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에드워드
핼리팩스 1890년 기고문 발견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영어교사가 본 19세기 말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
조선 정부에 고용돼 조선인 해관(海官)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영국인 토마스 에드워드 핼리팩스(Thomas Edward Hallifax·한문명 奚來百士·1842∼1908)가 조선에 관한 인상을 기록한 잡지 기고문과 그의 사진이 발견됐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역사를 연구해온 김성수(45·관세청 관세평가분류원 품목분류1과 2팀장)씨는 핼리팩스가 일본 체류 중이던 1890년 잡지 『후소노하나(扶桑の花)』에 발표한 `조선의 사정(朝鮮の事情)'이라는 기고문을 찾아냈다고 8일 밝혔다.
김씨가 발견해 번역한 A4용지 10여장 분량의 기고문에 실린 조선의 모습은 `기이하지만 아름답고 강인한 나라'.
핼리팩스는 "내가 처음 조선에 상륙해 느낀 점은 조선인의 풍속이 기이하다는 것이다"라며 글을 시작했다.
커다란 자루 같은 버선, 입에 문 긴 담뱃대, 대나무를 쪼갠 살을 엮어 만든 모자, 쌀밥에 찬물을 끼얹어 먹는 식습관 등 모든 게 그에게 낯설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고문 곳곳에서 관리의 부패나 저잣거리의 불결함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조선인의 성품에 대해서는 "내가 6년간 조선에 있는 동안 (조선인이) 결코 난폭한 행동을 보인 적이 없고, 내가 싫다고 생각하는 일에 빠지게 한 적도 없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글 끝 부분에서도 "민족으로서 아름답고 몸이 강하며 강인한 사람들이다. 지니고 태어난 기질도 솔직하고 온순하며 손님을 접대할 때 진심으로서 친절하게 대한다"라고 조선인을 칭송했다.
핼리팩스는 글에서 당시 조선 전역을 감싸고 있던 외세의 간섭을 지적했다.
그는 "조선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지만 청나라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아 광산 같은 것도 마음대로 채굴할 수 없다" "(청ㆍ일이 개입한) 전신선 설치는 일반인의 통신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언급하는 등 당시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 침략 야심을 지적했다.
짤막하나마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언급도 있어 눈길을 끈다.
핼리팩스는 "왕은 용모가 아름답고도 총명한 사람이지만 왕뿐 아니라 왕비도 국정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적어 당시 명성황후가 정치적으로 절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음을 강조했다.
영국 웨스트베리 출생의 핼리팩스는 조선의 외교와 세관 업무를 맡았던 독일인 외교 고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1848년∼1901)의 추천을 받아 최초의 관립 영어 교육기관인 동문학(同文學)의 영어 교사로 1883년 채용됐다.
1886년 동문학이 폐교되자 초창기 전신(電信) 사업에 참여해 조선 정부로부터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를 받았으며, 그 뒤 일본에 건너갔다가 1895년 조선에 돌아와 관립
한성영어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핼리팩스는 1908년 퇴직한 뒤 대한제국 훈(勳) 4등에 서임(敍任)되는가 하면 태극장(太極章) 훈장을 받았고 그 해 11월 세상을 떠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hapyry@yna.co.kr
(끝)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 연합뉴스폰 >
< 포토 매거진 >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