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달린 채 아기는 힘겹게 울고..18살 엄마는 떨기만 했다

입력 2013. 11. 27. 10:00 수정 2013. 12. 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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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베이비박스, 버려지는 아기들 ① 르포/주사랑공동체 '슬픈 아기함'

 18살 엄마는 떨고 있었다. "어떡하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 품에서 운동복에 덮인 채 힘겹게 울음을 토해냈다. 몸 곳곳에 양수가 묻어 있고 정리 안 된 탯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입술은 새파랬다. "저체온증이 온 것 같아요. 빨리 따뜻한 물로 씻겨야 해요."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59) 목사는 다급했다. 교회 전도사와 봉사자들이 아기를 넘겨받아 씻기기 시작했다. 탯줄은 이 목사가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지난 10월31일 오후 4시께,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 강소희(가명·18)양이 아기를 안고 나타났다.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경기 북부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강양이 이날 아기를 낳은 곳은 집 화장실이었다. 아기를 낳자마자 남자친구에게 연락해 택시를 타고 교회로 달렸다. 아이를 씻길 틈도 없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는 '베이비박스'가 있다. 미혼모·미혼부들이 아기를 놓고 갈 수 있게 만들어둔 일종의 보관함이다. 아기를 길거리에 버리거나 목숨을 잃게 하지 말고 차라리 이곳에 두고 가라는 뜻에서다. 강양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지 않고 교회 안으로 직접 안고 들어왔다. "그곳에 아기를 넣는 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같아서요." 어린 엄마는 고개를 못 들었다.

강양은 이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아기를 낳으면서 피를 많이 쏟은 탓이다. 정영란(44) 전도사가 끓여온 미역국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못했어요. 부끄럽고 죄송하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낙태도 생각했는데 차마 그럴 순 없어서…." 강양은 배가 불러오면서 항상 복대를 하고 다녔다고 했다. 집에서도 헐렁한 옷만 입고, 부모님과 마주하는 일도 피했다. 18살 여고생은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위태로운 시간을 버텨왔다.

1시간여 동안 어린 부모와 이야기를 나눈 이 목사는 두 손을 모았다. 몸은 떨어지더라도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가 되게 해 달라고, 아기가 사랑 안에 자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삼키고 있던 울음소리가 강양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고개 숙인 18살 아빠는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창밖으로 어둠이 스며들었다. 이날 아기는 홀로 남겨졌다.

전국 하나밖에 없는 베이비박스낳았지만 기를 용기 없는 부모들20일 동안 18명이 버려져작년에만 유기아동 235명인데정부 지원은 전무한 수준미혼모 양육지원도 월 7만원뿐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태어난 생명이 또다시 그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부모에게 버림받는 일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연도별 유기아동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버려진 아동 수는 235명에 이른다. 버려진 아동은 2008년 202명에서 2009년 222명으로 늘어난 뒤 2010년 191명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2011년 218명, 2012년 235명으로 또다시 증가하고 있다.

미혼모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생명을 잃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울산에서 30대 미혼모가 주유소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뒤 버려두는 바람에 아기가 숨졌고, 2월에는 경남 김해의 한 야산에서 20대 미혼모가 암매장한 영아가 발견되기도 했다.

교회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만나는 일이 그나마 다행인 까닭이다. 강양이 떠나고 나흘 뒤, 또 한 명의 아기가 버려졌다. 밤 9시20분께였다. 교회에서 생활하는 20여명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교회 2층 스피커에서 '딩동' 하고 벨이 울렸다. 교회 바깥에서 누군가 베이비박스를 여닫았다는 신호다. 베이비박스는 교회 벽면을 뚫고 설치해 놓은 터라 바깥쪽에서 베이비박스를 열고 아기를 넣으면 안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사와 봉사자들이 1층 베이비박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속싸개로만 싸인 아기가 흰 쪽지와 함께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보라색 펜으로 '2013/10/29, 오후 5:00'라고 적혀 있었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 태생과 관련해 단 한 줄의 정보만 지닌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울고 있었다.

벨은 이틑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울리고 또 울렸다. 아침저녁으로, 세상이 깊이 잠든 새벽에도 벨은 울려댔다. <한겨레> 취재진이 베이비박스를 찾은 10월31일부터 지난 19일까지 20일 동안 이곳에 버려진 아이들은 18명이었다. 10대·20대 미혼모의 아기들, 부모의 생활고로 버려진 아기들, 불륜으로 얻어진 혼외 아기들, 장애를 가진 아기들….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도망가 아빠가 데려온 아기도 있었다.

"버려진 아이들 가운데는 근친상간이나 성폭행으로 얻어진 아이들도 있어요. 그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10대 미혼모 아이들이에요. 그다음이 10대가 아닌 미혼모 아이들, 불륜으로 얻어진 아이들 순이죠." 정영란 전도사가 말했다. 베이비박스에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아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베이비박스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손길은 전무한 수준이다. 아이들을 거두고 지원하는 곳은 대체로 사설 시설들이다. 이런 시설들은 운영비를 시민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전액 후원으로 운영되는 베이비박스는 정부로부터 철거 요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인가 시설이며 아동유기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정영란 전도사는 "국가가 나서서 유기아동과 미혼모를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지는 않은 채, 있는 시설부터 철거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혼모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양육비로 지급되는 월 7만원이 전부다. 이마저도 지난 8월, 5만원에서 2만원이 오른 것이다. 8년 만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대책이 없다. 가족이나 시설 등의 도움이 없다면, 정부 지원금만으로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미혼모는 없다.

정부는 아동보호시설과 관련된 사항은 '지방이양 사업'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5년부터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던 아동시설 등의 사회복지사업들이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넘어갔다. 정부가 유기아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자체에 권고할 수는 있지만 강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지방정부는 아동복지에 대한 정부의 이중잣대가 혼란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어린이집 같은 데는 국비를 지원하면서 버려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기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선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을 강화하고 미혼모 지원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유기아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제도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은 "공동육아나 사회적 돌봄서비스를 마련해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이나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김효진 박수지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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