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린 목사 당신의 삶은 격동기 민족사였습니다

2006. 7. 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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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신앙인이요 민족지도자였던 문재린 목사 부부의 회고록이 출간돼 그동안 단절됐던 북간도 독립운동과 기독교 운동사가 조각보처럼 복원되고 있다.

최근 삼인에서 출간한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은 문재린(1896∼1985) 목사와 부인 김신묵(1895∼1990) 권사의 회고담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민주화 공간에 이르는 긴 여정을 기독교 신앙을 빛내며 민족지도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동안 큰아들 문익환(1918∼1994) 목사, 둘째아들 문동환(85) 목사의 이름에 가려 있었지만, 회고록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한국 교회와 우리 민족사에서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회고록이 소중한 것은 당시 유학 사상에 젖어 있던 북간도의 한민족 공동체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그 신앙을 토대로 어떻게 민족의 자주 독립, 평등과 자유, 민족 화해와 통일 운동까지 삶의 원동력으로 삼게 되었는가 하는 비밀 코드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한국 독립운동에 끼친 공적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예컨대 문 목사가 몸담았던 북간도 동만주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은 단순한 선교를 넘어 한민족을 깊이 이해하고 자립·자존하도록 돕는 등 교육자요 후원자로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 교회의 '평신도 운동'이 문재린 목사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회고록은 고 문익환 목사의 외동딸 문영금(58)씨와 문동환 목사의 첫째딸 문영미(40)씨가 뒤늦게나마 조부모가 남긴 회고록 초안과 노트, 사진, 구술 테이프 등을 정리해 엮었다. 문재린 목사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회고록이 세상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집안 대대로 겪었던 고초를 짐작할 수 있다.

문 목사는 함북 종성에서, 김 권사는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각각 네 살, 다섯 살 되던 해 한날한시에 부모 손에 이끌려 북간도로 이주해 광복 후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쉰이 넘어 남으로 내려온 뒤에도 줄곧 고락을 함께 했으니 일생을 친구처럼, 동지처럼 산 셈이다. 문 목사의 집은 민족지도자들의 사랑방 같은 곳으로, 안중근 의사도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회고록 제호 '기린갑이'와 '고만녜'는 문 목사와 김 권사의 어릴 적 이름. 기린갑이는 하도 온순해 기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고만녜는 넷째딸로 태어난 김 권사를 끝으로 이제 딸은 고만 나오기를 바라서 붙여졌다. 그 뒤로도 여동생이 둘이나 더 태어났다고 하니 그 시절 한국 여성들의 애환이 절로 느껴진다.

문 목사는 성정이 성실하고 진취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캐나다 토론토의 제1호 한국인 유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북간도 명동중학교와 평양신학교에 다닌 그는 캐나다 선교부 주선으로 1928부터 3년 반 동안 캐나다 토론토대 이매뉴얼 칼리지(신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용정에서 중앙교회 담임을 맡는다. 당시 교회 권속들이 시험 삼아 3년만 맡기려다 14년이나 붙들어 두었으니,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 만하다. 문 목사의 5가지 신앙적 결심, 즉 '심령의 양식이 되는 성서를 매일 한 장씩 읽자' '매일 한 번씩 기도를 올리자' '주일을 성스럽게 지키자' '십일조를 정성스럽게 올리자' '1년에 최소 한 사람씩 교회에 인도하자'는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김 권사는 일생을 '섬기는 삶'을 살아온 인물로 알려진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회고록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과거 복원력이 큰 힘이 되었다. 김 권사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푸근하거나 아기자기하기보다는 심각하고 무뚝뚝했다고 한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매 시간 뉴스를 들었으며, 신문과 역사 소설을 읽었다. 이웃 사랑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약한 자, 억눌린 자들과 함께 아파했고 강한 자와 그릇된 자들은 끝까지 미워했다. 일제 치하에서 남편의 옥바라지를 한 것만으로도 부족한지, 70·80년대 민주화 투쟁 와중에서 두 아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는다.

회고록에는 문치정·박정애-문재린·김신묵-문익환·박용길, 문동환·문혜림(미국인) 등 남평문씨 가문의 3대에 걸친 아픈 가족사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오롯이 녹아 있다. 때론 가슴이 아리기도 하지만 이들 가족의 따뜻한 민족애, 대를 잇는 며느리 사랑 등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문 목사는 캐나다 유학을 마친 뒤 일본 요코하마행 배를 타고 대서양을 경유해 귀국하는데, 1930년대 한국인의 눈에 비친 유럽과 중동, 서인도 등의 풍물이 매우 흥미롭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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