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개 재판', 동물은 물건인가 아닌가?

2012. 8. 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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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고소당한 동물보호운동가

주인은 열악한 환경이지만굶기진 않았다고 주장검찰도 징역1년을 구형변호인은 이득 취할 목적일때절도가 성립된다고 항변30일 법원 판결을 앞두고"방치도 학대, 긴급구조 합법화"동물단체 촉구가 이어진다

데카르트가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 지칭한 이래 인간은 동물과 달리 호모 파베르(도구를 쓰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로퀜스(언어를 쓰는 인간) 등 다른 존재로 정의되어 왔다. 근대법 체계에서도 인간 아닌 것은 모두 물건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동물행동학 연구는 인간의 독보적 지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침팬지는 도구를 쓰고 돌고래는 경주를 하고 더 많은 동물들은 고유의 언어를 쓴다. 대체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무언가? 과학자들에게 회의론이 퍼지는 사이 근대법도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차를 타고 가던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의 귀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차를 세운 그는 울부짖는 소리를 쫓아 야산에 올랐다. 소음의 진원지는 좁고 허름한 개 농장이었다. 개 여러 마리가 뜰장(철제그물 위에 개가 살고 그 밑으로 배설물이 떨어지는 구조)에 갇혀 있었고 배설물은 10㎝ 이상 쌓여 있었다. 지난 20일 박 대표가 말했다.

"누가 봐도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추운 날씨에 배설물이 얼었다 녹은 흔적이 보일 정도로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밥그릇에도 먹이를 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죠. 목줄 여러 개와 빈 소주병, 칼과 도마 그리고 솥단지까지 보였습니다. 닭들도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고요."

며칠 뒤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밥그릇은 말라 있었고 개들은 컹컹 짖어댔다.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락처가 담긴 쪽지를 붙이고 가죠. 그렇게 주인을 만나 동물을 포기할 생각이 없냐고 하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파는 건 어떠냐고 설득하거든요. 이번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박 대표는 동물들을 구조하기로 결심한다. 11월26일 새벽 3시, 박 대표는 활동가 3명과 함께 개 농장에 잠입한다. 절단기로 뜰장의 자물쇠를 뜯고 발바리 5마리와 닭 8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이튿날 개 소유주인 김종철(가명)씨는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김씨는 21일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물쇠가 부서진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죠. 처음엔 그냥 좀도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달 뒤 동물사랑실천협회에 (구조) 동영상이 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저도 열악한 상황에서 사육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매일 노인복지회관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얻어다 줬어요. 굶기진 않았어요."

재판 서류에 표기된 김씨의 직업은 '약탕집 운영업자'다. 그는 문원동 야산에서 10마리 안팎의 개를 13년 동안 길러왔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절도일까? 정당한 동물 구조 활동일까?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 16일 두 번째 공판에서 박 대표에게 특수절도죄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절도죄와 달리 특수절도죄는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다. 동물보호활동가가 징역형에 처할 위기에 빠진 것이다.

법적으로 보면 동물은 '물건'이다. 동물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도 당연히 '절도'다. 하지만 박 대표 쪽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절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제니스의 김동훈 변호사가 말했다.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목적(불법영득)으로 물건을 훔쳐야 절도가 성립됩니다. 박 대표는 동물을 데려와 자기 비용으로 치료하고 먹이를 줬습니다. 일반적으로 훔쳤다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건데, 박 대표는 오히려 자신의 돈을 썼어요."

김 변호사는 또 박 대표의 행위가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도 들었다. 형법 20조는 이를 정당행위로 규정해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박 대표가 훔쳐도 될 정도로 문원동 야산의 개들이 절박한 상황이었는가는 이번 재판의 또다른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동물보호법은 일부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도살하는 행위, 도구나 약물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 동물을 오락이나 도박에 이용하는 행위 등이 동물학대다. 당시 개들이 법이 규정한 학대 상황인지에 대해선 양쪽의 말이 엇갈린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4조는 국민이 동물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며 "박 대표는 이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을 '훔치는'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급박한 상황일 때에는 소유자의 허락 없이 동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방치하면 생명을 잃거나 상습적 학대로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일 때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경우 한 노숙자가 자기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 개에게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한 사건(2011년), 한 할아버지가 같은 이유로 개의 두 귀를 하나로 꿰맨 사건(2007년) 등에서 '긴급 구조'를 실시한 적이 있다. 박소연 대표가 말했다.

"법적으로 재물일진 몰라도 동물은 엄연히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입니다. 동물보호운동가로서 생명이 학대받는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순 없죠. 도살 직전이거나 법적으로 해결 방법이 없을 땐 어쩔 수 없어요. 실제로 여러 번 그런 방법을 썼고요."

국내에선 현재까지 동물보호운동가가 절도죄로 처벌된 적은 없었다. 대부분 동물 소유자가 고발하지 않았거나 실제 수사에 이르렀어도 정상 참작이 됐다. 동물 구조로 유명한 박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2006년 인천 '장수동 개지옥' 사건 때에도 소유자가 절도죄로 고발했지만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국가가 나서 학대받는 동물을 구조할 수는 없을까? 동물보호법에는 '보호 조치'라는 게 있다. 동물학대를 발견한 사람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동물을 소유자에게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물 보호 조치는 구체적인 시행령이 없어 거의 실행되지 않고 있다. 담당 공무원조차 이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동물단체들은 지적한다. 이 조처가 시행된 거의 유일한 사례는 지난 6월 경남 거제시에서 술에 취한 소유주에게 상습적으로 몽둥이로 맞은 개가 구조돼 보호소로 이송된 정도다.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동물단체는 정신적 학대나 방치도 동물학대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농림수산식품부는 그렇게 할 경우 너무 많은 범법자가 생길 거라는 점을 우려한다. 박 대표는 동물학대의 빈 공간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2007년 한 케이블방송이 돼지를 번지점프 시킨 적이 있었어요. 돼지는 엄청난 공포를 겪었죠. 경찰에 동물학대로 고발했지만 상해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았어요."

지난 1월 전북 순창군에서 벌어진 '소 아사' 사건도 이런 점에서 논란이다. 한 농장주가 정부의 한우 정책에 항의해 정부가 제공하는 사료 급여를 거부하며 소를 집단으로 굶어 죽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동물학대로 봤고 이런 해석에 따라 순창군은 농장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가들은 동물학대 범주를 확대하고 지자체뿐만 아니라 민간 동물보호단체도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대표의 1심 판결은 30일 내려진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동물단체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유죄가 선고되면 동물단체가 해왔던 '긴급구조'가 상당 부분 제약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 휴메인소사이어티 등이 박 대표의 무죄 판결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내는 등 이 문제는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사이에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박 대표가 구조한 발바리 5마리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의 동물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임신한 발바리는 구조 직후 새끼 여러 마리를 낳았다. 이 가운데 '리카'는 입양돼 지금 서울 포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산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동물은 물건, 동의하십니까

동물은 물건인가 아닌가?

 민법 98조는 '유체물(공간을 차지하는 존재)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동물은 자연력, 곧 물건이다. 일반적인 물건과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동물이 재판에선 똑같은 취급을 받는 이유다.

 다른 나라 법률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물을 긴급 구조하는 동물보호단체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 위를 위태롭게 오간다. 동물 관련 소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김동훈 변호사는 "외국에서도 동물단체가 개인 소유의 동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례가 한해 수백건에 이를 정도"라며 "영국의 대표적인 동물단체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도 여러 차례 검찰에 기소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나라에선 동물을 조금 다르게 정의하기도 한다. 동물을 물건과 동일하게 정의하던 독일은 19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법률에 의해 특별히 보호를 받는다'는 조항을 민법에 추가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도 민법 등에 '동물이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넣어 시행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동물을 인간도 물건도 아닌 제3의 섹터에 분류한 것"이라며 "판사가 좀더 폭넓게 법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뒀다"고 설명했다. 법률상 인권 개념처럼 동물권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건 아니지만, 동물을 '100% 물건'으로 보지 않도록 제한 장치를 달아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물 관련 소송 가운데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게 '의료 분쟁'이다. 동물병원에서 치료하던 반려견 등이 숨졌을 때 보호자가 의사의 과실 책임을 묻는 경우다. 반려견은 물건이기 때문에 승소해도 중등 품질의 '물건 값'만 보상될 뿐이다. 최근 들어선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 반려견 상실로 인한 보호자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건의 상실'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는 점을 비쳐보면, 이는 동물에게 '물건 아닌 성격'도 있음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물 의료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경제적 이득은 변호사 수임료보다 못하다. 김동훈 변호사는 "과거 판례를 보면 반려견의 경우 15만~50만원 정도 지급됐고,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이보다도 적게 책정됐다"며 "사람들은 경제적 보상보다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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