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를 지켜본 '어느 의경의 눈물'

2008. 6. 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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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대가 낳은 절름발이 사생아"

(서울=연합뉴스) 김병조 이유미 기자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72시간 연속 촛불집회가 이틀째 이어지는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세종로 버스 정류장에 한 의경의 편지글이 붙어 있어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A3용지 2장 분량의 글에는 자신을 '경기도에서 기동대 행정요원으로 근무 중인 의경'이라고 소개한 글쓴이가 집회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어느 의경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자작시를 실었다.

필자는 시에서 "당장 교과서와 싸우기에도 바쁜 시간에/ 너는 어째서 촛불을 들고,/ 고작 그것 하나만을 믿고/ 내 더러운 군화발 앞에 섰는가"라며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는/ 나를 원망한다"고 표현했다.

이어 "그들은 시위대가, 폭도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상과 진리와 현실과 규율과 감정,/ 이 수많은 괴리 속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라며 "역사가 내게 어떤 깊은 원죄로 욕보여도 원망하지 않겠다./ 나는 이 시대가 낳은 절름발이 사생아이므로..."라고 한탄했다.

필자는 자작시에 이어 "밤새 뜬눈으로 집회를 지켜보다 건방지게 장문을 내려썼다. 전의경을 대표하지도 변호하지도 않겠다. 그저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의경을 지원해서 미안하고, 동시대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지난 1일 열린 집회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민들이 부상당한 소식이 전해진 뒤 일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어느 의경의 절규'라는 제목으로 자작시가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아침 버스 정류장에 붙은 이 글을 본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경찰의 본분에 충실해야 하는 젊은이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청주에 사는 장형권(43)씨는 "의경 입장에서 동생과 같은 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명령이 내려지면 (시위대를) 막을 수 밖에 없고 (시위가) 격앙되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답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올라온 최홍석(54)씨는 "의경으로서 어쩔 수 없으니까 안타까워서 저런 글을 쓴 것 같다"며 "젊은이로서 요즘 상황을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j@yna.co.kr

gatsb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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