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어미의 절규 "소 때문에 아들 잃었네"

2008. 5. 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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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자살한 이씨가 "그렇게 즐거워하며" 꿈을 키웠던 한우축사엔 소는 한 마리도 없고 건초만 무성했다.

ⓒ 이주빈

누가 젊은 축산농부를 스스로 목숨 끊게 했는가

"우리 아들 어디 갔냐. 착한 아들 어디 갔냐. 소 키우다 목숨 갔네. 우리 며느리 불쌍해서 어찌 살까. 우리 손주 어찌 살꼬."

6일 오후 전남 함평군 나산면의 한 마을. 칠순을 넘긴 늙은 어미의 눈물은 이미 마를 대로 마른 상태였지만 곡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하루 전 아들 이아무개(41)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씨가 지었던 축사엔 소 한 마리 없이 건초만 무성했다.

이씨는 필리핀에서 온 부인(35)과 세 자녀에게도 둔기를 휘둘렀다. "다행히 네 명은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마을 주민들은 생활고에 지친 이씨가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세상 착한 사람이었제. 여직(지금까지) 지 새끼들한테 손찌검 한 번 한 적을 본적이 없응께. 척추가 아파서 허리를 제대로 못 굽히는 장애는 있었지만 소 키우는 재미에 빠져 살았거든. 그란데 브루셀라병으로 소를 열두 마리나 파묻어불고 지 속이 얼마나 탔겄어."

이씨의 이웃에 살다 119에 이들의 비극을 처음으로 신고한 윤윤순(73) 할머니는 "짠해 죽겄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소를 네 마리 키우고 있다는 나종례(73) 할머니는 "이렇게 소값 계속 떨어져 가면 (소 키우는 사람들) 다 죽는다 하제"하며 이씨의 자살을 안타까워했다. 나 할머니는 "소값이 하도 낮아서 내다 팔도 못하고 비싼 사료값만 늘어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이장인 이관행씨는 "있어서는 안될 슬픈 이야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에 따르면 죽은 이씨는 논밭 1500평을 담보로 농자금을 받아 한우 27마리로 축산을 시작했다고.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장애가 있어 혼자 농사짓는 것은 무리였거든. 그래도 소는 힘 덜 들이고 그땐 수익도 괜찮았으니까…. 그런데 생소를 다 묻어 버렸으니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자기 죽는 건 그만인데 '나 죽고 나면 한국말도 서툰 아내는 어떻게 자식들 키울 수 있을까'하는 비관에 가족끼리 같이 죽어 버리려 했겠지. 그런데 그 순한 사람이 자기 마누라 자식을 어떻게 세게 내리치겠어. 못하니까 그냥 다치기만 한 것이지."

마을회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씨가) 소 때문에 죽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 곡물가 상승으로 사료값은 계속 오르고, 미국 쇠고기 수입 여파로 소값은 계속 떨어지고...

ⓒ 이주빈

낮은 소값 때문에 축산농가에선 다 키운 소를 내다팔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이주빈

사료값은 치솟고, 소값은 계속 떨어지고...

전남 함평 지역은 '함평천지 한우'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손불, 나산, 월야, 함평읍 등에서 만난 거의 모든 축산농가들은 공통된 근심으로 한숨이 가득했다. ▲ 국제 곡물가 상승에 따른 사료값 폭등 ▲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화에 따른 소값 하락 등이 근심의 주범이었다.

이건실(60)씨는 30년 동안 축산업에 매달려왔다. 한때 젖소를 키웠던 이씨는 '젖소 파동' 이후 육우용 한우를 키우기 시작해 지금은 90마리를 키우고 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하지만 이씨는 "갈수록 빚만 늘어나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한다고 하니까 바로 소값이 떨어졌다. 송아지 사다가 키워서 비싼 값에 내다 팔 궁리를 하던 사람들도 미국산 고기 들어온다고 하니까 엄두를 못내는 거다. 소값은 계속 떨어져 내다 팔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소들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까 사료를 줘야 하는데 사료값은 계속 올라가니 느는 건 빚뿐이지."

이씨는 하루 15~16포대의 사료를 주고있는데 한달 평균 사료값은 무려 500만 원에 이른다. 이씨는 "국제 곡물가가 상승해서 사료값은 천정부지로 상승만 하고, 소값은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떨어지기만 하는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아무 것도 없다"며 "이러다간 전체 축산농가가 다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산에서 사는 김동수씨는 나이 마흔에 한우 40마리를 키울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 농군이다. 하지만 그도 요즘 "갈수록 버티기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최고일 때 500만 원까지 받고 팔던 소를 350만 원 이하로 판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전부 빚이 되는 겁니다. 사료값은 내일 또 오른다고 하죠, 소값이 싸다 보니 거래는 이뤄지지 않죠, 미국 쇠고기는 들어온다고 하죠, 누가 전망도 없는데 소 키우려 하겠습니까?"

"송암마을에서 소 댓마리 키운다"는 신철현 할아버지는 "미국 미친 소나 검역 똑바로 할 일이지 한우 검역만 복잡하게 한다"고 볼멘소릴 했다. 소를 내다팔고 싶어도 한 달에 검역이 두 번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또 한 달을 검사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검역일에 맞춰 각 축산농가에서 동시에 소를 내다 팔다 보니 소값도 공동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불에서 역시 한우 2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김아무개(43)씨. 김씨는 "지금도 한우만 쓴다고 광고하는 큰 식당에서 수입고기를 써서 맨날 방송에 나오는데 그보다 더싼 미국산이 들어오면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그것 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계속 빚 져가면서 한우를 키워야 하는지 갈등이 많이 생긴다"면서 "정부가 사료값 보전 등 대책을 빨리 세워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편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방침이 전해진 후인 지난 22일 현재 한우의 도매가격은 1㎏당 평균 1만1929원으로 지난달에 비해 16.3%나 떨어졌다. 하지만 사료값은 지난해에 비해 약 40~50% 정도 올랐다. 벌써 올해만 하더라도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사료값이 인상됐고, 5월 초에 한차례 더 오를 예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축산농가의 줄도산을 염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여파로 송아지를 사서 키워 내다팔려는 농가도 급감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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