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랑 같은 화장실 써야 하냐고요

2008. 10. 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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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미소 기자]"장애인전용 화장실은 왜 건물에 하나뿐이야?"

"장애여성 며느리가 죽을 죄인이니?" "엘리베이터 문이 빨리 닫혀."

선뜻 공감 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 그랬나?' 정도의 생각에 머물 뿐. 그러나 장애여성들에게는 심각하다. 그들은 왜 이런 불만을 가지게 되었을까?

지난 1일 오후 그들의 불만을 들으러 서울 강동구 장애여성공감 회의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동 휠체어를 탄 작은 체구의 여성이 있었다. 그는 바로 장애여성공감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불만합창단원이기도 한 정영란씨. 그에 이어 다른 단원들도 전동 휠체어 특유의 '윙~'하는 소리와 함께 속속 도착했다.

이날 모인 단원은 정영란 대표를 비롯해 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박주희 팀장, 극단 배우인 이현정씨와 서지원씨, 공감 회원인 안인선씨, 공감 기획을 맡고 있는 진희씨 등 총 6명이다. 이 중 4명은 전동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할 수가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다.

그들이 9월 23일 1차 모임에서 토로했던 불만은 86개로, 장애인의 편의시설과 이동권에 대한 불만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비장애인에게 생소한 것이었다면 장애인에게는 생활인 것이다.

장애인화장실은 청소도구함?

장애여성공감 정영란 대표

ⓒ 정미소

먼저 정영란 대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주된 불편은 '장애인 화장실'을 정작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청소도구함으로 전락됨은 물론 청소 아주머니들의 휴식공간이 되어 버리는 장애인 화장실이 흔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 대표는 "장애인 화장실은 대부분 한 건물에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고, 한 개 있는 곳조차 남녀공용 곳이 많다"며 "더군다나 장애인 화장실을 비장애인이 사용하거나 청소도구 보관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할 곳을 장애인은 2시간이 걸려야 도착한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환승하는 시간과 출구로 나가는 시간이 더 걸린다."

또 지하철 이용시 이동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경우, 환승하거나 출구로 나갈 때 지하철 내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도 결코 이들을 빠르게 이동시켜주진 못한다. 휠체어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특히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는 안전 문제로 대기시간을 30초에서 1분 사이로 두고 있기 때문에 10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것은 보통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이동은 늦어지게 된다.

정 대표는 무엇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불편하다. 그는 "거리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가뜩이나 복잡한 거리에 나와서 더 복잡하게 만드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많다"며 "우리도 할 일이 있어서 거리로 나왔고, 이용하는 데 있어서 불만도 있다"고 장애인을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뭐하러 나왔냐 구박... 그러나 우린 쉽게 포기하지 않아!

10년째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는 안인선씨는 "장애인은 취업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좁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취업하는 데 있어서 장애인 편의시설(엘리베이터·화장실 등), 근무 환경(휠체어에 맞는 책상, 팩스·복사기 이용 등),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의식 등 3가지 필수 조건에 따르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는 것이다.

"취업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해도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부한다. 일해볼 기회조차 안 준다. 나의 경우 4군데 정도 거절당하고 5번째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장애여성공감의 회원인 안인선씨

ⓒ 정미소

취업시 안씨를 면접본 소장은 2년 후 안씨에게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나 용기가 강해서 한번 고용해 봤다"며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즉 면접 당시 '이 세계가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고 알아서 해봐라'고 생각했던 것.

이런 소장의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안씨는 "'장애인은 너무 쉽게 포기하더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일했다"며 "또 내가 포기하면 장애인 친구들에게 취업에 대한 실망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책임감을 느꼈다.

안씨는 자신만의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회사내에서 '판매왕'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면서 안씨에게 차를 3번이나 산 단골 고객이 생기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모 회사 회장님이 안씨에게 전화상으로 "(자동차) 살만 한 거 없냐"고만 묻고 견적 이야기는 하지도 않은 채 구매를 했다고.

처음에 차가운 시선으로 아니, 어쩌면 동정의 시선으로 안씨를 대했던 회사 사람들과 고객들은, 이제 안씨를 '믿음'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안씨가 직접 이뤄낸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안씨는 "사회에서 장애인 고용을 할 때 장애인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 '지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장애인이 직접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장애인이어도 '여성'이면 가중치

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박주희 팀장은 "장애여성 며느리는 죽을 죄인"이라고 애써 웃음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남성 배우자가 비장애인이거나 장애인일 경우에도 장애여성 며느리는 죽을 죄인이 된다. 그냥 생각하기에는 '같은 장애를 가졌는데 왜 죄인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일단 집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들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면이 있는 반면 여성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존재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박주희 팀장

ⓒ 정미소

박 팀장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끼리 결혼한다 해도, 남성 쪽 부모의 반대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장애남성 쪽 부모들은 "굳이 같은 장애가 있는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느냐"고 한다는 것. 여성 쪽이 남성보다 심한 장애가 있는 경우 반대가 더 심하다고.

박 팀장은 "이런 경우 결혼하고 난 후에도 시댁에서 장애여성 며느리에게 '우리 아들이 너 아니면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며 "장애가 있어도 사회생활을 하면 비장애인 여성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여성 쪽 부모도 딸에게 '장애가 있는 몸으로 결혼해서 어떻게 살림하며 남편, 자식들은 어떻게 돌볼 것이냐'라는 이야기를 한다"며 "집안에서조차 장애남성에게는 어떻게든 결혼하라고 하고 장애여성에게는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차별받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장애여성이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보다 장애남성이 비 장애인 여성과 결혼할 확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 팀장도 비장애인인 전 남편과 결혼할 때 시댁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시부모가 결혼식장에 오시냐, 마시냐' 할 정도였다.

결혼하기 전 박 팀장 주변 사람들은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 "이런 사람은 아마 천하에 없을 거야"라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마치 박 팀장은 신데렐라, 비장애인 남편은 영웅이 되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박 팀장은 "'그럼 난 뭐야'라는 생각이 들며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박 팀장은 주변의 시선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당당함 때문인지 박 팀장의 딸도 장애가 있는 엄마를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하지 않는다. 박 팀장은 "장애가 있는 엄마가 있음으로써, 딸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며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없는 아이들이 섞여서 교육을 받아야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 11일은 '불만합창'이 울리는 날

불만 가사를 선정하고 있는 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배우인 이현정씨, 장애여성공감 정영란 대표, 극단의 박주희 팀장(왼쪽부터)

ⓒ 정미소

이외에도 '장애여성의 장애 종류에 맞는 생리대는 왜 없어?' '장애 종류에 맞는 장애인 전용 신발은 왜 없어?'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기도 힘들어' 등 장애와 관련된 불만과 '가사업무는 나한테만 편중되어 있어', '왜 자꾸 살쪘다고 말하지?' '영어 못하면 창피해야 해?' 등 평소 생활에서 느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불만합창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불만합창단은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희망제작소 불만합창단(서울 종로)을 비롯하여 봉천동 '밤바다의 소녀들'의 불만합창단(서울 봉천동 '드림 한누리 공부방'), 봉천동 장애인 불만합창단(서울 관악사회복지), 북아현동 불만합창단(서울 추계예대 판화과 도시갤러팀), 장애여성 불만합창단(서울 명일동 '장애여성공감'), 촛불 누리꾼 불만합창단(온라인 카페 '장백'), 익산희망연대(전북 익산), 군산주민생활지원협의회(전북 군산), 진주 여성 불만합창단(경남 진주여성민우회) 등 10여개가 있다.

이들의 공식 공연은 오는 10월 11일(토) 오후 6시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전통예술공연장에서 열리는 '불만합창페스티벌'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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