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벽 뚫고 들어온 남자들' 잊을 수가 없다

2011. 6. 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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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노순택 기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우리들은 살아간다.

낱장의 어떤 사진들, 그것들이 가진 무게는 엄청난 낱장의 집적이자 흐름인 영화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이미지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화와 달리 '멈춰서 버팀'으로써 자신을 각인시킨다. 이를테면 사인처럼 흐르지 않고 도장처럼 꾹 찍힌다.

머릿속에 찍힌 숱한 도장들은 대부분 분실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것은, 그것이 보여주는 '장면'으로 떠오르지만, 그것을 보았던 시점의 '나'를 상기시킴으로써, 괴롭힌다. 각인된 사진은, 그것이 설령 나를 찍은 것이 아니더라도, '찍힌 시점의 장면'과 '봤던 시점의 나'를 동시에 보여준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음을 고백한다. 공중부양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있다. 하얀 운동화에, 하얗지만 튼튼한 모자를 썼다. 남자들은 벽에서 나왔다. 벽을 뚫고 나왔다. 시체를 가지러 왔다, 고 말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늙은 여자가 그들을 막아보지만, 소용없었다. 시신은 탈취되었다. 장례식장 벽을 뚫고 들어온 백골단이, 백골이 되기를 기다리는, 의문의 죽음을 맞은 노동운동가의 시신을 훔쳐갔다. 그때 그 자리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꼭 20년전, 5월 7일 새벽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벌어진 이 장면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것은 도장처럼 꾹 찍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빚어낸 초현실, 공권력이 보여준 괴물성 앞에서 '말'은 힘을 잃는다. 사진은, 20년 전의 과거사를 보여주지만, 그로써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 한겨레신문

꼭 20년 전, 그러니까 1991년 5월 7일 새벽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벌어진 이 장면을, 나는 이튿날 < 한겨레신문 > 에서 보았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특종이었다. 사진적 특종이었고, 슬픈 특종이었으며, 현실이 보여준 초현실이었다. 그를 죽였던 안기부가 발표한 사인은 자살이었다. 그 이름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노동자가 노동자 착취를 돕는 어용노조의 슬픈 현실에서 '양심회'를 꾸렸던 사람이었다. 그 양심선언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죽임이었다.

스무살 즈음, 그 사진을 보았고, 어느새 스무살을 더 먹었다. 그 사진은 오랜 시간 머릿속에 찍힌 도장이었다. 그 이미지를 기억할 때마다 내겐 또 다른 도장, 그 시절 죽음의 장면들, 강경대와 박승희가, 김영균과 김귀정이, 김기설과 윤금이가 순서 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들 곁에 서성대며 혼란에 빠졌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나는 도장 파는 사람이 되었다. 현실이 찍어낸 초현실의 장면들이 예나 지금이나 곁을 맴돈다.

박창수.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주검마저 난자당했던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 비정규직없는세상

얼마 전 남자의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한 버스에 탔다. 흰머리 가득한 꺽다리 노인이 "내가 박창수 애비요"라고 말하기 전에는 그를 몰랐다. 노인의 옆자리에 또 한 명의 노인네, 박종철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애비들을 태우고 버스는 부산을 향해 달렸다. 거기 한진중공업이 있었다. 애비들을 맞은 건 하얀 운동화에 하얗지만 튼튼한 모자를 쓴 사내들, 국가와 자본의 지시를 받든, 그러나 공권력이 아닌, 그래서 더 무자비한 용역깡패들이었다. 그들 곁에서 공권력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애비들은 겨우겨우 담을 넘었다. 만나야 했다. 박창수의 친구 김진숙,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은 정리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삶만을 정리하려는 자본에 맞서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158일째 외로운 투쟁을 벌여온 그녀를 만나야 했다. 노인들은 골리앗 앞에서 울먹였다. 국가의 응답은 "담 넘은 모든 이들의 사법처리 방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므로', 절망으로 가는 희망버스는 재가동됐다. 절망의 벽에서 통곡했던 아버지들을 모시고, 박창수와 김진숙의 평범한 희망을 찾으러 가는 버스는, 7월 9일 다시 떠난다. 희망은, 절망 곁에 있을지 모른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비들은 공장 담을 넘었다. 골리앗처럼 거대한 크레인 앞에서 울먹였다. 거기 김진숙이 있었다. 늙은 아비들에게 그녀는 박창수요, 박종철이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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