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학교 휴학했다' 말하지 못했어요

2011. 3. 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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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고 억울한 대학 생활..빚만 2800만원

[오마이뉴스 한지혜 기자]

2년 전, 대학 졸업 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가 아니면 눈물을 흘리는 일이라고는 없던 내가 전철 안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연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봐야 했다. 지난해 12월, 복학을 앞두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피자배달을 하던 학생이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건때문이었다. 그날 난 이런 위험한 '30분배달제'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에 가는 길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이어폰을 끼고 최신가요를 들으며 다른 사람들 구경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 이날은 운좋게 자리에 앉아 가면서도 그 학생 생각뿐이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힘들지만 해야만 했던 피자배달 아르바이트. 그가 사고를 당하던 순간, 그리고 그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마음… 이런 것들이 과거 내 모습과 겹쳐지면서 울컥하게 만들었나보다. 그리고 얼마 전 이번에는 대학 입학을 앞둔 고3 학생이 피자배달을 하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대학 입학으로 기쁜 마음도 잠시...1학기 만에 휴학

청년유니온·노동환경건강연구소·서비스연맹은 2월 8일 오전 11시 도미노피자 본사 앞에서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 요구 공개서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 이현정

2003년 2월, 기다리던 대학교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듣고 나는 마냥 신났다. 그러나 합격과 동시에 입학금을 마련해야 하는 엄마의 표정은 조금 어두우셨다. 자세하게 알려주진 않으셨지만 어려운 형편에 힘들게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이라는 현실로 더욱 확실해졌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등록금이 없어 휴학계를 냈을 때의 그 심정. 이제 막 친해지게 된 선배와 동기들에게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쉬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아르바이트를 바로 구하지도 않았다.

휴학계를 내고 한참 후에야 일을 구했던 것 같다. 운 좋게도 학교 계약직 직원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교환실에서 학교 대표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담당자에게 연결해주는 전화업무였다. 학교 내선번호와 담당부서를 파악하는 일이 조금 버거웠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고, 학내에 있으니 선배, 동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 달에 80~90만원 받아서 교통비, 식비, 핸드폰요금, 내 생활비 등등을 쓰고 나면 모을 수 있는 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에서 공부하고 재밌게 지내는 친구들 모습에 비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빨리 복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200만원 정도를 모아놓고 엄마의 도움을 받아 바로 복학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지 불안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돈이 다 모아질 때까지 일을 하고 그렇게 반복하는 생활로 졸업은 제때 할 수 있는 건지…. 그때 나이로 취업은 할 수 있는 건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학자금대출'이었다.

학자금대출은 비상구? 불안과 자괴감에 이르는 통로

학자금대출이 빠져나간 흔적.

ⓒ 한지혜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총 6번의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처음 대출이란 것을 받게 된 나는 상환기간, 거치기간이라는 개념도 모른 채 그냥 아무렇게나 기간을 설정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원리금상환을 시작하게 된 것도 있었다.

2~3만원 하는 이자납부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지만 매달 15~20만원씩 갚아야 하는 원리금상환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다음 학자금대출을 받을 때 생활비 명목으로 100만원 정도를 더 받아 해결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이자까지 총 28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다.

더욱 끔찍했던 건 졸업도 하기 전에 4~5개의 학자금대출 상환기간이 겹쳐 한달 원리금상환액이 60만원 정도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논문 과정만을 남겨놓았던 난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구인구직 사이트를 띄워놓고 올라오는 곳마다 연락하기 바빴다.

그래서 처음 하게 된 아르바이트가 네일아트 손모델이다. '급구, 내일부터 바로 가능하신 분' 그저 손톱만 좀 길고 가지런하면 되는 조건이라 전화 한번하고 당장 찾아가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단기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난 이 일을 하면서도 끝나면 바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다. 그리고 다음에 했던 일이 물류센터 박스 분류작업, 영어학원 사무보조, 빵가게 판매사원, 전철역 단기알바, 행정인턴, 방과후 교사…. 그리고 지금하고 있는 공기업 계약직 사무보조까지.

일을 하면서 느끼는 불안감과 원리금상환에 대한 압박감에서 오는 자괴감은 무슨 일을 하든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저 빚을 갚기 위해 사는 난 삶의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빵가게 판매사원을 하고 있을 때 지금 '청년유니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변하기 시작했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등록금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졸업도 하기 전에 내 발목을 잡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나뿐만이 아닌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지 제대로 알려내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등록금으로 인한 괴로움, 나에서 끝났으면

2010년 11월, '청년유니온'에서 전태일20주기에 맞춰 청년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조사는 10~11월 서울, 인천, 부산, 대전, 대구 등 5개 지역에서 20~30대 노동자 618명을 상대로 이뤄졌고 조사결과 응답자의 21.4%는 임시계약직이나 시간제 근로자 등 비정규직이었다. 응답자의 61.6%는 월 200만원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고, 100만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이도 9.4%나 됐다.

또한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때문에 생활실태도 열악했다. 부채를 안고 있는 사람이 51.6%에 이르렀고 빚을 진 이들 중 40.5%는 부채 규모가 '1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했다. 20대 부채의 원인은 '학자금 및 교육비'(34.8%)와 '주거비'(31.0%) 때문이라는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졸업한 지 2년. 지금은 학자금대출금 반 이상을 갚고 한달 원리금상환액도 30만원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 생활비를 대느라 여전히 쪼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

2014년 원리금상환이 끝나는 날까지 내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겠지만 등록금 때문에 생겨나는 안타까운 사건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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