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10만 시대.. "차별 여전해도 한국은 기회의 땅"

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 2011. 2. 2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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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좌절 공존하는 '새로운 한국인'들의 현주소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꾼 외국인이 지난 1월 10만명을 돌파했다. 1957년 2월 8일 대만 국적의 손일승씨가 처음 귀화한 이래 54년 만이다. 귀화자 수는 2000년까지 연평균 34명에 불과했지만 신흥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의 귀화자가 전체 귀화자의 98%에 달한다. 조선족 등 중국인 출신이 7만여 명으로 가장 많지만 러시아· 우즈베키스탄등 출신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성공시대를 일군 귀화자들이 많지만, 배타적 한국 문화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귀화자도 적지 않다. '새로운 한국인'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불법 체류자로 추방도 돼봤고, IMF 때 실직자가 돼 막노동판도 전전했어요."

24일 서울 종로구 인도· 네팔음식점 '두르가'에서 만난 서민수(39)씨는 "한국은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가 묻힐 곳"이라 했다. 서울 종로와 여의도, 경기도의정부등 4곳에서 두르가 체인점을 운영하는 서씨는 네팔 출신으로 2005년 귀화했다. 본명은 '비노드 쿤워'다.

1992년 입국해 의정부 염색공장에서 역한 화학약품 냄새 맡으며 일했지만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32만원에 불과했다. "1년만 일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딱 1년만 더 돈을 모으자고 결심하면서 결국 불법체류자가 됐다"고 했다. 의정부 일대 섬유공장을 전전하던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이때 부인 이지형(37)씨를 만났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그는 그러나 1999년 불법체류자 신분이 탄로나 강제출국됐다. 이씨는 서씨의 강제추방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먼저 네팔로 날아갔다. 2000년 네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씨는 낮엔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밤엔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네팔에 보내는 무역 대행업을 했다. 2005년 자녀 교육과 사업상 이유로 한국 국적을 택했다.

동남아 바이어들과 자주 만나던 서씨는 한국에 동남아 음식점이 별로 없다는 데 착안, 2006년 서울 종로에 인도·네팔 음식점을 열었다. 같은 해 의정부에 2호점을, 2008년 종로구 관철동에 3호점을, 2010년 여의도에 4호점을 열어 이젠 어엿한 사업가가 됐다.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꾼 외국인이 지난 1월 10만명을 돌파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성공시대를 일군 귀화자들도 늘고 있다.

건설장비 무역업을 하는 파키스탄출신 아프자르 하이데르(32)씨는 작년 5월 귀화했다. 그는 2000년 9월 입국해 한 대학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경기도 안양의 컴퓨터 부품 수출업체에서 통역 일을 했다. 하지만 한국어와 문화가 익숙지 않아 실수를 반복했고, 외톨이의 서러움도 겪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어학원에서 만난 지금의 한국인 아내였다. 둘은 2003년 결혼했다.

그는 2004년부터 서울 마포의 한 해운회사에 다니며 해운업무를 배워 2005년 무역회사를 설립, 건설장비 등을 인도·파키스탄· 두바이등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사기를 4번이나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아내 명의로 대출을 받고, 파키스탄 아버지가 땅을 팔아 보내준 돈으로 다시 시작했다. 결국 재기에 성공해 현재 한 달 평균 컨테이너 10개 분량을 수출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세상 물정 몰라 사기를 당했지만, 자기가 한 만큼 보상을 받는 원칙이 가장 확실한 나라가 한국"이라며 "솔직히 고향 사람인 파키스탄 사람보다 한국인을 더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귀화자들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외부인에게 폐쇄적이고 외모나 말투에 따른 차별이 심하다"고 말했다. 10만 번째 귀화자인 로이 알록 꾸마르(55) 부산외국어대 인도어과 부교수는 "귀화자나 외국인에게 과한 관심을 보이거나 차별적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며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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