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국민주 매각'은 꼼수다

천관율 기자 입력 2011. 8. 18. 10:40 수정 2011. 8. 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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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시장에 넘기려는 마지막 시도가 시작됐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8월1일 정부가 100% 보유하고 있는 인천공항 주식 일부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특정 대기업에 주식을 몰아주지 말고 일반 국민에게 공모 방식으로 넘기면 국부가 유출될 염려도 없고 서민 정책도 된다는 근거를 댔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는 홍 대표의 제안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정부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전체 주식의 15% 정도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할 것을 검토한다는 후속 보도도 쏟아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민 정책을 자신의 브랜드 삼은 홍 대표가 인천공항 국민주 매각을 전격 제안해 청와대와 정부의 동의를 이끌어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홍 대표는 지난 7월에도 우리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정부 보유분을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할 것을 제안했다가 청와대의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홍 대표의 한 측근은 "대표가 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일관되게 국민주 방식을 주장해왔다. 이번 제안도 그 연장선상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주는 '지분 매각 로드맵' 1단계

그런데 사실일까. '국민주'가 독립변수이고 '인천공항'은 종속변수일까. 다시 말해, 인천공항은 국민주라는 서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홍 대표가 찾아낸 세 번째 대상 기업일 뿐일까. 인천공항 지분 매각 논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홍 대표 쪽이 내세우는 이런 식의 설명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2년 전인 2009년 10월, 다국적 컨설팅 그룹 매킨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의뢰를 받아 '인천국제공항공사 경영진단 및 경영구조개선 용역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인천공항 매각을 추진하는 정부 논리와 로드맵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 시사IN > 이 민주당 김진애 의원실을 통해 매킨지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해봤다. 그 결과 정부가 2년 전부터 지분 매각을 위해 '국민주 우회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보고서 6장의 제목은 '지분 매각 로드맵'이다. 이 장에서 매킨지는 인천공항 지분 매각의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지분 매각 로드맵 구성을 위한 핵심 질문' 첫 번째로, 매킨지는 "최초 지분 매각은 IPO(기업 공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전략적 투자자 유치로 할 것인가"를 꼽았다. 즉, 사실상 국민주 방식과 대기업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 중 어느 것을 택할지 묻는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으로 국부가 특정 기업이나 외국인에게 이전되는 것을 국민이 크게 우려하고"(857쪽) 있는 만큼, "최초 지분 매각 방식으로 IPO를 제안"(858쪽)한다. IPO는 기업 투자 유치에 비해 가격을 잘 받기도 힘들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방식이지만, 인천공항의 특징을 고려할 때 가능한 한 많은 일반 국민을 매각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보고서는 쓰고 있다. 즉, 국민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데 대한 돌파구로, 가장 저항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주 매각 방식을 먼저 진행하라고 제안한 셈이다.

지난주 정부는 홍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민주 방식을 검토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주로 우회하라'는 매킨지 보고서의 결론을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보고서를 본 2009년 10월에 곧바로 '국민주 방식 검토'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뉴시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앞줄 가운데)는 서민 정책의 하나라며 '인천공항 국민주 매각'을 제안했다.

당시 < 머니투데이 > 기사를 보면, 국토해양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모두 "국민주 매각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인수 기업을 선정해 지분을 팔겠다던 2008년 정부 입장에서 선회할 뜻을 이때부터 내비친 것이다. 심지어 당시 기사에 나온 국민주 매각 비율(16.3%)과 최근 홍 대표 발언 이후 나오는 비율(15%)까지 비슷하다. 이 역시 매킨지 보고서의 자장 안에 있다. 보고서는 2009년에 이미 1차 IPO 비율을 10~20% 규모로 하자고 제안했다(880쪽).

즉, 정부와 한나라당은 홍 대표가 던진 '국민주 카드'가 대단히 새로운 제안이자 인천공항 문제의 돌파구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이미 2년 전 매킨지 보고서에서 제안되고 언론을 통해 '간까지 봤던' 로드맵을 단순 재탕하는 셈이다.

2년 전에 쓰인 매킨지 보고서는 지난주에 벌어진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부가 이 보고서의 로드맵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보고서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일단 IPO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2단계로는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다. 다시 말해, 특정 기업과 지분 매각 협상을 벌인다. 전체 주식의 10~15%를 이렇게 매각한다. 이는 야당과 다수 여론이 국부 유출, 공항 서비스 하락, 지나친 수익성 추구 등을 걱정해 반대하는 바로 그 상황이다. 하지만 이 2단계는 일단 국민주 매각을 위해 법을 개정하고 난 상황이어서 막을 방법이 없다(21쪽 상자 기사 참조). 게다가 국민주 매각으로 기준 시가가 실제 가치보다 싸게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2단계 물량을 인수하는 기업은 그만큼 싼값에 주식을 살 수도 있다. 홍 대표 쪽이 국민주 매각의 구체적 비율에 대해 침묵하고, 정부는 15% 선을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국민주로 우회하고 나면 2단계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매각이 기다리는 것이다.

국민주=지분 인수가 하락=인수 기업 이득

3단계로는 국가 지분 51% 외에 나머지 모든 지분을 민간에 매각한다. 또 매킨지는 인천공항공사 임직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사주를 우선 배정하라고도 제안했다. 매킨지의 지분 매각 로드맵은 이렇게 완성된다. 홍 대표는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로드맵의 첫 단추를 채우려 하고 있다.

홍 대표가 인천공항 국민주 매각안을 들고 나오기까지 과정도 상당히 묘하다. 홍 대표는 대표 당선 인사를 하러 7월14일 한국노총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와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노동계 현안을 논의했는데, 그중 인천공항 매각 문제도 있었다. 한국노총의 말을 들어보면, 홍 대표는 이 위원장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건(인천공항 매각) 처음부터 반대였고 지금도 반대다. 이걸 누가 판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팔려면 양양공항(대표적인 적자 공항)을 팔아야지."

집권 여당의 대표가 한국노총 위원장과 마주 앉아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단호한 매각 반대론을 펼친 셈이다. 한국노총 최삼태 대변인은 "우리가 뭐라고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집권 여당 대표가 그리 단호하니, 한국노총은 그날로 인천공항 매각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인 이범래 의원은 "수익이 낮은 다른 공항을 팔아야 한다는 취지였을 뿐, 인천공항 매각 반대론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매각 반대하던 홍준표가 돌변한 까닭은?

그랬던 홍 대표가 8월1일에는 국민주 매각안을 들고 나왔다. 종잡기 힘든 변신이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7월30일 홍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비공개 회동을 주목한다. 이날 홍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인천공항 국민주 매각 방안을 전격 제안했고 대통령은 듣고만 있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2년 전 매킨지 보고서에 거의 같은 제안이 있고 정부 검토까지 거친 것을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만큼 이 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의견 교환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애초에 인천공항 지분을 팔아야 한다며 정부가 내놓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민간 자본의 감시와 참여를 통한 공항 경영 선진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인천공항이 공항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공항협의회(ACI) 세계 최고 공항상'을 6년째 독식하면서 꺼내기가 머쓱해졌다. 매킨지 보고서조차 인천공항이 서비스 수준과 영업 실적 등에서 세계 수준의 공항이라고 인정하면서, "효율성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다소 군색한 반론을 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인천공항 3단계 확장 공사에 투입될 4조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익잉여금 1조원을 보유하고 영업이익이 5000억원이 넘는 초우량 기업 인천공항을 팔 이유는 못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자체 조달 능력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론 설득이 만만치 않아 물 건너가는 듯했던 인천공항 매각론의 마지막 불씨가 홍 대표의 '서민 정책론'이다. 하지만 국민주 매각은 앞서 보았듯 시장에서 제값을 받기 어렵고 경영 감시와도 거의 관련이 없다. 사실상 기존 정부 논리의 핵심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국민주 방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홍 대표의 제안이 나오자마자 일사천리로 국민주 판매 비율까지 언론에 흘렸다. 사실상 2년 전에 검토가 끝난 내용이어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인천공항공사노조 제공 인천공항 주주가 되는 것은 거대한 개발 이권에 접근할 길을 얻는 것이다. 위는 인천공항 3단계 건설안 조감도.

정부가 내세우는 인천공항 매각론은 어느 하나 여론을 설득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론 설득은커녕 논거끼리 내용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계속 논거를 바꿔가며 매각론을 내세운다. 이는 정부의 또 다른 핵심 정책인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4대강 사업의 논거가 홍수 예방-수자원 확보-관광 개발-경기 부양으로 계속 바뀌었던 것과 유사한, 일종의 '논거 돌려막기'가 인천공항 매각 논란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 가르려 한다"

이쯤 되면 인천공항 지분이 민간에 매각됐을 때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지가 궁금해진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국고가 바닥나 '급전'이 필요해지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라고 비난한다. 재정 적자 때문에 정부가 무리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노조 강용규 위원장은 "인천공항이 영업이익만 5000억원이다. 지분을 파는 게 아니라 쥐고 있으면서 배당을 받는 편이 재정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라며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킨지 보고서를 봐도, 인천공항의 영업이익은 매년 꾸준히 올라 2025년에는 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학계와 노조에서 주목하는 것은, 소수 지분만으로도 상법에서 보장하는 주주의 권리를 행사해 인천공항에서 이윤을 챙길 방법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3~10% 정도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도 보유량에 따라 신주발행유지청구권, 대표소송제기권, 임시총회소집청구권, 회계장부열람권, 해임청구권, 이사선임권 등 각종 권리가 보장된다. 공항 경영에 개입할 길이 열린다.

인천공항은 지금 수준으로도 알짜 기업이지만, 대규모 토목공사와 부동산 개발 사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이권의 보고이다. 설계상 비용만 4조원 규모의 3단계 공항 확장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토목공사 특성상 실제 비용은 설계상 비용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크다.

"수많은 이권이 대기업·외국 자본에 갈 것"

공항 주변 지역 개발계획은 너무나 방대해 규모를 추산하기도 쉽지 않다. 공항신도시, 물류단지, 자유무역지역, 국제업무지역, 쇼핑타운 등 대형 지역개발 계획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비록 경영권을 갖지 못한 주주라 해도, 일단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만으로 거대한 이권 사업에 개입할 지렛대가 생기는 것이다. 강용규 인천공항공사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지분 51%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방어되는 게 아니다. 지금 주주총회 하면 정부 대표로 국토해양부 공무원이 오는데, 공무원이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출신 이사의 압박을 어떻게 견디나. 각종 이권 사업이 대기업이나 외국 자본 손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홍 대표가 던진 '국민주 제안'에 야권의 반응이 호의적일 리 없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정부는 이유만 바꿔가며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고집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이유가 하나같이 근거가 없고 국민이 반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도 고집을 부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공항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주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국민주 제안도 또 다른 꼼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노조 제공 공항 주변 지역 개발계획 조감도.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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