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내 딸을 죽였다""40년 전통, 아주 나쁜 학교 됐다"

2008. 7.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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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지난 5일 유명을 달리한 신양이 다녔던 학교 교정. 이 학교 학생들은 신양의 사건 자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 장윤선

"누가 죽었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 사실이 있었나요?"

17일 오후 경기 안양 K고등학교 교정에서 만난 여고생들은 얼마 전 숨진 신아무개 양의 자살사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던 지난 5일, 이 집회에 참가했던 신양은 촛불전단 뒤쪽에 유서를 남긴 뒤 목숨을 끊었다. 이 소녀의 죽음은 '촛불소녀의 죽음'으로도 알려졌었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이 소녀의 죽음은 촛불시위와 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다만, 신양의 부모는 학교교육의 병폐가 이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양이 다녔던 학교도 지난 7일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차원에서 전교생과 전 교사가 묵념행사를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이 사건 자체에 대해 모르겠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선생님, 아까 (기자가) 우리한테도 물어봤어요." "특별한 말은 안 했지?" "네."

관악대 악기들이 보관된 교실 밖 보도에서 한 교사와 학생들이 나눈 대화다.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학교 주변 식당 아줌마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학생들이 별말 안 하는 걸 보니 "학교 측이 쉬쉬하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한 김밥집 주인은 "학생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인데 학교가 나서서 얘기하고 싶었겠냐"고 상황을 대신 전했다.

또 다른 학생은 "아는 사건이긴 한데 특별히 아는 언니가 아니라 아무런 느낌이 없다"며 "그런데 그냥 슬픈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안양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신양의 부모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교육청과 청와대 등에 보내는 민원을 통해 "학교의 잘못된 교육행태가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했다.

신 양의 부모가 기자회견 당시 했던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4월 담임교사 J씨가 교실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조사를 하면서 대상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라 종용했으나 신양이 일어나지 않자 직접 거명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다. 수시로 학교운영회비와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학교에 남기는 사례도 있었다.

학생들이 담배를 숨겼을 수 있다면서 가방 속 생리대를 빼내 낱개 포장된 생리대 패드를 직접 뜯어보는 일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상품이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면 끝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이 학교 수학교사 K씨는 체벌 당시 치마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이때 여학생들의 속옷이 보여 수치심을 주고, 발로 차기도 했으며 교육청에 신고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학생들이 수학시간에 문제를 못 풀면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에 빗자루로 엉덩이 38대를 때리는 과잉체벌을 하기도 했다. 이런 강압적인 수업 분위기와 친구들에 대한 공개체벌 장면을 자주 목격하면서 심리적 압박과 걱정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이 표현했었다."

신양이 촛불 유인물 뒷면에 자필로 쓴 유서

ⓒ 최병렬

"단소로 5대 이내 때린 적은 있지만 문제 다 풀 때까지 때린 적 없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경기도 교육청은 16일자 회신공문을 통해 담임교사와 수학교사에 대해 제기된 의문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담임교사 J씨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조사와 관련해 학비지원신청을 나눠주면서 신양의 이름을 호명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만일 호명했다면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격적으로 모독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교육청은 공납금 미납자를 공개하고 학교에 남기는 사례와 관련해서는, "공납금 미납관계로 부모님께 여러 번 전화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학생을 개인적으로 불러 미납내역을 알리는 수밖에 없었고 미납학생을 학교에 남긴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한 학생과 흡연으로 적발된 학생의 가방을 검사한 일은 있지만 여학생들이 꺼리는 생리대 등 생활용품을 꺼내 뜯어본 일은 없다"면서 "'상품취급' 발언도 훈화시간에 사회가 나를 선택하게 하려면 내 자신을 잘 포장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일 구입 때의 예를 들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수학교사 K씨는 치마를 양손으로 잡아당기게 한 후 엉덩이를 체벌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치마가 펄럭이면 속옷이 보일 것 같아 학생들에게 양손으로 치마를 잡아 앞으로 당기게 한 후 엉덩이를 체벌한 적이 있다"면서 "속옷이 보이게 해 수치심을 주려고 하거나 발로 차고 욕설을 한 적은 전혀 없으며 교육청에 신고하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엉덩이 38대 과잉체벌과 관련해서도 "교육적으로 단소 5대 이내를 때린 적은 있지만 수학문제를 다 풀 때까지 때린 적은 없다"고 부정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두 교사를 면담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며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체벌 지양 ▲학생 소지품 검사 시 반드시 학교장 결재 ▲저소득층 자녀와 장애우 학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상담활동 강화 ▲유사 사안 발생예방을 위한 생명존중 교육 실시 ▲비인격적, 비교육적 사례 발생 예방대책 강구 등을 주문하고 지도했다"고 밝혔다.

신양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신양이 지난 1학기 때 쓴 자기 인생 계획서.

ⓒ 장윤선

하지만 신양의 부모는 17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교육청의 공문 내용은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신양의 아버지 신동직(48)씨는 "잘못된 교육 관행으로 한 여고생이 죽음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학교와 교육 당국은 이처럼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이냐"고 분개했다. 학교가 딸을 죽였다는 것이다.

신씨는 "우리 딸은 학교에 아파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는데 교육 당국과 학교는 이렇게 나 몰라라 해도 되는 것이냐"며 "초기에는 딸아이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 입을 닫았다"고 답답해했다.

신씨는 이어 "경기도교육청이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이면서 문제가 된 교사 둘을 불러 얘기를 들어본 것 이외에, 그리고 그 교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외에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질타한 뒤 "애타는 부모의 속사정을 듣기나 했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는 "학교교육의 구조적 병폐가 딸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며 "목숨을 내놓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광수 K고등학교 교감은 18일 아침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죄송하고 애통할 뿐"이라며 "40년 전통을 가진 우리 학교가 이번 일로 아주 나쁜 학교가 됐고, 전국적으로 나쁜 학교로 알려져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학교로서는 제2, 제3의 신양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교사들은 현재 생활지도에서 아이들에게 혹시 교사들이 잘못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 반성하고 있다"며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딸을 두 부모님과 본인에게는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학교 측이 '신양의 죽음을 밖으로 알리지 마라'고 교육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방향으로 교육한 바 없다"고 못 박고, "지난 토요일 신양이 유명을 달리한 뒤 월요일인 7일, 전 학년과 전 교사가 묵념행사를 가졌지만 1~2학년의 경우에는 누가 죽었는지 관심이 없어 그 사건 자체에 대해 모를 수 있다"고 밝혔다.

김한수 안양경찰서 형사계장은 "이 사건은 타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며 "자살의 원인을 둘러싼 진실규명에 있어서도 학교와 가정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달라 법률상 의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양의 담임교사와 수학교사는 이 학교의 교무부장을 통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건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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