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우린 뉴레프트 아닌데..왜?"

2006. 1. 2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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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보개혁성향 지식인들이 지난 17일 '지속가능한 진보를 위한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을 내걸고 '좋은정책포럼' 창립대회를 열었다. 진보개혁진영의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포럼은 여섯달의 준비과정 끝에 탄생했다. 모임엔 전공별·지역별 책임을 맡은 100여명의 학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좋은정책포럼은 지식사회 저변에 공감을 얻고 있는 유럽 사민주의를 한국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는 첫번째 조직적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 포럼 창립을 놓고 다수의 언론은 대체로 창립대회 사실과 의미 등을 차분히 전달했다. 그러나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뉴레프트가 등장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포럼쪽이 '뉴레프트'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고 '한국식 제3의 길'이라고 지향을 명확히 했으나 보수언론은 "뉴라이트와 맞서는 뉴레프트가 맞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뉴라이트를 띄우는 데 앞장섰던 보수언론들이 '뉴레프트 띄우기'에 나서는 속내는 무엇일까?

'지속가능한 진보' 표방, "정책경쟁 통해 진보의 능력 보여줄 것"

17일 출범한 좋은정책포럼은 임현백 고려대 교수와 김형기 경북대 교수를 공동대표로 진보개혁성향 전문가 상당수를 아우르고 있다. 정치·경제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고유환(동국대·통일), 김균(고려대·경제), 류동민(충남대·경제), 박진도(충남대·농업), 임경순(포항공대·과학기술), 정해구(성공회대·정치)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김동민(한일장신대·미디어), 신광영(중앙대·노동), 심광현(한국종합예술대·문화), 임현진(서울대·사회), 조명래(단국대·환경), 홍덕률(대구대·교육) 교수 등이 참여했다.

좋은정책포럼은 자신을 '지속가능한 진보'라고 부르며 "참여·연대·생태라는 기본가치를 지향하면서 분권·혁신·통합의 정책을 펴는 것을 핵심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 "기존의 사회민주주의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 국내적으로는 개발독재모델까지 극복하는 '대안적 발전모델'로 한국적 제3의 길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김형기 공동대표는 "진보가 이대로 가면 양극화나 경제 성장 등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민주개혁세력의 집권도 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한 진보는 민주개혁세력이 사회주도세력으로서 정책적 능력을 보여줘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중동 "뉴라이트에 반대편에 있으니 뉴레프트"

그러나 보수언론이 좋은정책포럼을 보는 시각은 달랐다. 조중동은 '한국진보 대안마련 뉴레프트 공식출범' 등의 기사와 "뉴레프트 출범에 기대한다"는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환영의 뜻을 전했다.

"기존의 좌파가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도 기본적인 좌파 철학을 버리지 않고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뉴레프트로 불릴 수 있다."(중앙일보 18일자)

"기존 진보세력을 극복 대상으로 규정하고 차별화된 진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보수를 비판하고 나선 '뉴라이트'와 대비해 '뉴레프트'로 불릴 수 있다."(동아일보 19일자)

"지난해 출범한 뉴라이트와는 반대편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뉴레프트라 할 만하다."(조선일보 19일자)

그러면서 보수언론은 "뉴레프트를 뉴라이트와 대조해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양쪽 모두 근본주의적 노선에 대한 반성 위에서 이념적 헤게모니를 지향하고 각 세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점에서 마치 좌·우가 바뀐 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듯하다"며 "서로 말이 통하는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면서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기대를 표했다.

'뉴라이트 싱크넷' 소속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한국적 의미에서 새로운 진보, 즉 뉴라이트에 맞서는 뉴레프트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며 "우리는 뉴레프트의 등장을 환영하면서, 그들이 민주주의 지상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좋은정책포럼 "우린 한국적 제3의길, 뉴레프트 아니다"

이런 보수언론의 환영과 기대에 대해 좋은정책포럼 쪽은 싫지 않은 분위기다. 김 공동대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유연한 진보가 나타났다고 하니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뉴라이트이든, 좌파이든 정책을 놓고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들을 뉴레프트로 규정하는 것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동아일보 등과 인터뷰에서 "뉴레프트는 시장의 우위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결부된 진보주의를 뜻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며 "한국적 제3의 길로 불러 주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는 "우리의 뜻을 왜곡하고 있다"며 "이념이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실시구시하겠다는 사람들을 뉴레프트니, 뉴라이트 하면서 또다시 이념의 틀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진짜 속내는 뉴라이트 띄우기진보진영 "이데올로기 지형 협소화 의도, 수구화에 이용될 수도"

이처럼 좋은정책포럼 쪽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수언론이 뉴레프트와 뉴라이트 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뉴라이트 진영의 정치적 정당성과 위상을 높여주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뉴레프트를 들러리 세워 뉴라이트를 띄우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출범하자마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의 각별한 조명을 받았다. 두 언론은 심층취재와 특집기사를 잇달아 내보내며 뉴라이트 띄우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탄력을 받은 뉴라이트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정치세력화를 표방한 '자유주의연대'의 출범 뒤 뉴라이트이념 연구를 표방한 학자들의 모임인 '뉴라이트 싱크넷',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교과서 포럼' 등이 잇따라 출범했다.

보수언론이 뉴라이트에 주목한 것은 보수진영의 외연 확장이라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지난해 3월 '신보수, 정치 나서야'라는 칼럼을 통해 "뉴라이트는 연합해 정치세력화해 선거에 나서라"고 현실정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보수언론 뉴레프트 띄우기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현실 정치지형과 이념지형에 존재하지 않는 뉴라이트와 뉴레프트라는 가상의 경쟁자 구도를 만들어 상징조작을 하려는 것"이라며 "궁극적인 목적은 뉴라이트 띄우기"라고 일축했다.

김 실장은 "이는 민주노동당 등을 좌파 근본주의자로 낙인찍어 배제하려는 것으로 한국사회 이데올로기 지형을 협소화시킬 것"이라며 "결국 보수의 기득권 강화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좋은정책포럼에 대해서도 "개혁진영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려고 정책중심의 생산적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면서 "그러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데올로기 지형을 협소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보수신문들이) 정파적 생각을 가지고 (뉴레프트 띄우기를) 할 수도 있겠다"며 "결국 승부처는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데, (보수언론을)경계하면서, 명심하면서, 때로는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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