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젖' 먹이는 갑옷바퀴?

입력 2006. 9. 16. 03:06 수정 2006. 9. 1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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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면서 단한번 낳은 자식을 극진히 돌보는 곤충이 있다. 최근 이 곤충은 어린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종인 갑옷바퀴 얘기다. 갑옷바퀴의 이런 독특한 행태는 진화론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깊은 산에만 사는 바퀴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박영철씨(현 이화여대 동물행동 및 생태연구실 연구원)는 1996년 강원도 홍천군 계방산에서 처음 보는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쓰러진 썩은 나무속에 6~7㎝ 길이의 굴을 파고 부부와 새끼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성충의 길이는 2㎝ 가량으로 온몸이 매끄럽고 단단한 키틴질로 덮여 있었다. 박씨는 지도교수이던 서울대 최재천 교수(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세계적 바퀴 전문가인 프랑스 자연사박물관 그랑콜라 박사 등과 함께 이 바퀴를 2001년 국제학회에 신종으로 보고했다.

갑옷바퀴는 다른 바퀴와 달리 썩은 나무를 먹는다. 따라서 숲이 우거진 깊은 산속에만 산다. 나무의 섬유소는 장속에 공생하는 원생동물이 분해해 준다. 나무를 먹는 흰개미와 똑같다. 갑옷바퀴가 바퀴와 흰개미를 연결하는 진화의 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지극한 모성애와 부부애

=갑옷바퀴는 여러 점에서 보통 바퀴와 다르다. 먼저 수명이 8~9년으로 곤충 가운데 가장 긴 편이다. 성체가 돼 번식을 하기까지 5년이나 걸린다. 이때 만난 부부는 해로한다. 성체는 알집 2~4개를 한번만 낳는다. 한달 남짓 지나 7~8월에 알집마다 30마리쯤의 새끼가 부화한다. 부부는 새끼들이 자랄 때까지 3년간 돌본 뒤 죽는다.

갓 태어난 새끼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섬유소를 분해해 줄 공생균이다. 어미는 공생균과 영양분을 섞어 액체 형태로 배설해 새끼들이 먹도록 한다. 이런 행동은 새끼의 장속에 원생동물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약 2달 동안 주기적으로 되풀이된다. 갑옷바퀴 성충은 새끼를 기르는 데 정성을 다한다. 몸을 쓰다듬어주고, 입이 약한 새끼들이 먹기 좋도록 나무를 잘게 부숴 주기도 한다. 지네 등이 침입하면 동굴을 몸으로 가로막고 접근하는 다른 바퀴를 물리친다.

최근 박영철 박사는 갑옷바퀴가 일종의 '수유행동'을 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한국동물분류학회지>에 냈다. 공생균이 새끼 장에 착상한 이후에도 새끼들이 어미 주변에 주기적으로 모인다는 데 착안했다. 새끼들은 하루 2~3번씩 어미의 배 가장자리에 몰려들어 앞다퉈 무언가를 핥는 행동을 했다. 배와 다리의 연결부위에서 점액이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 전자현미경 관찰 결과 배 가장자리에서 점액이 고일 수 있는 함몰부위 수십곳이 발견됐다(사진 참조). 박 박사는 "분비물에는 새끼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과 성장촉진호르몬, 항체 등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분비물의 성분과 분비선의 확인이 다음 연구과제"라고 말했다.

추운 겨울이 사회성 낳아

=갑옷바퀴가 벌·개미·흰개미 등 사회성 곤충에 버금가는 사회성을 갖게 된 이유는 논란거리였다. 유력한 설명은 공생균을 새끼에게 전달할 필요 때문이라거나 썩은 나무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사회성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박 박사는 최근 '기후가설'을 발표했다. 갑옷바퀴 속에 포함되는 종들은 현재 미국, 중국, 우리나라의 온대지역 고산지역에서만 발견된다. 혹독한 겨울을 나야하는 공통점이 있다. 갑옷바퀴는 11월 중순이면 장 내용물을 비우고 이듬해 3월까지 겨울잠에 들어간다. 이런 역경 때문에 새끼의 발육이 더디고, 이는 다시 번식을 한번에 국한하고 새끼를 오래 돌보는 사회성을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박 박사는 "갑옷바퀴의 '미덕'은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확산하려는 진화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바퀴벌레 FAQ

-바퀴벌레는 모두 해롭나.

=그렇지 않다. 전세계의 바퀴벌레는 모두 4천~5천종이며, 이 가운데 인간 거주지에 사는 것은 50여종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가 해충으로 규정한 것은 10종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8종의 바퀴벌레 가운데도 집에 사는 것은 바퀴, 집바퀴, 먹바퀴, 이질바퀴 등 4종이다.

-바퀴벌레는 방사능에 강하다?

=핵전쟁이 나도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는 얘기가 있지만 방사능에 얼마나 강한지 따로 연구된 결과는 없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탈피할 때만 세포분열을 하기 때문에 항상 세포분열을 하는 척추동물보다 방사능에 강한 것은 사실이다.

-독일바퀴는 독일에서 왔나? 미국바퀴는?

=등에 한 쌍의 세로줄이 있는 독일바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해 그냥 '바퀴'로 불린다. 동남아 원산으로 린네가 이름을 붙일 즈음 무역선을 타고 독일에 번창했을 것이다. 독일에선 이 바퀴를 '러시아바퀴'로, 러시아에선 '폴란드바퀴'로 부른다. 미국바퀴는 우리나라에서 미국바퀴라 부르는 큰 종으로 남부지방에 많다. 원산은 중앙아프리카로 노예무역선을 타고 미국에 번졌다.

-알은 어떻게 낳나.

=바퀴는 수십개의 알이 들어있는 난협을 3주일 동안 몸에 매달고 다니다가 부화 직전 안전한 곳에 떨어뜨린다. 어떤 바퀴는 난협을 몸속에 집어넣어 알에서 깬 새끼가 몸에서 나오는 난태생으로 번식하고 태생을 하는 종도 있다.

-얼마나 빠른가.

=바퀴는 더듬이와 꽁무니의 털을 이용해 공기의 미세한 진동도 감지해 재빨리 달아난다. 속력을 높일 땐 공기의 저항 때문에 몸의 앞부분이 들려 뒷다리 두개만으로 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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