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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A형이라 본래 소심해서 발표는 별로…”

세계일보 | 입력 2006.04.13 19:20

 








"저는 혈액형이 A형이라 소심하니까 발표는 안 시켜주셨으면 좋겠어요."

서울 강서구 H고 김모(30) 교사는 새 학기 시작 후 한 달 가까이 진행해 온 발표수업에서 유난히 말이 없는 한 학생을 최근 교무실로 불러 "발표는 의사표현 능력을 기르는 데 더없이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그러자 이 학생은 대뜸 "저는 혈액형이 A형인데요. A형은 본래 소심해 발표 같은 것은 잘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혈액형별 성격에 관한 이야기가 책과 노래, 코미디 소재로까지 확대되다 보니 청소년들이 자신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비판적 사고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아이를 둔 김윤희(36·여)씨는 얼마 전 KBS 2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혈액형 관련 코너를 아이와 함께 시청하다 "어! 나도 O형인데 저 사람처럼 내 성격도 그런 거야"라고 묻는 것을 보고 놀랐다. 김씨는 "어른들이야 재미로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지어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은 TV에서 나오는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그대로 자신에게 투과하는 것 같다"며 "아이의 성격이 왜곡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A형은 내성적이다', 'B형은 예의가 없다', 'O형은 집중을 못 한다' 등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설명이 각종 포털사이트와 책, 노래, 코미디 소재 등에 등장하면서 청소년들의 성격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이 내용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아! 나는 저렇구나'라고 자신의 성격을 혈액형별 설명에 맞춰 생각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상대로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송영진(23·여)씨도 최근 과외 중 한 어린이가 혈액형별 성격을 줄줄 외우는 걸 보고 "처음에는 기특했지만 가만 보니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유명 포털사이트들이 운영하는 어린이 전용 포털에서 각종 캐릭터들이 등장해 혈액형별 성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아이들은 이 내용을 거의 안 보고도 외운다"며 "마치 백과사전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처럼 아이들은 포털사이트에서 설명하는 성격을 자신과 친구들에게 투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황상민(아동심리학) 교수는 "마치 '나는 머리가 나빠'라고 단정지으며 미리 변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행태"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성격을) '바꾸고 싶다'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학부모와 교사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세이룸 학습클리닉 김수권 원장은 "혈액형별 성격 판별이 아동·청소년들의 성격형성에 미치는 면에 관해 연구된 바는 없다"면서도 "사회적으로 워낙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니까 아이들이 단정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격을 (혈액형에 따라) 단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변으로부터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 나오는 것일 수 있으므로 학부모나 교사들은 먼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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