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 총장님의 쌈짓돈이 된 등록금

2011. 5.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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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형료로 와인·추석선물 사고 재학생 대화하고 강사료 100만원 챙겨

못다쓴 판공비는 현금으로 찾아쓰고 국고지원금으로 자신의 책 구입해 나눠줘

지난 4월 27일 수요일 저녁. 한국외국어대 100여명의 학과장들이 서울시내의 한 고급 호텔에 모였다. 박철(62) 총장과 교수, 직원 등 80여명이 학교 공금 4억여원을 치과 치료비·피부관리비·학원비 등 개인 용도로 쓴 사실이 교육과학기술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는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긴급 학과장회의'였다. 박 총장은 이 자리에서 "언론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에게 10만원짜리 현금이 든 봉투를 돌렸다.

비리 해명하는 자리에서 뿌린 회의비

 업무 관련 회의이기 때문에 굳이 수당을 지급할 이유가 없는데도, 박 총장은 왜 돈 봉투를 돌린 것일까. 이날 봉투를 받은 한 참석자는 "(박철 총장이) 회의비라고 하면서 사인하고 봉투를 받아가게 했다"며 "과거에는 분명 없던 관행인데 박철 총장은 늘 이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학과장 회의를 하면 교수들에게는 50만원, 직원들에게는 10만원 정도가 담긴 봉투가 지급됐다고 한다. 외대의 한 교수는 "박 총장이 총장 연임을 위해 교비와 와인을 뿌려가며 우호세력을 관리해왔다"고 주장했다. 2006년 외대 총장에 취임한 박 총장은 2009년 말 연임에 성공했다.

 박 총장은 지난 3월 교과부 감사에서 대외 홍보비 1억600여만원을 영수증 없이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 교과부는 박 총장이 이 돈을 개인 용도로 횡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도 부적절한 교비 사용은 계속되고 있다.

 1998년 편입학 비리가 터져나와 재단(동원육영회)이 붕괴됐던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외대)에서 13년 만에 또 다시 부패 의혹이 터져나왔다. 이번엔 박철 총장이 의혹의 핵심이다.

 간헐적으로 언론들이 단신으로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외대 핵심 관계자들과 일부 교직원들은 그동안 박 총장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해왔는지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쌈짓돈 만들기 전방위 작전

 <한겨레>는 외대 재무회계팀이 보관하고 있던 현금출납장을 입수했다. 2006년 3월1일부터 2009년 2월28일까지 박 총장 재임 1기 회계 기록을 보면, 박 총장은 학생들의 입시전형료 약 120억원 중 5600만원을 고급 와인과 추석선물을 사는 데 썼다.

 박 총장이 각종 명목으로 부당한 수당을 챙겼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 교직원은 비교적 최근의 사례를 소개했다. 교육부 감사 문제로 외대 안팎이 시끄러워지자 지난 4월 박 총장이 재학생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도 박 총장이 특강료 100만원을 챙겨갔다는 것이다.

 외대는 외대부속외고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에서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학교기업 '아이 외대'를 경영하고 있다. 이 기업의 대표이사는 박철로 되어 있다. 총장의 부적절한 행동은 이 회사에서도 발견된다. 아이외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2008년 2월 어학연구소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캠프를 진행해 3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이때 박 총장은 아이외대 쪽으로부터 8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아갔다. 서정석 당시 용인시장과 아이외대 사이를 연결해 업무협약을 체결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였다. 당시 아이외대 직원들은 박 총장에게 부적절한 인센티브라고 항의했지만 박 총장의 인센티브 챙기기는 매년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규정에도 없는 인센티브라는 비판이 계속되자, 아이외대는 2010년 7월30일 '순이익 발생에 기여한 교직원에게 순이익의 20%까지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못 다 쓴 판공비 찾아오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한 외대 교직원은 2007년 박 총장의 이상한 업무지시를 털어놨다. 학교 재정을 관리하는 부서에 근무하던 이 직원은 어느 날 총장으로부터 은행에서 판공비 300만원을 찾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총장은 "(내가)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돈을 다 못 썼으니 나머지를 다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사립학교법의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 위반이다. 규칙 제4조 및 제33조를 보면, 학교 돈을 현금으로 찾아 쓰면 안 되고 금융기관의 수표나 계좌이체를 통해야 한다. 박 총장이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 교과부 감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박 총장에게 이렇게 돈을 찾아다준 직원들은 부적절한 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이라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가 부당하게 사용한 돈에는 국고지원금도 있다. 박 총장은 지난해 5월 모두세 차례 열린 입학사정관제 관련 세미나에서 학생과 교사들에게 자신의 저서 <돈키호테를 꿈꿔라> 600여 권을 기념품으로 나눠줬다. 비용은 입학사정관제 촉진을 위한 국고 지원금으로 처리했다. 입학사정관제 지원금을 자신의 책 구입을 위해 썼다면 고등교육법 위반 소지가 있다. 당시 교직원들은 박 총장에게 부적절한 예산 사용이라고 건의했지만 박 총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박 총장은 학내 건설공사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외대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은 "박 총장이 (주)진아건축도시에 공사 설계를 맡기려고 직접 발 벗고 뛰어다녔다"고 전했다. 박 총장은 재단 이사들을 찾아다니며 진아건축도시에 설계를 맡기도록 설득했다. 입찰 관련 실무를 맡았던 외대의 한 직원은 "박 총장이 진아건축도시 쪽에 사전에 입찰 정보를 흘려주라고 해서 내가 직접 설계 관련 정보를 알려줬다"며 "총장 지시라서 거절도 못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대 동문들은 박 총장이 이 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신 리베이트를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일 박 총장을 리베이트 수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진아건축도시는 박 총장의 형 박강수 전 배재대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이후 외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981억원대 규모의 신축공사에서 액수상 약 94%의 설계를 도맡아왔다(사업 초기 단계라 비용 산정이 안 된 경영관 건립비용은 통계에서 제외).

학생들에게 "기부금 1억원 넘는데 용납해달라" 

 박 총장을 둘러싼 의혹들은 교과부 감사를 계기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지금까지 수면 아래 묻혀 있을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외대 안팎에서는 현 정권 실세가 박 총장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선영 전 외대 교수(서반어과)는 현재 외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남기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장 전 교수는 "얼마 전 동료교수가 찾아와 '박철 뒤에 ○○○이 있는데 괜한 일 겪지 말고 이제 그만하라'는 충고를 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재단도 박 총장을 감싸고 돈다. 교과부 감사 결과에 따라 박 총장에게 단순한 경고와 주의 정도의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치솟는 등록금으로 괴로워하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낸 돈이 부당하게 사용된 데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외대 총학생회는 박 총장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 총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총장실을 점거할 계획이다. 지난 5월17일 저녁 열린 비상학생총회에는 재학생 929명이 참석해 총장 퇴진을 논의했다. 박원 총학생회장(외대 국제통상학과 4학년)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학생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박 총장의 태도였다. 이날 비상학생총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박 총장이 사과는커녕 자기 합리화만 하고 있다며 원성을 쏟아냈다. 이 학교 신입생 ㅈ(동양어대 1학년)씨는 "문제가 커지자 박 총장이 지난 4월 학생들을 불러놓고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그 자리에서 박 총장은 '내가 낸 학교 기부금이 1억원이 넘는데 이 정도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용납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총장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소환 조사 시작

 <한겨레>는 5차례에 걸쳐 박 총장에게 여러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외대 홍보팀은 애초 질문지를 미리 보내주면 총장 인터뷰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자세한 취재 내용이 담긴 질문지를 보내자 인터뷰를 거절했다. 대신 서면 답변을 24일 보내와 "주말에 회의할 때만 (학과장 등에게) 회의비가 지급됐으며, 총장 저서는 외대의 정신과 관계 있어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외대에서 13년 만에 터진 부패 스캔들이 말끔히 정리될 수 있을까. 검찰은 지난 20일께부터 외대 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홍보부 서면 답변

다음은 지난 24일 외대 홍보실이 보내온 서면 답변이다. 박철 총장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박철 총장이 판공비를 임의로 빼내 쓴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사실이 없다.

-박철 총장은 근무시간에 수행한 업무에 대해서도 각종 수당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이유가 뭔가.

=교수는 연구와 강의라는 주된 업무 이외에 기타 위원회 활동, 강연, 출제, 심사, 채점, 자문 등 부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대학은 일반 직원이나 공무원과 달리 교수에게 별도의 수당이나 수고비를 책정하는 보상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업무 수행에 대한 보상으로서 지급되는 수당은 당사자의 직위, 업무의 강도, 업무의 중요성, 업무수행을 위한 예산의 배정 정도 등에 따라 다르게 정해지게 된다. 총장의 경우에도 이에 준하여 학교의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집행되고 있다.

-박철 총장은 교직원 회의를 할 때마다 돈봉투를 돌렸다는 증언이 있다. 돈봉투를 돌리는 이유가 뭔가.

=교직원 회의시에는 약간의 회의비 및 교통비가 지급된다. 교수의 경우 전체 교수회의가 일년에 한번 1박2일의 일정으로 지방에서 개최되며, 직원의 경우에도 일년에 한 번 1박2일의 일정으로 지방에서 개최된다. 강의 또는 학생들에 대한 학사서비스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통상 토요일을 포함하여 개최한다. 이 때문에 약간의 실비를 지급한다.

-입시와는 상관없는 고급와인과 추석선물을 사는 데 입시전형료를 사용한 이유가 뭔가.

=학교의 대외 위상제고 활동 등을 위해 병당 2만5000원 이내의 학교 와인을 구매해 활용하고 있다. 이 와인에는 학교의 로고와 전경이 인쇄돼 있다. 그러나 입시전형료로 이를 구입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박철 총장이 지난해 5월 열린 입학사정관제 신입생 세미나에서 국비로 자신의 저서를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유가 뭔가.

=신입생을 위한 학교소개 행사 때 학교 기념품 또는 책을 선물하는 경우가 있다. 해당 도서는 입학사정관실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며, 선정 이유는 (박 총장의) 책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우리 대학교가 추구하는 젊은이의 열정, 도전정신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박철 총장이 외대 캠퍼스 공사와 관련해 (주)진아건축도시에 입찰 정보를 미리 알려주었다는 외대 직원의 증언이 있다. 이렇게 한 이유가 뭔가.

=(질문에 답변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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