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머쓱하게 만든 '입방정'

입력 2008. 10. 17. 14:51 수정 2008. 10. 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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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쏙]

'한중일 금융정상회담 제안' 상대국선 냉랭

사전조율 없이 한나라당서 '덜컥' 발표부터

외교적 결례 논란을 일으켰던 이명박 대통령의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 제안은 당·청간 조율 미비로 언론에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안은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정례회동에서 나왔다. 당시 정례회동에서 박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이달 중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회의(ASEM)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을 제안하겠다"며 "동아시아가 현재 세계 최고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다. 3국이 힘을 합치면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국내외 파장을 몰고 왔다. 주무당국인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는 당황했다. 실무적으로 전혀 검토되지 않은 외교사안이 대통령 입에서 불쑥 나왔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실무 검토에 들어가고 중국과 일본 쪽에 전화를 하며 부산을 떨어야 했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이틀 뒤 가와무라 다케오 일본 관방장관을 방문했다.

당사국인 중국과 일본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가와무라 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 개최 문제에 대해 "아시아 지역에서도 정상회의나 각료급 회의가 필요한지 '주요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11일)' 결과를 보고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말했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관련 뉴스를 아예 다루지 않았다.

당연히 "이 대통령이 상대방이 있는 외교사안을 즉흥적으로 처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또 그렇지 않아도 환율 폭등으로 민감한 시장에 한국의 외환보유액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주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애초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 제안 부분을 비공개할 방침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정례회동이 끝난 뒤, 청와대와 한나라당 실무진들이 모여 구수회의를 하면서, 청와대 쪽은 이 부분을 브리핑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고, 한나라당 쪽도 선선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관례적으로 당·청 회동은 당에서 브리핑을 한다.

그런데 이날 오후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당·청 브리핑을 하면서, 첫머리에 "박 대표가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내용을 올렸다.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은 모처럼 박 대표가 마련한 '기획'이었는데, 박 대표의 위상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런 '좋은 내용'을 그냥 숨겨두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한 국가의 외교적 신뢰가 당 대표의 위상 강화를 위해 희생된 순간이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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