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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80평생 ‘가난한 이웃’ 렌즈에 담기 최민식 사진작가

경향신문 | 입력 2008.03.10 17:28 | 수정 2008.03.11 09:44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부산

 




ㆍ"사진은 휴머니즘과 정직이 생명…포토샵에 빠지면 끝"

가난한 사람들의 애틋하고 찡한 생활상을 담아온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개인전이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표 작가이자 부산에 사는 지역 작가이기도 한 그를 지역 미술관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올해로 80세가 됐다. 작고 말랐지만 단단한 몸매에, 빵모자와 사파리 자켓을 입고, 한 쪽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멘 모습은 앞뒤 재지 않는, 영락없는 사진기자 같은 모습이다. '사진으론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고, 나올 건 다 나왔다'는 말이 돌며 사진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시키는 작품이 많은 요즘, "사진은 스트레이트이며,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진실"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그를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만났다.

-이번 전시에는 어둡고 우울한 것보다 밝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가난을 체험한 사람은 추억으로 보고, 젊은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싫어해요. 왜 이렇게 힘들고 못사는 걸 굳이 찍느냐는 거죠. 창작자나 감상자나 다 자기 입장에서 보는 겁니다. 어떤 느낌을 강요하진 않아요. 또 '그 옛날 어떻게 이 정도로 사진을 잘 찍었느냐'고도 말하죠. 보통은 처음엔 미숙했다가 실력이 점점 나아지는데 제 작품은 초기부터 일관되다고 평가합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선생님 작품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살아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포착해 낼 수 있는 감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요.

"인간은 애환이 있습니다. 촬영 대상을 발견하는 동시에 기쁨과 슬픔이 담긴 그 표정을 읽어야 해요. 그런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가능하죠. 발견하면 전부 찍어야 합니다. 놓치면 안돼요. 심지어 싸움하는 장면도 찍어야죠. 전시에 걸린 69점 모두 다 연출하지 않은 사진입니다. 조명과 삼각대도 쓰지 않았고 트리밍(원화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브레송(프랑스 사진작가)처럼요. 다큐멘터리 스냅의 기초는 브레송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전시에 초청돼 사진을 가져가면 가난한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이 담긴 사진만 선택됩니다. 예쁘고 깨끗한 사진은 빼죠. 인도 등 외국에서 찍은 사진도 뺍니다. 다른 작품과 비교하지도 않고 작품 하나하나만을 보며 '이거다'하고 고르죠. 한국적 모습을 리얼하게 담은 사진을 결국 높게 평가하는 겁니다."

-선생님 작품은 유명하지만 돈이 된 것은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으셨습니다.

"사진은 의식, 시간, 돈이 삼위일체 돼야 할 수 있는 겁니다. 돈이 벌리지 않으니 경제적으로 외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톨릭 수도원의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죠. 지금까지 13권의 사진집을 냈고 올 겨울이나 내년 초쯤 14집이 나옵니다. 사진집을 이만큼 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죠. 열심히 하다보니 어떻게든 꾸려나가게 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셨는데 사진작가로 일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느끼고 계신가요.

"제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지게꾼, 넝마주이, 군고구마 장수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또 아버지가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제사 안 지낸다고 종친에서 쫓겨나 황해도 연백에서 경북 안동으로 옮기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가톨릭 성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제가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밀레처럼 농민을 그려라'하셨죠. 돈 벌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또 하느님께서 눈을 밝게 해주시고 건강도 주셨습니다. 저는 사람의 표정을 읽어야 하는 사진작가예요. 눈이 나쁘면 풍경밖에 못찍죠. 저에게 사진하라고 복을 준 것입니다. 제가 굉장히 하고 싶어 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드문 일이죠. 80세인데 젊은 사람도 잘 못읽는 작은 글씨를 보니까요.

-사진을 찍다보면 사람들에게 욕도 듣고 쫓겨나기도 하시는데요, 그럴 때마다 기가 죽거나 작업에 회의가 들진 않으셨나요.

"욕해도 상관없어요. 다큐하는 사람들은 목숨걸고 해야 하는 거예요. 셔터를 눌러야 사진이 나오죠. 대담하고 용감해야 해요. 사진은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 찍는다고 욕하면 전 일본어로 'あの…ね, なんですが'(저…무슨 일입니까)하고 도망가요(웃음). 사진찍고 나면 도망가야 해요. 이걸 극복해야 스냅을 찍을 수 있는데 못하니까 풍경으로 가는 겁니다."

-최근엔 어떤 작업을 하십니까. 지금은 1950~60년대처럼 대다수가 가난한 시절은 더 이상 아닌데요.

"요즘엔 1년에 한 번씩 개발도상국에 갑니다. 보름 정도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을 찍죠. 국내에선 찍을 것이 많이 없어졌어요. 산동네도 줄고…. 초상권 문제로 항의도 많으니 자갈치 시장에 나가도 함부로 못 찍죠. 훨씬 잘 살게 됐으니 지금은 사람 얼굴색도 달라졌어요. 요즘에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구걸은 해도 막노동은 안 하려고 해요."

-미술품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사진 작품들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어떤 사진 작품은 1억원대에 팔리기도 한다죠. 하지만 이런 것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찍는 것은 여전히 돈이 안되니까요. 제가 찍은 사진이 이제는 평가받고 전시할 수 있게 된 것만도 많이 달라진 거예요. 요즘엔 상을 받으면 상금으로 1000만원 줘요. 창작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옛날엔 어림도 없었죠. 저로선 만족스럽고 기쁩니다. 사진하는 보람을 느껴요. 군사독재 시절엔 가난하고 못사는 모습 찍어 북한에 보내려고 한다며 사진도 못찍게 했어요. 고문도 받았죠. 외국에 못 나가게 여권도 만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시대가 변하니까 문화훈장을 주더라고요. 허허."

-사진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사진은 정직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자꾸 꾸며대고 조작하면 안 돼요.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에 재미 붙이면 끝나는 겁니다. 수강생들에게도 포토샵을 사용하지 말라고 해요. '스트레이트로 찍어라' 해도 말을 잘 안 들어요. 스트레이트로 셔터 누르면 거기서 끝내야 하는 거예요. 사진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현장감 있는 겁니다. 거기에 진실이 있어요.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진실입니다. 연극, 문학은 관념으로 되지만 사진은 현장으로 가야 해요. 조작하면 가치있는 사진으로 평가받을 수 없어요. 또 사진집을 많이 사서 봐야 합니다. 이론과 기법은 따로 공부할 게 아니에요. 사진을 보면 그 속에 다 있는 겁니다. 요즘엔 남의 사진 보면 모방하게 된다며 아예 사진집을 안보는데, 간접체험을 해야 배울 수 있는 거예요."

-앞으로 작업 계획은 무엇입니까.

"제 사진집 시리즈 '인간(HUMAN)'의 14, 15, 16집을 만들 자료가 있습니다. 찍으면서 보충해 책을 내야죠. 자금이 마련될 수 있다면 아프리카 난민들의 생활상도 찍고 싶어요. 아프리카 중부 지역에 가면 난민들이 모여사는 천막이 1000개나 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찍고 사진전도 하고, 책도 만들고, 모금운동도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인류는 하나다, 세계는 모두 형제'란 주제의 작품을 하는 게 예전부터 꿈이었어요."

▶최민식은 누구

최민식 작가는 192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후 모직회사를 다니다가 화가의 꿈을 안고 55년 일본으로 밀항,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을 수료했다. 이 시절 헌책방에서 에드워드 스타이겐의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보고 느낀 감동이 사진작가가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왔다. 한국국전 입선(1964), 대한사진문화상(1995), 동강사진상(2005) 등을 받았으며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개인 초청전을 열었다. 개인사진집 '인간(HUMAN)'을 현재 13집까지 냈으며 부산대, 인제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 부산 | 글·사진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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