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시위 뒤 계획된 테러..법원, 충격 속 대책마련 부심

2007. 1. 16.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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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직 고위 법관이 사건 당사자한테서 테러를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법원과 일선 법관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5일 저녁 병원을 찾아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위문했으며,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은 부장판사 20여명과 함께 비상 간부대책회의를 열고 법정 출입자 검색과 경호를 강화하는 등의 예방책을 논의했다.

"위협만 하려 했다"?=

김아무개 전 교수는 이날 저녁 6시께부터 박 부장판사가 사는 아파트 2층에서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관용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걸어오자 1층으로 내려가며 접근했다.

경찰은 "김 전 교수는 '석궁에 화살을 장전해서 겨누고 있는데, 박 부장판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석궁이 발사됐다'고 진술했다"며 "석궁은 위협하려고만 가져갔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석궁은 6개월 전 취미 활동을 위해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가게에서 샀다고 김 전 교수는 말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하지만 김 전 교수가 박 부장판사를 기다리던 아파트의 복도에서 부엌칼 1개와 석궁 화살촉 6개가 발견돼 '계획된 범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 부장판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 삼성동 서울의료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의료진들은 박 부장판사가 병원에 스스로 걸어 들어왔고, 복부에 맞은 화살은 이미 뽑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박 부장판사는 밤 9시께 병원을 옮겨줄 것을 요구해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했다.

충격에 빠진 법원=

판사가 법정 바깥에서 사건 당사자한테서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에 일선 판사들은 "믿어지지 않는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판사가 이토록 심각하게 습격당한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인데, 사회가 법치주의를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판결이란 아무리 좋게 내려도 50% 이상은 불만을 품는 당사자가 생기기 마련"이라며 "앞으로 판사들이 알게 모르게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 이번 사건은 아주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 일각에서는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브로커들과 어울리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법원의 권위가 최근 크게 훼손된 점과 연결짓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 조 전 부장 사건 이후 법원에서는 사건 당사자가 재판장을 향해 분뇨를 뿌리거나 재판정에서 흉기 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순혁 김기태 기자 hyuk@hani.co.kr

■ 법관 테러한 김아무개 교수는 누구?

판결에 불만을 품고 고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상처를 입힌 김아무개(50) 전 ㅅ대 교수는 대학의 입시 오류를 지적했다가 부당 해직됐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수학계 일부는 그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학교 쪽은 김 전 교수의 사회성 부족과 자질 문제를 들어 재임용 탈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김 전 교수는 '사건' 직후인 1995년 10월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단을 구했지만, 법원은 "교수 임용은 학교법인의 자유재량"이라며 패소 판결했다.

이후 외국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내 온 김 전 교수는 2005년 귀국해 재임용 탈락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부당한 재임용 거부의 구제 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는 사립학교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그 후속 조처로 사립학교법이 2005년 1월 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서 소급 적용을 배제했던 것이 주된 논거였다.

재판부는 김 교수의 자질 문제도 언급했다. 지난 12일 2심 재판부는 그의 상습적인 폭언과 자의적인 성적 처리에 반발한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는 사태를 빚은 점 등을 들어 "교원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과 자질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교수는 재판 진행 중 1년 넘도록 서초동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으며, 고위 법관들의 실명과 함께 욕설을 담은 게시판을 들고 시위를 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결국, 김 전 교수는 판사마저도 자신의 부당한 해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경찰에서 당당한 표정으로 취재 기자들을 향해 "법을 무시하는 판사에 대해,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알리기 위해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썼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순혁 김기태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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