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세상 보는 눈 떴다"

김지환 기자 2010. 5. 1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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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노조 이화여대 분회 신복기 분회장'따뜻한 밥 한끼' 외치면서 노동자 권리 중요성 깨달아"앞으로 당하고만 살지 않아"

"10년만 젊었어도…."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공공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이화여대 분회 신복기 분회장(60)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뉴스만 나오면 시끄럽다고 했던 평범한 주부가 세상보는 눈이 달라진 것을 스스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 환갑의 여성노동자를 바꾼 것은 4개월 전 시작한 노동조합 일이었다. 젊음에 대한 아쉬움도 자연적 수명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그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8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나서 집안 일만 한다고 공부를 못해 아쉽다"며 "10년만 더 젊었으면 더 없이 사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가 분회장을 맡은 이대 분회는 지난 1월27일 출범했다. 그는 노조 출범 준비를 '007작전'에 비유했다. 비밀을 유지하기도 어려웠고, 해고 운운하는 위협도 들렸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준비해온 노조 설립은 결실을 맺었다. 출범식 후 용역회사 소장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왜 꼭 목소리 높여 싸워야 말을 들어주는 지 모르겠다"며 "힘있는 사람에겐 권리를 주고 힘이 없으면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 분회는 지난달 30일 회사와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시간당 임금 90원 인상 △일부 휴게실 개선 △연차휴가·식대비 확보 △건물 외곽 청소인원 확충 등을 얻어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청소노동자들이 제 권리찾기에 나선 결과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임금부터 열악한 휴게실까지 풀어야 할 일이 산적해있다. 신 분회장은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며 "당하고만 살다 보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당연히 풀어야 할 것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자녀들도 엄마의 '변화'를 한편으론 걱정하면서도 기꺼이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큰 아들은 "신여사님 대단하셔"라며 농담을 건네고, 며느리는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어머니가 많은 걸 배우셨다"며 놀라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 한 끼 권리 외치면서 캠페인 하는 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신 분회장에겐 소원이 하나 생겼다. 뒤늦게 깨달은 '권리 찾기'의 중요성을 전국의 청소노동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는 "정말 몰라서 예전의 우리처럼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내 말 한 마디가 도움이 된다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말했다.

신 분회장은 인터뷰 내내 "나쁜 일이 아니니까"라는 말을 했다. 나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힘이 나고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 할수록 달라지는 게 보인다"며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의욕이 넘친다"고 웃었다.

< 김지환 기자 baldl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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