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찍은 사람들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경제"

2007. 12. 1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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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 남소연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 남소연

[강남풍경③]개포동 주민 "이명박의 부동산 완화 기대치, 언론에서 과장"

'이명박 후보 당선=부동산 시장 활성화'

오늘 만난 강남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17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2시간여 앞둔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을 찾았다.

개포주공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큰 움직임은 없었다.

주민들은 이를 두고 "언론에서 과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몇몇 경제신문에서는 '호가 상승세', '재건축 대선 기대감에 꿈틀'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강남의 대표적 재건축 대상 단지인 개포주공아파트 1~4단지의 주민들은 "기대를 한다"면서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순(55)씨는 "주민들이 재건축을 위해 이명박을 찍었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권영길 후보 이웃사촌, 누굴 찍었을까?

강남에 사는 권영길 후보의 이웃사촌들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졌을까? 일부에 국한된 것이겠지만 적어도 투표 날 기자가 만난 이들은 권영길 후보를 찍지 않았다.

오후 3시 권영길 후보가 사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호정빌라트 인근. 종종 권 후보와 인사를 나눈다는 70대 노인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를 뽑았다"고 밝혔다. 투표할 때 권 후보가 이웃사촌인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호정빌라트 맞은편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양지승(52)씨는 "민주국가에서는 이웃이라고 찍어주고 그러면 안 된다"면서 "소신 있게 투표했다"고 밝혔다.

종종 권 후보가 옷을 맡기로 온다는 양씨는 "권 후보의 홍보유인물을 더 유심히 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호정빌라트 인근 옷수선집의 옥모(53)씨 역시 "사모님과 인사를 하는 사이이지만, 투표하는 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대는 아직 현실에 영향을 준 단계는 아니었다. 이씨는 "이미 꼭대기까지 올라서 크게 오를 거라고 기대는 안 하고, 정책이 확정되는 3월까지는 주민들은 관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애(49)씨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나타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여러 번 당했다,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인근 공인중개소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나타냈다. 이상호 개미부동산 사장은 "매물이 극히 적고, 사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기사는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이어 "매물을 거둬들이는 사람은 없지 않지만, '거둬들인다'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매물을 내놓았는데, 몇 달 째 전화 한통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강남 개포동주공아파트 모습.

ⓒ 선대식

[강북 풍경③] 중계본동 달동네 사람들은 누구를? '최고 부자 후보 선택'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에 사는 중계본동 사람들은 어떤 후보를 다음 대통령으로 생각했을까.

한 할머니가 달동네 밑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한 폐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번 연탄값 인상 문제로 취재할 때 만났던 김하봉(74) 할머니였다. 종이더미를 모아놓은 안에 선거공보물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주름이 깊게 팬 뺨 위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누구 찍으셨어요?"

"그런 걸 말해도 되나? 묻지 마요."

입을 다물고 계시던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깐 2번 많이 찍었다던데요"라고 운을 떼니 미소를 지으면서 "나도 그 사람 찍었어"라고 말했다. '왜 2번을 찍으셨냐'고 물어봤다. 할머니는 "잘 모른다"며 연신 손을 훼훼 내젓는다.

"나한테 묻지 말어. 그냥 이 동네 사람들 많이 2번 찍었어."

길에서 만난 박모(59)씨도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고 했다. 박씨는 "누가 되더라도 우리까지 신경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라 전체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도 좀 나아지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박씨 옆에 있던 이종희(43)씨도 "5년 동안 연탄값이 무지하게 올랐다"며 거들었다.

그들 외에 만난 주민들의 대다수 반응도 같았다. "경제를 좀 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 밖의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러나 상계역 앞에서 어묵이며 떡볶이를 팔고 있는 김모(61)씨는 달랐다. 정동영 후보에게 "자기 표를 줬다"고 했다. 김씨는 "이렇게 노점을 하고 있으면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간다"며 "좀 나이 드신 분들은 이명박은 나이가 많아 안 되니 이회창을 찍어야 된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문국현을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 말했다.

"정동영에게 투표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다. 김씨는 "이명박은 BBK 때문에 되면 안 될 것 같았다"며 "같은 당인 오세훈이 시장이 되고 나서 장사하는 것도 더 힘들어졌고"라며 말 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대선이라는 게 한 번 갈아본다는 취지지. 크게 다른 것이 있겠냐"고 덧붙였다.

"우리 사는 거 나아지려면 없는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해. 있는 사람들이 이런 거 먹겠어? 훨씬 비싼 거 먹겠지.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지만 그래도 이명박보다는 낫겠지."

[강남풍경②]북적이는 '강남투표소' "5년간 너무 힘들었다"

강남은 달랐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저 투표율이 예상되지만, 서울 강남구 압구정·신사동의 투표소는 유권자들로 북적였다.

'강남' 시민들은 30여분 간의 기다림 끝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한 유권자는 "투표할 때 이렇게 줄이 길게 늘어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정권 교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낮 12시 30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 앞에는 외제차·고급차들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인근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들까지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현대고에 마련된 투표소엔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투표소 안에는 50여m에 가까운 줄이 길게 이어졌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부도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도 눈에 띄었다. 투표소가 마련된 인근 신사중학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고 앞에서 만난 박용철(54)씨는 이를 두고 "정권 교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말했다. 투표를 위해 40여분을 기다렸다는 박씨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아무개(44)씨는 "나이 많은 어른들은 종부세 무효소송도 하는 등 정권교체를 정말 절실히 원한다"며 "5년간 너무 힘들었다,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투표를 위해 30여분 이상 기다린 신철환(39)씨도, 김모(62)씨도 모두 이에 동의했다. 그들은 "여긴 다 이런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 역시 부모세대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김아무개(29)씨는 "이 지역 사람들은 노무현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다"며 "부모님도 5년 동안 너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그러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가 좋다기보다는 무조건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첫 투표를 행사한 이준환(20)씨 역시 "5년 동안 한숨 짓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방금 친구들한테 전화해봤더니, 문국현 후보를 찍은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19일 오후 강남 현대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장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강북 풍경②]동대문 풍물벼룩 시장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

선거 직전까지 온갖 의혹 공세에도 지지율 1위를 지켰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한 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이다. 그렇다면 청계천 복원의 최대 피해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청계천의 상인들의 새로운 터전인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을 찾아갔다.

"이 후보를 찍었다."

의외였다.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기호 2번을 찍었다고 이야기했다.

시계 · 귀금속을 파는 천현선(55)씨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지 청계천으로 이곳으로 온 우리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곳에 있는 상인들은 전부 MB를 찍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우린 등 따습고 배부르면 된다"

"이명박, 오세훈은 약속 저버렸다"

동대문상가 지하의 표심은 지상과 달랐다.

지하상가 곳곳에는 현수막과 함께 이 후보와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지하상가 역시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지하상가를 스쳐지나가는 시민들은 많았지만 정작 상인들과 흥정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떤 상인은 모로 누운 채 잠을 청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흐린 눈으로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스포츠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형연(35)씨는 "이곳의 상인들은 절대 이명박을 찍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을 볼 수 없어 차선책으로 정동영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후보는 서울시장을 할 때 지하상가의 상인들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오세훈 시장도 서울시장 당선되기 전에 지하상가를 꼭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둘 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지하상가 상인회가 이명박이랑 오세훈 모두 당선시킨다고 발 벗고 나섰다. 그랬던 우리보고 나가라고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미 동대문운동장 철거가 시작되고 있다."

전 서울시장이었던 이 후보는 청계천 상인들을 이곳으로 이전시키면서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풍물벼룩시장의 상인들은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의 공언, 상인들의 기대와는 다른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그 때야 힘들었지. 그렇지만 이젠 협의가 잘 되어서 서울시가 돈도 투자해서 건물도 지어주기로 했으니깐. 여기보다는 생활조건이 더 낫잖아. 이명박이 되면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테고..."

피혁제품을 파는 임정규(63)씨는 "어차피 정치판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라도 오염되기 마련"이라며 이 후보를 옹호했다. 임씨는 "우리는 등 따습고 배부르면 된다"며 "솔직히 깨끗하다던 노무현을 찍었더니 빚만 더 늘었다"고 덧붙였다.

"정책 대결? 그런 게 있었나. 서로 남 깔아뭉개려고 하고, 흠집 내려 하고 이제는 혐오감만 생기더라. 비전을 보여준 것도 없고... BBK 그거 아무 것도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사기꾼한테 걸렸다가 뒤늦게 빠져나왔으면 된 거 아닌가."

주방용품을 파는 박정화(46)씨는 "그냥 큰 이유 없이 이 후보를 찍었다"며 "직감에 이 후보가 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 같았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건설경기 살아날 것" vs. "거짓말 이명박 찍을 수 없어"

시장에 온 물건을 사러 왔다는 송경호(58·신길동)씨도 "봉급생활자 10명이 쓰는 돈보다 건설노동자 10명이 쓰는 돈이 훨씬 크다"며 "MB가 되고 건설경기가 풀려 인력시장에서 사람이 딸린다는 이야기가 돌아야 나라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라고 상인들의 MB지지를 거들었다.

그러나 몇몇 손님들은 "이명박 말은 믿을 수 없다"며 상인들과 소소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구지철(40)씨는 "나도 이명박하는 말 다 믿고 지지했는데 '이명박 강연 동영상'을 보고 완전 실망했다"며 "광운대에서 다 인정했으니 그게 조작될 리도 없고 결국 이명박이 거짓말 한 것인데 그런 사람 찍을 수 없어 정동영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동대문풍물시장의 상인들은 이명박 후보의 청계천 복원으로 한낮에도 백열등을 켜야 하는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곳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곧 헐릴 처지다. 그러나 이들은 "이명박은 우리를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 이경태

[강북풍경①]남대문시장 "찍을 만한 후보 없어 안 갔어"

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9시 남대문 시장 골목 곳곳에 자리잡은 가게들은 이미 모두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배달하는 상인, 옷가지에 묻은 먼지를 채로 털어내고 있는 상인, 좌판에 생선과 야채를 벌여놓고 세수대야 위에 앉아 있는 상인까지 모두가 일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시장 입구 골목에 자리 잡은 칼국수집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칼국수 한 그릇 말아주십시오" 하고는 밀가루 반죽을 썰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투표는 하고 나오셨냐"고 뜬금없이 물어봤다.

"아... 그럼 하고 왔죠. 새벽부터 하고 나왔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일찍 투표하고 나와야 돼. 일찍 안 나오면 오늘 손님은 어떻하나."

올해로 예순 둘이라는 할머니는 20년 이상을 이 골목에서 장사하셨다고 한다. 박종철 열사가 죽기 전부터 이 골목에 있었다고 했다. "요새 많이 힘드실텐데 누가 대통령 되면 좀 살림살이가 필 것 같냐"고 여쭤봤다.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죠. 지난번에도 이회창이 되는 줄 알았는데 노무현이 됐잖어."

"그래도 이명박이 될 것 같은데요. 할머니는 누구 찍으셨어요? 이명박?"

"아이고. 말 못하지. 누가 될지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돼."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서로 싸우기나 하고 참, 사람 욕심이라는게... 어제도 이회창씨가 1번은 안된다고 나라가 큰일 난다고 말하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몰라. 뉴스 보니깐 국회에서 누가 지팡이로 사람 막 밀던데 그 지팡이는 어디서 난 거래?"

"기권으로 한표 행사했다"

17대 대통령 선거일인 19일 오전 남대문 시장의 상인들은 어느 때와 변함없이 바빴다. 상인들 중 일부는 "찍을 사람이 없다"며 "이번 선거는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 이경태

BBK 특검법 상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쓴웃음이 나왔다. 할머니 옆에서 장사 준비를 도우시던 '고모님'은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나라 살림이 피냐"며 "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대선 후보들 유세 많이 왔는데 마음에 드신 분들 계시냐'고 물었더니 "명동에서 1번이 색시랑 손 잡고 춤추는 것 봤는데 나 같은 무식한 사람이 봐도 그건 별로였다"며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나라가 계속 시끄러우면 안 될텐데..."라면서 대선 이후를 걱정했다.

'고모님'은 "이 조그만 나라에 대통령 후보가 12명이라는 것이 말이 되냐"라고 반문했다. 옆에서 칼국수를 드시던 손님도 "찍을 사람이나 있기는 하냐"며 한마디 거들었다. 자신을 L그룹 홍보실에서 일하다 그만 둔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 손님은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고, 최악보다 차악을 택하라고 하지만 그럴 수 있냐"며 "나는 기권으로 내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권으로 내 표를 행사했다"고 한 이들은 남대문 시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시장에서 보세옷 장사를 하고 있는 김홍표(39)씨는 "찍을만한 후보가 없어서 투표소로 안 갔다"며 "누가 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실 MB가 될 것 같은데 요새 뉴스 나오고 하는 것보니깐 투표하기가 영 께름칙했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4년 째 악세서리 장사를 하고 있는 허윤(43)씨는 "투표하러 가는 것보다 오늘 장사가 얼마나 더 중요하다"며 "(선거는) 우리랑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족발집을 하고 있는 김윤경(39)씨는 "글쎄 지금은 이명박이 대세인 것 같다"며 "오늘 남편과 같이 투표하고 시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어제 애 아빠랑 이야기를 좀 했어요. 정치인들 하는 이야기 믿을 건 못 되지만, 그래도 이명박이 되면 좀 낫지 않겠나. 뭐 그런 이야기를 했죠."

"투표함 뚜껑이 열려야 결과는 안다"고 말한 남대문 시장 칼국수집 할머니는 끝까지 성함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사진 촬영도 "자신들은 TV 촬영도 안 한다"며 고사했다. 결국 밀가루 반죽을 써는 모습만 촬영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 이경태

[강남 풍경①]

"도덕성? 누군 깨끗하냐?"

투표장 인사말이 '과반수 합시다'

"(투표장에) 줄 서서 서로 인사말이 '과반수 합시다'인 거 있지."

19일 오전 11시 30분. 강남 압구정동 현대고에서 투표를 했던 한 유권자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보내온 강남 압구정동 현대고 투표소 풍경이다.

그는 "현대고 투표소는 오전 11시께 유권자들의 줄이 80m 가량 늘어서 있었다"며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휠체어를 타고 투표장에 온 나이든 분들과 젊은 자녀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눈에 많이 띈다"고 전해왔다.

이명박 6, 문국현 1, 이회창 1, 무효 1. 19일 오전 투표소 앞에서 만난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민심이다. 대부분 이명박 후보에 표를 던졌고, 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한 주민은 "이명박을 왜 찍느냐고 물어보면 말조심하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밝혔다. 이 후보에 투표한 이유를 묻자 그들의 입에서는 '경제', '세금', '노무현'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튀어나왔다. 도덕성에 대해서 묻자 손사래를 치며 "누군 깨끗하냐"고 반문했다. 대통령 선거일, 강남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오전 8시 30분 도곡역에 닿았다. 도곡역 입구 앞에서 토스트를 팔고 있던 노점상은 "다 이명박 찍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세금 내려가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기대"타워팰리스와 맞은 편에 위치한 투표소인 숙명여중고 사이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투표를 마치고 발길을 재촉하던 김아무개(56)씨는 누굴 찍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MB"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명박 후보가 되면 세금이 내려가고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며 지지 이유를 밝혔다. 그에게 이 후보의 도덕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김씨는 "다 똑같다, 누군 깨끗하냐"고 말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19일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2번을 찍었다"고 말했다.

ⓒ 선대식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노인은 종합부동산세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합부동산세가 부담스럽다"며 "나라뿐만 아니라 국민도 살게끔 세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종부세 대한 불만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규탄'으로 이어졌다. 그는 "누가 아파트 값 올려달라고 했느냐, 노무현이 한 게 뭐 있느냐"고 외쳤다. 그는 기호 2번을 찍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종부세, 양도세 등 세금으로 인한 반노무현 정서는 이명박 지지로 이어졌다. 오옥경(47)씨는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다 이명박을 찍는 분위기"라며 "사우나에서 사람들에게 '왜 이명박을 찍느냐'고 했다가 '말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떻게 부패도 상관없다는 상황까지 왔는지 놀랍다"고 밝혔다. "사기치는 사람은 끝까지 사기친다"반면 문국현 후보를 찍었다는 오씨는 "사기 치는 사람은 끝까지 사기 친다"며 "깨끗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정아무개(45)씨는 "이명박 후보는 너무 독선적"이라며 "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위 '13번'을 찍었다는 주민도 있었다. 치과의사인 유모(64)씨는 "이명박은 거짓말쟁이고, 정동영은 빨갱이고, 이회창은 너무 늙었다"며 "찍을 사람이 없어, 무효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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