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했다고, 말대꾸했다고..'죽은 목숨' 1040일
[[오마이뉴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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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직
월 64만1850원 보장
상여금 없음
잔업, 특근(월 90~ 120 시간) 필수
이런 구인광고가 났다고 하자. 당신은 선뜻 이력서를 쓰겠는가.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올해 마흔 셋의 오석순씨. 이유는 간단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지난 2005년 2월, 인터넷 구인란을 뒤지던 오씨는 '기륭전자㈜에서 일할 분'이라는 광고를 만났다. 오씨가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독산동 집에서 가까워 출퇴근이 수월해 보였다. 광고를 낸 회사로 달려간 오씨는 즉시 봉고차에 태워져 가산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 내 기륭전자로 '배달'됐다.
다음 단계는 기륭전자 관리직 간부 3인의 면접이었다. 질문은 단 하나. 간부들은 잔업과 특근을 할 수 있는지만 물었다. 어떤 사정이 있어도 잔업과 특근은 반드시 해야 한다며. 당장 취직이 급했던 오씨는 동의하고 말았다. 생산라인의 단순조립은 이전 공장에서 하던 업무와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잔업과 특근, 해도해도 너무했다
당시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이 많은 초봉 64만 1850원에 생활이 빠듯하기는 했지만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작년 3월에 결혼한 오씨는 이때만 해도 그나마 독신이었으니까. 상여금은 물론이요 명절이나 노동절에 회사로부터 비누 하나 받아본 일 없으나 그러려니 했던 게 사실이다.
면접에서 들은 잔업과 특근이 실제 강요됐을 때 '이건 좀 가혹하다' 싶었다. 규정 업무시간 이외에 잔업과 특근은 최소 80시간에서 최대 120시간, 평균 90~95시간이었다. 그렇게 일하고 나면 95만여원이 손에 쥐어졌다.
오전 8시에 시작되는 업무 때문에 늦어도 7시 50분까지는 출근해야 했다. 그때부터 10여 분간 할당된 아침 조회 시간에 관리자는 늘 같은 말만 했다. '오는 토요일에 특근을 해야 하니 약속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취소하라'는.
"특근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여러분이 더 잘 아시죠? (해고) 0순위라는 거."
원칙대로라면 오후 5시에는 퇴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오씨에게는 퇴근시간의 자유가 없었다. 회사가 정해주는 대로 밤 9시가 넘어서야 공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하루 평균 잔업 3시간. 일이 많으면 4~5시간도 더 잔업을 해야 했다. 심지어 밤을 꼬박 새운 일도 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했다. 씻고 잠이 들면 다음날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거면 됐다고 오씨는 생각했다.
"해고됐다는 문자 보냈는데 왜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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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소문만 없었어도 오씨는 참아볼 요량이었다.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하니 참을밖에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는 게 맞았을까. 그랬다. 기계처럼 일한들 대수랴. 오늘의 일용할 양식에 오씨는 만족했다. 흉흉한 소문을 듣기 전까지의 일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같은 생산라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려니 했던 오씨의 귀에 해괴한 소문이 날아들었다. 기륭전자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할 때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다는. 믿을 수 없었지만 달리 확인할 방도도 없었다. 기륭전자는 몇몇이 해고됐노라 밝힌 일이 없고 설령 해고된다 한들 부당함을 호소하러 공장을 찾는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여기서까지 잘리나! 민망했거나 비참했거나.
소문은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통해 현실이 됐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사용해 본 적 없는 한 '아줌마' 노동자에게 기륭전자는 해고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것이었다. 자신의 해고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아줌마' 노동자는 다음날도 평소와 같이 정상 출근을 했다. 답답했던 관리자가 따져 묻는다.
"아줌마, 문자로 해고됐다고 했는데 왜 나왔어요?"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걸까. '아줌마' 노동자는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을 한 뒤 돌아갔다. 흉흉한 소문의 실체였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겠으니 조퇴하게 해달라는 동료 노동자에게 관리자는 말했다.
"몸도 아픈데 집에서 쉬세요. 푹!"
공장으로 돌아올 필요 없다는 말. 결근했다고 잘리고 말대꾸 했다고 잘리고. 말 그대로 하루살이 목숨이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오씨는 그때 알았다.
"기계가 뻑뻑하면 기름도 치고 닦아서 쓴다. 결국 우리 비정규직은 기계만도 못 한,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존재였던 거다."
그리고 결심했다. 싸워야겠다고. 오씨는 그러나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 즉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 기륭전자 분회가 생기기 전인 그해 5월 4일 '전격' 해고됐다. 입사 3개월 만이었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오."
역시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잔업, 특근 빠지지 않고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자부하는 오씨는 자신의 해고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기륭전자를 찾아가 물어봤다. 왜? 관리자는 당시 함께 해고된 18인의 번호, 이름, 부서, 해고사유가 적힌 A4 용지 크기의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서류에 따르면 오씨의 해고사유는 '잡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오씨는 분명 업무 중 '잡담' 때문에 공장에서 쫓겨났다.
각설하자. 노조가 설립되고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기륭전자는 7명씩, 15명씩 선별적인 해고를 단행했다. 노조 압박을 위한 엄포성 해고였다. 그리고 해고는 계속됐다. 기륭전자의 정규직 15인, 직접고용 비정규직 30인을 제외한 불법 파견 비정규직 250여명 중 노조에 가입한 200여명이 쫓겨났다. 현재는 이들 중 35인이 남아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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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 (☞ 기륭전자분회 바로가기) 뒤 이어진 복직 투쟁 기간만 28일로 1040일. 오씨는 지금 육중한 철문으로 갈아 끼워진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27일 현재 18일째 단식투쟁중이다. 오씨를 포함한 7인은 정문 앞, 김소연(39) 분회장을 포함한 3인은 기륭전자 옥상을 점거한 채.
3년 2개월 동안 일한 기륭전자에서 김 분회장은 '계약해지'됐다. 노조가 설립되고 김씨가 분회장 자리를 맡은 시기와 일치한다. 때문에 김씨의 직접적인 해고사유는 '노조설립'이라 추측해 본다. 2006년 3월에 이어 지난 4월 두 번째 삭발을 감행한 김씨는 선머슴 같은 얼굴로 기륭전자 옥상을 지키고 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기서 내려갈 생각이 없다, 이 자리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지난한 복직투쟁 1040일이 흐르는 동안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듯싶다. 삼보일배도 해봤고 50리 길도 걸어봤다. 고공 농성, 공장 점거 농성 55일에 심지어는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의 시골집 동네 사람들을 붙들고 하소연도 해봤다. 노동부, 검찰, 국가인권위원회, 청와대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이들 기관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 피눈물로 호소해봤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1000일이 넘었다. 끔찍하다. 3년이 가까운 세월 중 절반은 노숙했다. 솔직히 지친다.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노동자들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생계 문제 때문에 근방의 다른 공장에 취직한 조합원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그러나 3개월 만에 또다시 해고돼 투쟁중인 조합원들을 찾아오곤 했다.
"너희들은 힘들어도 끝까지 싸워라. 비정규직의 삶이 어떤 건지 세상에 알려라. 그리고 꼭 이겨야 한다."
과연 비정규직만의 문제일까. 기륭전자의 정규직 노동자 15인은 임금 동결로 지난 3년을 보냈다.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에도 꼼짝 못 하고 일하는 마당에 차마 임금인상이라는 말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김 분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는 지난 20일자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수는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 살리는 과정이다. 지금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도 부당하게 구조조정 당한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뽑기도 했다. 사람을 고용하면서 동시에 해고하면 안 된다. 정규직 노동자가 일했던 곳에 파견 노동자를 고용했다. 모두를 살리는 길은 조합원들을 복직시키는 것이다."
오씨의 생각도 여기서 멀지 않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도 해악이다. 비정규직은 더 떨어질 데도 없다. 정규직은 그러나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떨어질 수 있다."
힘겹게 말을 잇는 오씨에게 물어봤다. 당신들의 요구대로 '정규직 전환, 원직 복직, 직접 고용'이 이뤄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승리'한 뒤의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오씨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말했다. 금강산 여행을 가고 싶다고. 방점은 '여행'에 찍힌다.
내막은 이렇다. 55일 현장 점거 농성 때 조합원들은 구호를 만들어야 했다. 구호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는데 한 아주머니가 '기륭투쟁 승리해서 금강산 여행 가자'고 외치더라는 것. 평소 일만 하다보니 여행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는 것을 인식한 것도 그때였다.
"승리하고 여행가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일요일까지 이어진 노동에서 해방돼 조합원이 다 같이 여행을 간다면. 그것도 금강산에!"
오씨가 눈을 반짝이며 던진 말이다.
시인 송경동은 자신의 시 '참, 좆같은 풍경'에서 이렇게 한탄한 바 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거 참, 좆같은 풍경 아닙니까
왜 부자나 정치인이나 학자나 시인들은
나이 먹을수록 대접받는데
왜 우리 노동자들은
늙을수록 더 천대받는 것입니까
송 시인은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 위원장이다.
참, 좆같은 풍경… 단식 탓이었을까. 내가 기륭전자를 찾은 지난 22일, 계속되는 구토 증세를 견디다 못해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이인섭 조합원의 '몰골'을 보며 나는 송 시인과 같은 말을 되풀이해 봤다.
"이거 참, 좆같은 풍경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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