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일감 끊겨 목숨 끊은 일용직의 '비애'

류인하 기자 입력 2011. 8. 17. 22:08 수정 2011. 8. 1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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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있습니까?"

2003년 봄. 낡은 배낭 하나를 짊어진 남자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다가구주택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 찾아오셨죠?" 주인집 딸이 그를 맞았다. 작고 땅딸막한 체구의 신모씨(51)는 수줍게 말했다. "방 내놓은 게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신씨는 그날부터 김모 할머니(80)의 옥탑방에 살기 시작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방은 성인 남성 2명이 겨우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꼬박 8년을 살았다.

김 할머니는 "그 사람 참 소녀 같았다"고 말했다.

몇 해 동안 이웃에 살았지만 동네 사람 누구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김 할머니도 신씨와 임대차계약서조차 쓰지 않았다. 매달 마지막날 관리비를 포함해 24만원을 주기로 약속했을 뿐이다. 할머니는 그를 "신씨"라고 불렀다.

그는 늘 조용했다. 끼니마다 라면으로 때우다시피 한 탓에 집 옆의 슈퍼마켓을 자주 찾았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명절에도 늘 집에 있었다. 김 할머니가 "명절인데 어디 안 가요?"라고 물으면 그는 "큰형집에 다녀오려고요"라며 슬며시 집을 나섰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집에 화분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누군가 이사가기 전 버리고 간 듯한 화분들이 옥탑방 주변에 줄줄이 늘어섰다. 작은 화분은 방 안에 두고 키웠다.

김 할머니가 키우는 호박과 고추, 상추 등을 살피러 옥상에 올라가면 그는 옥탑방 한쪽에 조용히 앉아 화분을 돌보고 있었다.

신씨는 매일 오전 2시면 집을 나섰다. 사람들이 잠에서 깨는 오전 6시가 퇴근시간이었다. 그의 주된 벌이는 신문배달이었다.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 일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김 할머니에게 "20년 전에는 건축업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새벽 신문배달도 나가지 않았다. 일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세도 밀리기 시작했다. "언제 월세를 줄 거냐"고 물으면 "아들에게 용돈을 줘야 해서 당장 현금이 없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월세도 다 내지 못하고 18만~20만원만 내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는 아예 방세를 못 냈다. 그는 김 할머니에게 "8년을 같이 살았는데 조금만 믿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신씨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7시, 김 할머니는 연휴를 맞아 집에 찾아온 아들과 딸에게 먹일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옥상에 올라갔다. 고추 2~3개를 따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씨의 방문이 절반쯤 열려 있었다. 비가 내리치는데도 방문을 열어놓은 게 이상했다. 김 할머니는 신씨가 방 안에 있는지 보려고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봤다. 신씨는 옷장걸이에 목을 매 숨진 채였다.

방 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8년 전 이곳에 들어올 때처럼. 죽기 전 그는 자신의 옷가지와 짐을 모두 정리했다. 냉장고 안의 음식과 휴지통의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웠다.

김 할머니는 "집 앞에 쓰레기종량제 봉투가 잔뜩 있기에 누구 것인가 했더니, 신씨가 정리한 뒤 버린 것이었다"고 했다. 신씨는 '너무 외롭고 힘들다. 하나뿐인 아들과 형에게 미안하고 면목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20여년 전 부인이 집을 나가면서 5살배기 아들을 형에게 맡긴 뒤 가족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동안 그는 가족과 안부전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6개월 전 장성한 아들을 한 번 만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유서 옆에는 형과 누나, 아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도 놓여 있었다. 비보를 듣고 찾아온 형은 "30년 만에 만나는 동생이 왜 시신이 돼서 돌아온 것이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죽어서야 형과 아들이 있는 제주도로 돌아갔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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