아서며) 업무방해로 고발하기 전에 당장 나가세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4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경 의문사 가족 20여명은 18일 오후 4시 국회 의원회관 414호실 신지호의원실을 기습 방문했다.

유가족들은 신 의원을 만나 위원회를 통폐합하면 남은 사건들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된다는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군 의문사위원회는 2006년 출범한 뒤 600건의 사건을 접수했으나, 이 가운데 절반 322건을 조사종결하고 현재까지 278건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의 조사를 위한 기간연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신 의원은 면담을 거부했다. 보좌진을 통해 "20여명의 유가족들이 대거 사무실로 몰려왔으니 업무방해에 해당된다"면서 대표자 4명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국회 의원회관 지하 면회실로 내려가 있으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협조하면 대표자와 면담 뒤 그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열하다 경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옮겨지고 있다.

ⓒ 남소연

국회 의원회관 4층 복도에서 이 같은 말을 전해들은 유가족들은 신 의원 측 말대로 4명의 대표자만 남긴 채 모두 지하 면회실로 내려가 방문증마저 반납했다. 국회 의원회관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 의원 측은 약속을 깼다. 유가족 대표 4명이 남았지만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보좌진을 내세워 "이번 법안 발의는 그동안 흩어져있어 예산 낭비가 심각했던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군의문사위원회가 개별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유가족들은 그같은 설명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 없었다. 유가족 대표 4인은 "신 의원을 직접 만나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폐합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설명하겠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신 의원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아들 잃은 엄마인데..." 그러나 미동도 없는 신지호

18일 오후 유가족과의 면담을 거부한 신지호 의원이 의원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1시간쯤 신지호의원실에서는 조용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의원님 좀 만나 직접 설명하자"는 유가족들의 입장과 "보좌관을 통해 말씀하시면 의원님께 충분히 전달하겠다"는 의원실의 입장이 옥신각신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신 의원 얼굴 좀 보자"며 의원 개인 집무실로 다가갔다. 그러나 보좌진은 집무실 문고리를 붙잡고 밀리지 않았다. "아들 잃은 엄마들인데 너무 괄세하지 말라"며 눈물의 호소가 이어졌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다 오열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신 의원 측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식 일로 국회의원 찾아왔는데 우리가 무슨 해코지를 하겠냐"면서 "조용히 얘기만 하고 돌아갈테니 제발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자"고 애원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저녁 6시쯤 '효철이 엄마'가 실신했다.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고 곽효철 상병의 어머니 김운자씨는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쳤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말문이 막히니 가슴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얼굴을 노랗게 질렸으며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동자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결국 김씨는 국회 의무실 휠체어에 실린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아들은 17사단 307포대에서 복무하던 곽효철 상병이다. 곽 상병은 2002년 10월 21일 부대 건물 1층 포대장실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됐다.

군 수사기관은 집안 문제와 본인의 애정 문제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김씨는 이 같은 말을 진실로 믿기 어려웠다. 2006년 5월 군의문사위에 이 사건을 진정했고 현재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군의문사위를 폐지한다니 김씨에겐 이보다 더 청천벽력 같은 얘기는 없었을 것이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열하다 경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옮겨지고 있다.

ⓒ 남소연

'효철이 엄마'가 실려나가자 '손상규 중위 엄마'가 거칠게 신 의원을 몰아세웠다. 욕설도 이어졌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자식 잃은 어미는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고 소리쳤다.

"신지호! 나와! 젊은 놈이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손 중위 엄마'는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으며 신 의원의 개인 집무실을 향해 신발짝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머리칼은 헝클어졌으며 손가락은 부르르 떨렸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 그런지 목소리마저 쉬었다.

"너는 자식 안 키우냐. 자식 잃은 엄마 마음이 어떤지 알아? 국회의원이면 다야? 지나가는 개가 짖어도 이렇게 대우하지는 않겠다. 네가 이래가지고 천년만년 정치 해쳐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와! 나와 이놈아!"

성토가 이어졌다.

"63년생이면 젊은 놈이네. 그런 젊은 놈이 이렇게 유가족들을 싸가지 없이 대우하냐. 이래서 정치 계속 하겠어? 이런 나쁜 눔."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신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너는 자식 안 키우냐" 절규부터 "딱 3분만" 읍소까지

군경 유가족 대표 4인의 피맺힌 절규가 의원회관을 쩌렁쩌렁 울리자 4층 복도엔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하나둘 얼굴을 빼꼼히 내밀기 시작했다. 누가 보든 말든 군경 의문사 유가족들의 한 서린 분노는 그치지 않았다.

아들을 저세상에 보낸 지 2년 됐다는 김창호씨는 신 의원을 향해 애원했다. 잠시 틈새가 벌어진 신 의원 개인 집무실 문틈에 대고 "3분만 얘기하고 가겠으니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신 의원은 모르쇠로 뒤통수만 보여주며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의원님, 저희가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이 일이 절박해서 그러니, 의원님도 바쁘실 테니 딱 3분만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요점만 정리해 말씀드리려고 메모도 해왔습니다. 저희 얘기 좀 들어주세요."

신 의원은 김씨의 부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단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업무방해로 고발하기 전에 당장 나가세요."

김씨의 눈동자에 핏발이 서렸다. 50대 아저씨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국회의원이라면 사랑으로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셔야지, 이러셔야 되겠습니까. 그래도 국회의원 되실 정도면 인품이 어느 정도 되시는 분일 텐데 정말 해도 너무 하시네요."

울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며, 같이 온 대표자들을 달래 "그냥 가자"고 말했다. '손상규 중위 엄마'는 "나는 못 나간다"고 버텼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뭘 하겠느냐고 체념 투로 말했다.

손 중위 어머니는 "내 평생 이런 정치인은 처음 본다"며 "이 따위 정치인 가만두지 않겠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는 "내가 차라리 국회 본청 앞에서 목숨을 끊는 편이 나을 것 같다"며 괴로움을 성토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다 신 의원이 응하지 않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신지호의 마지막 선택은?

이에 앞선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왜 연장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김창호씨는 "연간 70~80명씩 군대에서 젊은 아이들이 자살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밝혀내는 차원에서라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연장돼야 한다"며 "접수된 사건은 모두 600건이지만 아직도 이런 위원회가 있는 줄 몰라 접수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 이 상황에서 문을 닫아버리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 가서 억울함을 성토할 수 있겠냐"고 가슴을 쳤다.

"국군통합병원 영안실에 썩어가는 시신들이 있어요. 우리 아들도 냉동창고에 보관할 수 없다 해서 가보니 애가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어서 도무지 부모로서 어떻게 할 수 없어 애를 꺼내 화장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 있는 부모들 모두 같은 심정입니다."

김씨는 "대통령 앞에 가서 내가 목숨을 끊는 한이 있어도 군의문사 조사는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지호 의원은 이날 필경 군경 의문사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었을 것이다. 이 절규에도 불구하고 신 의원과 한나라당이 '과거사 관련 통폐합 법안'과 '군의문사위원회 폐지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유가족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결과는 참혹할 게 뻔하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신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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