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동포들이 어울려 사는 연해주의 재래시장

2008. 4. 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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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조선족, 고려인 등 5개국 동포의 생활터전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박창수 특파원 = 한민족 영욕의 역사와 함께 해온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땅 주인이 발해, 중국, 러시아로 바뀌면서 찬란했던 역사의 자취는 찾기 힘들어졌지만 연해주에는 아직도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 있다. 다국적의 한민족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재래시장 '스포르찌브느이 기타이스키 리낙'이 그곳.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한자명 해삼위<海蔘威>) 외곽의 재래시장인 이 곳의 러시아어 이름은 "운동장 옆에 몰려든 중국인들이 세운 시장"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4월 러시아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시장 규모가 크게 축소됐지만 아직도 수백 개의 상점이 성업 중이고, 그 가운데서도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중동포들이 중국 동북3성에서 대거 몰려와 장사하고 있다.

현지에 나와 있는 교포와 유학생은 물론 고려인과 연해주에 나와 있는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이 곳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거나 장사를 하며 어우러져 생활한다.

'평양식당','금강산','조 씨 집' 등 친근한 이름 만큼이나 인심이 좋은 곳이다. 주말이면 말끔한 서울 말씨에서부터 구수한 북한 사투리, 소박한 고려인 말씨까지 건너편 탁자에서 들려 온다.

러시아말 한 마디 못해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푸짐하게 주문할 수 있고, 각종 생필품을 모두 구비하고 있어 처음 연해주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기도 하다.

옌볜(延邊)에서 건너와 이 곳에서 10년 전부터 장사를 하고 있다는 곽 모 씨는 "남한은 물론 중국 동포와 고려인들이 식당을 많이 찾는다"면서 "특히 이 곳에서도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북한 건설노동자들한테는 조금이나마 음식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며 말했다.

그는 "러시아 비자 관련법이 지난해 강화되면서 수백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철수하게 돼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동포 상인은 "고려인들은 성실해서 상당수가 연해주에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주로 손님으로 많이 온다"며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고려인이라도 사정이 딱한 사람들도 시장을 찾는다. 구 소련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연해주로 되돌아 온 사람들 중에 아직 러시아 국적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우수리스크시 등지에 상당수가 있고,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이들의 정착을 돕고 있지만 서류작업이 늦어지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 북한,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 의지와 상관없이 각자 다른 국적을 갖고 있는 이들은 때로는 서로 경계하면서, 때로는 정겨운 웃음을 주고 받으며 한데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남의 땅에 사는 사람들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러시아 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또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 들면 상인들이 몰려나와 못 찍게 하거나 아예 가게 문을 닫아 버리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입에 맞는 음식을 그나마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연해주를 통틀어서 이런 시장밖에 없고, 쌀과 김칫거리 등 거의 모든 생필품도 이 곳에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단속을 두려워하기는 상인 뿐아니라 동포사회도 마찬가지다.

4년째 이 시장에서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는 이우용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어 교육원장은 "같은 민족이 다국적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 시장을 갈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농업에만 국한된 동포지원 사업이 상업 등으로 다양화돼서 이들이 하루 빨리 현지 주류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p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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