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광장으로 나온 까닭

2008. 6. 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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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용국 기자]

나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로 오면서, 자신에게 물어본다. 난 양심을 지키는 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사회를 향한 요구는 안팎으로 많았다. 그래도 지난 10년간은 최초의 정권교체 덕분인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소한 소신을 지키고 살 수는 있었다. 공무원 내부에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해진 것도 다행이었다.

공무원, 정권 교체되니 개혁의 '걸림돌'로 전락?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우병 쇠고기 홍보 지침 ▲물 사유화 ▲공공부문 외주위탁 ▲국립대 법인화 ▲무분별한 공무원 감원 등과 관련한 정부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 이경태

21세기 들어오면서 공무원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되었고, 부족하나마 기본권을 찾자는 목소리도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임금협상도, 단체행동도 할 수 없는 노조지만, 공직사회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가능한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공무원도 정권의 의중대로, 특정 정치세력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법원만 해도 공판중심주의, 구술변론주의와 같이 과거 서류중심의 재판 관행을 벗어나려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형사사건에서 배심제가 도입되는 등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집권여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그 기간이 오히려 공무원들이 양심 있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닦은 시기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정권이 바뀐 지 겨우 백일이 되었을 뿐인데, 공직사회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공무원은 하루아침에 '머슴'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철 밥그릇만 챙기는 '개혁의 걸림돌'로 전락하였다.

새 정부, 공무원들마저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다

집권자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그 정도 표현한 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공무원만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공직사회는 부서 통폐합, 공무원 감축, 공공부문 민영화 등 이른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작은 정부,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일부 부처 통폐합을 시작으로 '3% 퇴출'이니, '10% 감원'이니 하는 구호를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마도 공무원의 감축은 국민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5월 들어서만 벌써 3차례나 1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겠는가. 공무원들마저 광장으로 나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공무원 수와 조직의 구성은 국민을 위해 조정할 필요가 있고 공무원들도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숫자만 줄이는 정책은 공무원들의 의욕을 꺾고 오히려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뿐이다. 일례로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수만, 수십만 늘어 증원을 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까지도 정부가 "일단 감축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은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구조조정, 고분고분한 공무원만 살아남게 만들 수도

14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한 공무원노조원이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을 듣고 있다.

ⓒ 권우성

공공기관의 민영화 역시 일시적으로 정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결국엔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는 수돗물 관리를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단계적으로 공사화(또는 민영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수도를 특정 기업이 관리한다고 생각해보라. 기업은 어떤 명목으로든 이윤을 남기려 할 것이고, 게다가 독점 사업이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수돗물 가격이 몇 배로 오른다는 시중의 '괴담'은 괴담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소통의 부재'는 공직사회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다수 공무원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정책 몇 가지만 들어보자. 3불 정책 재검토를 비롯한 교육정책의 전면수정, 대운하 추진, 의료보험 민영화 검토, 미국소고기 협상 강행까지 국민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소수 결정권자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공무원들, 이 때문에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공공부문 민영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역으로 생각해보자. 정부의 정책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것도 공무원이다.

지난주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 한 명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한마디로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이며 국민의 건강권을 지나치게 훼손한 협상"이라고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여 현장의 소리를 들으면서 "공무원으로서 앞에 나가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주말에 촛불집회를 지켜 본 나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나는 양심을 지키는 공무원들이 많아져야 하고, 공무원 수를 일방적으로 줄이기 전에 사회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정부의 구조조정에 살아남을 수 있는 공무원은, 바른 말하고 양심 있는 공무원이 아니라 정권의 논리에 충실한 심복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공직사회는 공무원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많지 않아서 문제이다.

정부는 먼저 공무원과 소통하는 것이 순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공무원노조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정부청사 구내식당을 통해 공무원들이 먹도록 하겠다는 정운천 장관의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 권우성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과 소통을 고민하기 전에,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장차관급처럼 정권이 임명한 고위 공무원들 말고, 묵묵히 일하는 일선 공무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시급할 순서일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광장으로 나오는 공무원들이 더 늘어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정부의 정책에 소신발언을 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고, 공무원노조 단체들도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미국 쇠고기 홍보를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이 자리를 빌어 국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 공무원을 적으로만 여기지 말아 달라. 나는 소수의 권력자를 바라보고 일하는 공무원보다 다수의 국민을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에게 따끔한 질책과 비판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양심을 지키면서 다수의 국민을 생각하는 이들에겐 격려도 해 달라.

그것이 공무원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100일을 지낸 공무원들은, 아니 4년여를 더 보내야 하는 공무원들은 정부의 하수인이 아니라 헌법이 말하는 '국민전체의 봉사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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