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외고 지원 학생 가려내려.. 대학생도 못푸는 中3 영어시험

입력 2011. 3. 30. 02:39 수정 2011. 3. 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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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키우는 학생 평가]변별력 높이려 고난도 문제 출제교사 추천서 대필·학생부 조작도

외고 입시가 영어 교육 왜곡시킨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47)씨는 지난해 아들이 다니던 J중학교 3학년 1학기 영어 중간고사 서술형 시험 문제를 보고 놀랐다. 'Do you think comic books are good for children? Use details and examples to support your response(만화책이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구체적인 사실과 사례들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써보시오)'라는 내용의 영작 문제였다.

답안지에는 Introduction(도입), Reasons or examples(이유 혹은 예시), Conclusion(결론)의 3부분이 명시돼 있었고, 각각의 항목에 맞게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했다. 답안 작성 조건도 까다로웠다. 각 문장은 다섯 단어 이상으로 쓰되 도입과 결론 부분에 동일한 문장을 쓰지 못하도록 했고, 서로 다른 단어를 이용해 표현하도록 했다.

박씨는 "우리말로 작문하기에도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내용인데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영작하라는 것은 중3 수준엔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며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S중학교 3학년 1학기 영어 중간고사 서술형 시험에는 'easily upset or timid'라는 영어 설명만 달랑 제시한 채 이 설명에 맞는 영어 단어를 알아맞히는 문제가 나왔다. 답안지에는 7개의 철자가 들어갈 빈 칸이 있었고, 맨 마지막 칸엔 힌트 명목으로 s가 들어가 있었다. 정답은 '신경이 예민한, 겁을 잘 먹는'의 뜻을 가진 'nervous'였다. S중 영어 시험에는 비슷한 문제가 여럿 출제됐다. 'like to happen or be true'을 제시하고, p로 시작하는 8개의 철자로 된 단어(정답 probably)를 물었고, 'to decide or find an answer to'를 제시하고, w로 시작하는 숙어(work out)를 알아맞히도록 했다. 이렇게 5개의 단어를 알아맞히도록 한 뒤 최종 문제는 각 단어의 3번째 철자를 차례로 이었을 때 만들어지는 단어를 적어내는 것이었다.

학부모는 "대학 영문과에 다니는 아이의 과외 선생도 풀지 못하더라. 중3 아이들에게 이런 문제를 내는 것은 일부러 틀리게 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목동 J학원의 영어 강사 김모씨도 "영어 설명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면 맞히기 힘들고, 단어의 수준도 높은 편인데다 5개의 단어를 모두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중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학교의 영어 내신 시험이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전문 기업인 하늘교육이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서울시내 중학교 365곳의 3학년 내신 성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학생의 영어 내신 시험 평균 점수는 2009년 63.6점에서 2010년 62.7점으로 0.9점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 영어 평균 점수도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18곳이 2009년에 비해 2010년 점수가 하락했다.

학교별로는 2009년에 비해 10점 이상 영어 평균이 떨어진 학교가 18곳이나 됐고, 5점 이상 하락한 곳은 70곳이나 됐다. 서울 지역 중학교 5곳 가운데 1곳은 영어 성적이 5점 이상 떨어진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부터 바뀐 외국어고 입시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가 지난해 영어 내신 성적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하자 일선 중학교에서 영어 내신 성적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시험을 어렵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외고에 지원하려는 상위 4%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해 나머지 96%의 학생들이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 A중학교 영어 교사인 이모씨는 "외고 지원자는 영어 내신 1등급(상위 4%)이어야 안심할 수 있는데 만일 만점자가 4%보다 많으면 1등급 학생을 가려낼 수 없어 시험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며 "중하위권 학생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시험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시험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놓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이 확대되자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의 표절과 대필이 성행하고 있고, 일부 고교에서는 전형에 유리하도록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편법과 불공정 평가는 교육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편법과 거짓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실한 평가의 문제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의 취업 등에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학점 부풀리기가 만연해 있다. 이 때문에 취업이나 유학 때 대학의 성적증명서가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게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핀란드 공부혁명>의 저자인 박재원 비상교육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은 "상위권 극소수만을 위한 현행 평가제도는, 학생들의 개성이 발휘되고 서로 돕는 능력을 키워주는 제대로 된 교육을 가로막고 있다"며 "주객이 전도된 현행 학교 평가방식에 대한 사회적 재검토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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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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