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는 가라! 이젠 "포르나"다"

2005. 6. 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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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많은 고민을 했다. 페미니즘 저널 "이프"가 야심차게 기획한 안티 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porNO porNA>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결국, 18일 저녁 7시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이 행사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음침한 포르노의 추억 ▲ <색녀열전>의 배우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두 배우가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2005 박상규 내가 처음 포르노를 접한 건 1989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한 친구는 어디선가 "끝내주는 비디오"를 구했다며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그 친구의 다급한 표현은 이랬다. "남자 여자 무조건 홀딱 벗는다" 한참 예민했던 친구 십여 명은 그 애간장 녹이는 표현에 이끌려 한 곳에 모였다. 부모님이 멀리 여행을 떠난 비디오 시설이 완비된 친구네 집에서 말이다.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비디오 테이프가 돌아가자 우리 모두는 숨을 죽였다. 남자 여자 모두 홀딱 벗는다는 친구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남자의 몸은 "완벽"했고, 여자의 몸은 "환상적"이었다.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온갖 섹스 체위의 등장은 15살 미성년인 우리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고, 끊기지 않고 계속 터져나오는 화면 속 남자 여자의 신음 소리에 우리도 덩달아 "뜨거운 탄식"을 내질렀다.

포르노는 남자의 사정으로 끝났다. "타락의 공범자"가 된 우리들은 그 때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 한마디를 서로 주고받았다. "신기하다. 그런데 좀 징그럽다. 그치?" 정말이지 남자 여자가 섹스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처음 관람한 우리들의 첫 느낌은 그랬다.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못했다.

이후 음침했던 포르노의 추억은 종종 자위행위를 할 때 동원되는 상상력에서 되살아났다. 상상 속의 섹스 모습은 내가 본 포르노의 모습과 일치했다.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수동적이며, 여성의 성욕과 상관없이 남성의 사정으로 끝나는 섹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간직한 섹스의 전형이자 모범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포르노는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남성도 포르노의 피해자"안타깝게도 이런 "포르노의 추억"은 군대의 추억과 더불어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기억이다. 일정부분 포르노로부터 자발적 성교육을 받은 이 땅의 사람들은 왜곡된 성의식을 갖기 쉽다.

그래서 "이프"는 "폭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니다"며 "남성들 역시 포르노의 주 소비자이기 이전에 포르노를 통해 학습되는 성에 관한 왜곡된 지식과 중압감을 느끼는 피해자"라고 말한다.

&nbsp; ▲ <포르노 포르나> 행사 포스터 ⓒ2005 이프 그래서 <포르노 포르나>는 음습한 억압적인 포르노의 추억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포르노를 통해 각인된 여성의 성적 대상화, 성폭력의 정당화를 훌훌 벗어 던지자고 말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성을 즐겁고 유쾌하게 함께 교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지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남성과 이성애자만의 "포르노" 문화가 아닌 여성・장애인・동성애자 등의 욕망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포르나" 성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포르나(porna)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 영화, 책 혹은 양성평등한 교감을 지향하는 성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본행사에 앞서 17일 미리 공개된 <포르노 포르나> 리허설 현장은 발랄한 생기로 가득했다. 이어 18일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본행사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다소 흥분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줄곧 은밀하고 사적 영역에만 머물렀던 성적 욕망을 질펀하게 풀어내는 연극, 율동 등은 시원한 웃음을 선사한다. 왜곡된 성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지지 않는다. 대신 솔직히 이야기하며 웃으면서 서로의 고민을 풀어보자는, 덜 부담스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안티 페스티벌"이라는 이름답게 즐기면서 반대하며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국내 최초 여성 비뇨기과 의사가 전하는 은밀한 의료상담 이야기인 <페니스 수난사>, 억압받는 일회성 섹스로 자신을 학대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One Night Stand>, 고전 에로틱 명랑 만화를 무대화한 <색녀열전>, 그리고 포르노 카메라의 허구성을 재연하는 퍼포먼스 <즐겨라! 관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 "밀양 고고생 성폭행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로망>도 서강대를 찾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여기에 실내 무대 행사가 끝난 뒤 펼쳐지는 야외 공연인 <초절정 오르가슴 파티>까지. 그야말로 어둠이 내린 18일 밤 서강대학교 캠퍼스는 "언니"들의 화끈한 잔치가 펼쳐졌다.

"포르노 키드여, 강박에서 벗어나라"이번 행사의 총연출은 맡은 이영란 경희대 예술학부 교수는 "성에 대해서 비밀스런 담론을 고집하기보다는 누구나 편안하게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교감을 누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왜곡된 성문화가 올바르게 자리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font color = a77a2>"왜 아름다운 성행위를 "빠구리"라 부르는 것입니까. 게다가 섹스를 왜 "떡친다"고 말합니까. 도대체 왜 먹는 떡을 치는 것일까요. 섹스를 그렇게 천박하게 말하면 좋습니까?" ▲ 포르노의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그림자. ⓒ2005 박상규 꽁트 <포르노 인간연구 X파일>에 나오는 말이다. 배우가 위의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그러게"라고 말했다. 특히 많은 남성들은 뜨끔했는지 다소 민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 6년 동안 <안티 미스코리아>행사로 미스코리아 대회의 성적 왜곡을 고발하며 공중파 방송 중단을 이끌어 낸 이프. 그런 이프의 저력이 이땅에 만연한 포르노 문화를 청산할 수 있을까. 우선은 출발이 좋은 것 같다. 나와 같은 많은 "포르노 키드"들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행사에 참석한 대학원생 김도형(29)씨는 "포르노가 남성들에게도 무기력감을 주고 섹스에서 강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준다는 지적에 동감한다"며 "<포르노 포르나>가 대한민국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남자들이여, 상대방과의 섹스에서 강하게 끈질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새로운 축복이 열린다."/박상규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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