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고래회도 먹었다"
“완전한 자유는 없었지만 나는 다른 재소자와 달랐다.”한국 최대의 폭력 조직이었던 ‘양은이파’의 보스 조양은 씨의 수감 생활은 어땠을까.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외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그의 수감 생활은 세인의 큰 관심거리였다.
조 씨는 2일 자신의 수감 생활과 관련, 본지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교도소 안에서 원하는 식사를 만들어 먹었고, 술ㆍ담배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여자만 가까이 하지 못했지 할 것은 다 했다”고 충격적 비화를 털어놓았다. 그는 또 “산 고래 사시미(회)를 먹을 정도였으니 나머지 생활에 대해 추측은 알아서 해도 좋다“고 술회했다.
조 씨는 “처음에는 행장 급수가 뭔지, 반장이 뭔지도 몰랐지만 안에서도 기반만 잘 잡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고 휴가도 나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밝혔다. 이후 작업을 분배하는 작업반장과 총반장, 모범수들을 대표하는 자치위원장, 재소자들의 규율을 유지하는 봉사대 반장 등 감투란 감투를 차례로 모두 차지했다고 한다.
막강한 파워를 구축한 조 씨는 별도의 사무실에서 생활했으며, 외부로 기업 견학을 갈 때도 마음에 맞는 재소자들과 함께 계곡이나 유원지로 빠져 고기를 구워 먹는 등 나름대로 자유를 누렸다고 덧붙였다.
“교도소내 모든 직원들과 유대를 돈독히 했다. 조직과 힘도 뒷받침됐지만 나의 노력과 투쟁이 더 중요했다“고 밝혔다. “교도소는 온갖 부류가 다 모이는 곳으로 이들을 다잡기 위해서는 빠른 머리 회전, 카리스마, 교도관들의 신뢰 3박자가 필요했다”고 전제한 그는 “수감 생활 중에도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조 씨는 또 “머리도 못 깎게 하고, TV도 못 보게 하는 등 처우 문제를 두고 교도소측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자연히 운동권 재소자들과도 친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친분을 맺었다고 주장한 인사는 재야 인사 J 씨와 대학총학생회장 출신 H 씨 등이다.
하지만 그는 “양은이는 왜 저렇게 봐 주냐”는 투서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세력을 규합한 탓으로 15년 동안 8개 교도소를 전전해야 했다.
조 씨는 비화 공개에 대해 “과거 교도소는 폭력과 감금 등 전근대적 교도 행정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나만의 수단이 필요했다. 관련자들도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해 피해가 없을 것 같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혜 시비도 있지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조양은은 하지만 “96년 이후 2차례 수감된 뒤에는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엄격한 수형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조 씨는 1980년 범죄단체구성죄로 기소돼 95년 출소할 때까지 자신과 관련된 사진 자료를 만화 <조양은의 회상>과 함께 전자 상거래 전문 포털 사이트(www.hsn.co.kr)에 공개할 예정이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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