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초소 지키던 한국인 총을 버리다..무슨 일이?

2011. 12. 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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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조혜령 기자]

"야 이 XX야 똑바로 못해?"

30대 중반의 여성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차량이 검문에 걸린 게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초소를 지키던 58살의 김지명(가명,남)씨는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말 없이 여성의 본네트와 트렁크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모든 검사가 끝나자 통행을 허가하며 여성에게 척 하고 거수 경례를 붙였다.

"Thank you mam."

김 씨는 미군부대에서 일한다. 방금 그가 검사한 차량은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의 차량. 그는 하루에 수십대의 차량을 본네트부터 차량 밑바닥, 트렁크의 스페어 타이어까지 샅샅이 검사한다.

하지만 김 씨는 미군이 아니다. 그는 민간 용역 회사 소속이다. 지난 2006년 미군이 민간 기업에 경비 업무를 일임한 뒤 모든 게이트 초소 업무는 미군 헌병이 아닌 '한국인' 용역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 용역은 방탄 조끼를 입고 샷건과 총을 휴대하며 미군 부대 초소에 정자세로 서서 미군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Safe Guard,SG)의 임무를 맡는다.

하루종일 매연을 마시며 좁은 초소에 쪼그려 앉아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20년을 일해왔던 김 씨.

그런 그가 총 대신 피켓을 손에 들었다. 머리에는 '투쟁'이란 붉은 띠도 둘렀다.

"저는 반미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미국의 방위를 위해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요. 이전에 일해왔던 조건 그대로만 지켜달라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 졸거나 불평 불만하면 해고…"영국계 다국적 기업의 노예 계약"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 9일 오전.

군복을 입은 400여명의 사람들이 서울 용산동 미8군 3번 게이트 앞에 모였다.

이들은 'please attention to our shouting(우리의 외침에 귀기울여 주세요)'라는 피켓을 출근길 차량에 흔들며 "G4S는 한국 노동법을 지키라"고 외쳤다.

미군부대 앞에서 '투쟁'을 외치는 이들은 모두 주한미군 경비용역.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부터 흰머리 지긋한 60대 노인까지 400여명의 경비원들은 한 목소리로 '고용 승계 보장'을 외쳤다.

주한미군 노조에 따르면 지난 9월 미군부대 보안요원 용역 입찰에서 기존 '좋은 시스템'을 제치고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G4S'가 최저가로 낙찰됐다.

G4S은 곧 기존 업체 직원들에게 새로운 근로 조건을 제시했다. 업체는 "업체가 바뀌었으니 계약도 새로 해야 한다"며 노동 시간을 기존 한 달 176시간에서 243시간으로 늘리고 4조 3교대에서 12시간 맞교대인 3조 2교대 바꾼다는 조건을 내놨다.

월급이 동결된 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임금의 30%인 최대 40만 원 정도가 삭감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G4S가 덤핑 입찰을 하면서 기존 근로 조건이 크게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박덕서 주한미군노조위원장은 "G4S가 이번 미군부대 경비 용역 입찰에 5년 전 낙찰가보다 202억 더 낮은 가격으로 선정되다 보니 근로 시간을 늘이고 기존 근무 인원 120여명을 해고하는 등 근로자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서 박 위원장은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직원을 더 채용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전에 일했던 조건 그대로만 유지해달라는 것"이라며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G4S측의 해고 조항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CBS가 입수한 G4S의 계약서에 따르면 용역 경비원은 자신의 월급을 다른 직원에게 말하거나 다른 직원의 월급을 물어볼 경우 해고를 당한다.

또한 '근무시간 중 졸거나 근무지를 이탈했을 경우' 또는 '불평 불만으로 사원들을 선동하고 유언비어로 근무 분위기를 해칠 때'도 해고를 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30년 동안 경비 업무를 해 온 박모(57,여)씨는 "비록 여자이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남자와 똑같이 근무를 서 왔는데 G4S가 너무 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경비업체측은 "낮은 가격에 입찰을 받다보니 근로 조건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G4S측 관계자는 "낮은 입찰가 탓에 새로운 급여 수준을 정해야 했다"며 "기존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전 조건을 계속 요구하기 때문에 재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 조건 후퇴 주장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24시간 맞교대하는 회사도 많이 있다"면서 "법정 근로 시간에 맞춰 노무사와 다 상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또 "현재 집회하는 경비원들은 근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들이기 때문에 우리 직원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들이 집회하는 건 우리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G4S측이 계약 조건을 바꾸어 기존 직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낙찰받은 업체가 기존 직원을 고용승계해 왔던 점에 비춰 볼 때 G4S측은 새로운 계약을 요구할 게 아니라 기존의 근로 조건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따라서 G4S의 고용 형태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tooderigirl@cbs.co.kr

미군부대 경비원들, 부당 근로 반발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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