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잠만..딸, 이러려고 자퇴했니?

2011. 5. 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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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이분 기자]

"요즘 딸 뭐해?"

자주 만나는 사람이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든 내게 궁금해 하는 것은 내 안부가 아닌 스무 살 먹은 큰딸의 안부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딸은 어느 대학 갔어?"라고 묻지 않는 건 나와 딸에 대한 배려이지 싶다.

3년 전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마음 한구석 '철렁' 하는 것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단, '이제부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다짐받았다. 딸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왜 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억압적이고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 문화가 싫다는데, 견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둔 딸은, 자기가 '숲 속의 공주'나 되는양 1년 동안 잠만 잤다.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우리 집에 들러서 간식을 먹고 놀다가 학원엘 갔다. 학원이 끝나면 밤 12시쯤에 집 앞에서 만나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게 일이었다. 한심했고 답답했다. '이러려고 자퇴했니?'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길을 못 찾고 있는 제 속은 얼마나 갑갑할까 싶어서 안쓰럽기도 했다.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한 아이를 믿고 1년을 기다렸다. 그러다 내가 자원교사로 일했던 도시형대안학교인 '꿈○학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이 학교는 흔히들 '귀족학교'라 비난하는, 등록금도 비싸고 부모 면접까지 보는 등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는 대안학교가 아니다. 학교 부적응으로 중도 탈락한 아이들이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2년제 비인가 학교다.

"내가 한심하고, 의욕이 없어..."

1년 가까이 불규칙적인 생활을 한 딸은 오전 10시까지 등교하는 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어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지각을 하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수업이 있는 날은 아예 학교엘 가질 않았다. 내가 자원교사를 해서 선생님들을 다 아는데, 참 민망하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자식 문제에 에미 체면이 중요할까. 선생님들께 그저 잘 이끌어주시라 고개를 숙였다.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 딸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고 잘 적응하는가 싶더니, 헤어지고 나서는 또 깊은 슬럼프에 빠져 지냈다. 겉으론 위로하고 다독이고 감싸주었지만 속으론 '웬수가 따로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 학년이 지나자 딸아이는 또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4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나서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생기고, 취업을 하는 친구들도 생겨서 맘이 심란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새벽에 자고 있는데, 큰딸이 내 방으로 건너 와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와 "엄마, 나 우울해, 흑흑!"이라며 운다. 이 갑작스런 상황을 어쩌지 못해 딸아이 등을 토닥토닥거리고 있는데, "엄마, 나 어른 되기 싫어. 불안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시간 낭비하며 살고 있는데, 내 또래 애들은 이제 고 3이라 정신없이 공부하며 살 텐데, 대학도 가구 그럴 텐데, 난 그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구, 내가 한심하구, 뭘 해야 하는진 아는데 하게 되진 않구…. 의욕이 없어. 살고 싶지가 않아"라며 또 흐느낀다.

아, 그랬구나. 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저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애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런 한심한 엄마 같으니라구!

"딸, 걱정하지 마. 니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데 지금 하고 싶지 않다면,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면 돼. 언젠간 하고 싶은 날이 올 거야. 그리고 학교는 남들보다 한두 해 늦게 다녀도 돼. 또 그까짓 대학 안 다니면 어떠니? 일단 재밌게 지내. 니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하며 놀아보자. 알았지?"

사람 맘이 참 간사하다. 웬수 같던 딸'년'이 이렇게 힘든 맘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엔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됐다. 그저 건강하게 재밌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

네가 선택한 길이 그렇게 힘들었니

드라마 < 동안미녀 > 의 한 장면.

ⓒ KBS

지난 2월,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했다. 같이 입학한 15명 가운데 두 명만 남았다. 그나마 함께 졸업하는 한 친구는 내년에 수능을 볼 예정이라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아, 거의 딸아이 혼자 졸업발표회 준비를 다 했다. 졸업식 날, 많은 손님들 앞에서 딸아이가 지난 2년간 꿈○학교에 다니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쓴 글을 읽는다.

"2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딸아이가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는다.

"꿈○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작업들을 좋아하고 옷도 좋아한다는 것뿐. 첫 학기 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직업 특강 수업이었다…."

딸아이가 중간 중간 울면서 글을 읽는데, 나도 따라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맘속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애들은 고등학교 3년을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학교며 학원이며, 다들 '나 죽었다' 생각하고 다니다 졸업하는 건데, 이렇게 너에게 주어진 자유 속에 네가 선택해 걸어온 이 길이 그렇게 힘이 들었니? 아니,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만은 아닐 거야. 제 스스로 대견해서 흘리는 눈물일 수도 있겠지.'

마지막 부분, 딸아이가 글을 읽는다.

"학교에서 예쁘게 만들어 놓은 꿈, 분명 자신 있었던 내 미래가, 당연히 잘될 거라 생각했던 내 것들을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졸업 준비를 하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룬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내고 싶지 않아서. 그래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된다. 어디든지 가서 내가 배운 것들을 잘 써먹을 거다."

딸아이가 꿈○학교에서 찾은 꿈은 '옷 만드는 일'이다. 손으로 하는 작업은 뭐든 잘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라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아침잠도 많고 지각도 자주 했지만 인턴수업으로 의상실, 동대문시장 등을 돌아다닐 때는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밤샘하고 힘들어도 잘 참고 견뎌냈다.

"내 딸은 전태일의 후예야!"

요즘 딸아이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훈련과정에서 봉제를 배운다. 그 전에 직업상담을 받아야 했는데, 직업상담사 선생님이 딸아이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고, 왜 벌써 그렇게 꿈을 낮게 잡냐고, 봉제 일 하는 사람들 월급이 얼마나 적은 줄 아냐고.

"엄마, 상담사 선생님 이상해. 내가 대학을 안 가고 봉제 일 배우겠다니까 내가 불쌍한가 봐.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건데. 내가 그 선생님한테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를 했다니까? ㅋㅋ"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거나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네 애는 어느 대학 갔다더라 하는 아이들 학교 얘기뿐이다. 아이도 나도 처음엔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이력이 났다. 그래서 딸과 내가 입을 맞췄다.

"난 옷 만드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내가 만든 옷을 많은 사람이 입고 있는 걸 보면 행복할 거 같아요."

"내 딸은 봉제사가 꿈이야. 내 딸은 전태일의 후예야!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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