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파경 급증 "비싼 돈 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

2008. 7. 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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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화 잘 못받는다" 황당한 이혼 강요

국제결혼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5년새 이들 부부의 이혼 증가율이 5배 가까이 늘었다. 부부의 결혼생활 기간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소극적인 관심과 난립한 결혼중개업소의 엉터리 중매행위가 계속되는 한 문제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가 수년째 외치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구호가 무색한 현실이다.

필리핀에서 온 ㄴ씨(27)는 '전화를 잘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2006년 인천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남편에게 시집온 ㄴ씨.

한국말이 서툰 탓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큰 문제 없이 한 달 동안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문제의 발단은 어느 날 남편 회사 사장으로부터 온 전화 한 통이었다.

남편에게 전해달라며 물건 품목을 불러주는데 ㄴ씨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만 것.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전화 하나 제대로 못받는데 사람 구실은 하겠냐"며 ㄴ씨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구박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결국 이듬해 6월 이혼을 요구했다. 경기도의 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ㄴ씨는 그 이후로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5일 이주노동자방송국에 따르면 한 마을에 살던 이주여성 3명이 최근 한꺼번에 이혼을 당하는 일도 있다. 남편들이 내세운 이혼사유는 황당하다. 농번기에 자기네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들이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혼인하고 한국에 도착한 지 불과 15일 만의 일이다.

이혼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2월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중국에서 시집온 ㅈ씨(35)는 5개월 정도의 짧은 결혼생활 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자"며 지리가 익숙지 않은 곳에 데리고 갔다. 잠시 기다리라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집을 찾아간 ㅈ씨를 맞은 것은 이사를 가 텅 빈 집뿐이었다.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떨어져 살면서 "외국인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가출신고를 하면 6개월 후 공시송달로 이혼장이 온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ㅈ씨는 이주여성쉼터에 머물다 지난해 8월 결국 고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로 구성된 결혼이민가정은 매년 결혼기간은 줄고,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의 이혼은 2007년 5794건으로 전년보다 44.5% 늘어났다. 또 이 중 90.2%인 4010쌍은 결혼기간이 채 4년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사회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이뤄지는 성급한 결혼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제이주여성쉼터 강중범씨(33)는 "중개업소에 많은 돈을 주고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한국 남성들의 인식 속에 '돈을 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며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한국여성에게라면 요구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이어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주요한 이혼 사유가 되고 있다"며 "가족들도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권미주 상담팀장도 "결혼이주여성들은 청소 안한다, 밥 안한다 등의 사유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며 "기껏해야 20대 초반인 이들에게 한국에서 이미 폐기된 전통적인 여성상을 덧입히려는 시각을 자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혼중개업소의 폐해도 여전한 문제로 지적됐다. 권 팀장은 "외국인 여성의 선택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이뤄지는 결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인·유희진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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