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 "나도 가끔 박근혜에 신비감 느낀다"

글·유인경 선임기자|사진·김석구 선임기자 2012. 7. 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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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경이 만난 사람 > 홍사덕 박근혜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 대통령과 일가에 대해 '법대로' 처리할 것이란 예측은 절반은 틀린 말이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었지 않는가"

만약 '노회함' '노련함'이란 단어가 형상으로 빚어진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홍사덕 전 의원(70)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지난 7월 3일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홍 전 의원에게 15여년 만에 불쑥 전화를 걸어 당일 오후에 인터뷰를 요청했는데도 "아, 반가워요. 공식 인터뷰는 당분간 안하기로 되어 있지만… 음, 뭐 룰을 바꿉시다"란 답을 해서 감동을 주었다. 다른 경선 캠프(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경우 공보라인을 통해서 해라, 순서가 밀려 있다 등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홍 전 의원은 5년 전에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에 박근혜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그의 등장에 정치권에서야 당연하다는 반응이지만 트위터나 인터넷 댓글의 반응은 썩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젊은층에 인기 없는 박 전 비대위원장의 선대본부 좌장이 70세 어르신이라니….

하지만 서울 종로의 '새롭게 하나되는 조국을 위하여'(탈북자들을 뒷바라지하는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책상 옆에 놓인 안마의자뿐이었다. 그는 기자출신답게 기자가 엉터리로 속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고 난해한 사자성어나 현란한 비유법을 쓰지도 않았다. 탁자 위엔 스탈린의 젊은 시절을 담은 책과 읽다가 덮어둔 듯한 당나라의 시집이 놓여 있었다. "두 번째 선대위원장이시네요"란 첫 인사에 "팔자죠"라고 팔자론부터 펼쳤다.

평소 주변사람을 잘 안 믿는다고 소문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임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부드러워야 할 때와 단호해야 할 때를 적절히 구분해 대응한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난 90%는 부드럽게, 불가피한 10%는 맹렬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 혹시라도 박 전 위원장이 다음 사실을 안다면 나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질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타계 후인 1982년에 정치에 입문했지만 야당의원이면서도 일관되게 공정한 평가를 내렸다. 특히 박 대통령이 1964년 독일을 방문해 간호사를 만났을 때 그들이 "각하, 우리는 언제나 한 번 잘 살아볼까요"란 말에 함께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내가 처음 글로 소개해 파장이 컸다. 박 전 위원장은 그건 모르는 것 같다."

김종인 박사가 캠프의 공동좌장이다. 그분도 상당히 까칠한 성격이라고 소문났는데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까.

"김 박사의 발탁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이번 대선의 쟁점과 화두는 복지, 경제민주화, 남북관계다. 복지는 이미 박 전 위원장이 좌클릭했다는 평을 들을 만큼 먼저 능동적으로 깃발을 꽂았다. 경제민주화는 김 박사가 원조 아닌가. 그분이 우리 캠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깃발을 휘날리는 셈이다. 이한구 원내대표와의 (경제민주화) 언쟁 역시 긍정적 논의일 뿐이다."

과묵한 박 전 위원장과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내가 워낙 짧고 압축된 수사법을 쓰고 그분의 말도 짧아 대화량은 많지 않다. 박 전 위원장의 소통능력에 대해서는 3할은 맞고 7할은 틀리다. 정치인 중 하루에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이는 YS고 둘째가 DJ, 셋째가 김덕룡 전 의원일 게다. 박 전 위원장의 일정은 네 번째 정도다. 정말 각계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YS나 DJ는 15~30분 간격으로 사람을 만나지만 대부분 남들이 다 아는 자택이나 당사에서 만나 노출이 잘 되었을 뿐이다. 박 전 위원장은 외부장소에서 만나는 데다 보안을 워낙 중시해서 만난 이들도 입을 꼭 다물어 외부인사와 접촉이 없는 듯 보이는 것이 차이다."

그런데 왜 다들 소통부재를 박 전 위원장의 약점으로 지적할까.

"모든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 그분은 평소 말을 아껴 신중한 이미지와 신뢰를 얻었다. 반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여느 정치인처럼 바로 반응하거나 설명·해명을 하지 않아 오해를 받는다. 경선 오픈프라이머리 문제의 경우도 약간의 설명만 직접 했어도 경선후보자들과 국민들이 납득했을 게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완전국민경선제는 엄청난 돈을 써야 하고 그 과정에 반드시 사고가 나게 마련인데 그럴 경우 본선은 완전히 망친다. 단호하면서도 항공모함처럼 둔중하게 움직이는 성격이라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만 언행의 지나친 진중함이 소통부재란 오해도 받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 때론 독선적이란 비난도 듣는 것 같다."

태도만이 아니라 늘 한결같은 머리모양,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표정이 고루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지 변신을 충고한 적은 없나.

"박 전 위원장은 꾸며내는 일, 작위적인 일은 절대 안 한다.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전략적'이란 표현이다. 선거 캠프에서 브리핑을 할 때도 전략적이란 말을 절대 쓰지 말라고 한다."

한 언론인이 전여옥 전 의원을 비롯, 측근들이 박 전 위원장을 떠난 이유를 '맨입' 태도로 꼽았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는 국물과 고물이다. 김치도 국물이 맛을 좌우하고 떡도 고물이 있어야 하듯 누가 무슨 일을 도모할 땐 국물, 즉 대가를 바라는 심리가 있고 그게 관행이다. 그런데 박 의원은 원리원칙주의자여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니 '맨입'으로 처리해 다들 실망해 떠난다는 것이다.

"난 후배 정치인들에게 우리가 꼭 실현해야 할 가치를 찾아내고 헌신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수시로 한다. 측근에서 밀려났다고 매스컴에 보도된 이들에겐 '나라 생각해서 팔자려니 해라. 기분 나쁘다고 팔자 고치려 말아라. 자세히 보면 네 탓이 클 게다'란 말을 한다. 자리나 대가를 바라고 정치하면 안 된다."

박 전 위원장의 장점과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정수장학회 등 '아킬레스건'이 너무 많아 현재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것을 털고 가지 않으면 대통령이 된 후에도 문제 아닌가.

"일단 정수장학회는 박 전 위원장이 아니라 이사진들이 주인공이다. 현 이사들이 나쁜 짓을 했다면 사법처리를 하면 된다.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은 이사진 교체를 요구하는 것인데 현 이사진보다 더 공정하고 깨끗한 이사진을 구성하란 보장이 있는가. 이건 내 입장이고 박 전 위원장 스스로 입장을 표명할 게다."

육영재단의 경우도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 시절에 만든 것이다. 개인용도가 아닌데 왜 박근령·지만 등 자손들이 맡아 운영하는가. 각종 소송도 5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야는 아직 잘 살펴보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의 인기와 관련, 연예인 신드롬에 비유했다. 어딜 가도 대중들이 달려드는 박 전 위원장의 인기도 비슷하지 않은가.

"인기란 정서적 반응일 뿐 분석 대상은 아니다. 나도 가끔 박 전 위원장에게 신비감을 느끼기도 한다. 전라도 광주에 갔을 때 목포에서부터 박 전 위원장을 보겠다고 아주머니들이 달려왔는데 그런 현상을 어떻게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가. 다만 안 교수의 경우 국가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이 검증받은 바 없고 청춘콘서트 등을 통한 젊은층의 팬덤이라 생각한다. 차인표씨가 나왔어도 비슷했을 게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박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원리원칙주의자인 박 전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 일가에 대해 가장 냉혹하게 '법대로' 처리할 것이란 예측에서다.

"절반은 틀린 말이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었지 않은가. 박 전 위원장은 어느 정치인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부터 내면 깊숙이 대통령직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경선 라이벌이던 MB가 초기에 특사로 나가라고 했을 때도 두말 않고 따랐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게다. 그리고 법대로 처리한들 무슨 걱정인가, (노회하고 유연한) 홍사덕이 곁에 있는데… 하하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을 비롯해 대선 후보마다 정책과 캠페인이 쏟아진다.

"아,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 정말 감탄했다. 가슴을 치는 말이다. 우리도 실현가능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아주 진지한 토론을 진행 중이다. 경제민주화의 중심이 탄탄한 중산층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면 민주주의의 완성은 국민의 절반인 여성 가운데 대통령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박근혜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그런 상징성을 갖는다."

박 전 위원장이 여성임은 분명하다. 그 연배에 그만큼 곱고 우아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가 여성이라는 의식이 별로 들지 않는다. 평소 여성문제에 언급을 하거나 여성단체나 여성의원들과의 스킨십도 드물고 무엇보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여성위원들의 수는 극히 미미하지 않았나. 프랑스 신임대통령 올랑드는 남성인데도 장관의 반을 여성으로 임명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나? 글쎄…."

6선 국회의원이다. 선거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의 자질검사도 필요할 것 같다. 요즘 국회의원들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참 안타까운 것은 한국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발전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치발전에 대해서는 너무 야박한 평가를 내린다. 지난 반세기에 우리만큼 정치가 발전한 나라는 없다. 놀라울 정도로 자질이 훌륭하고 다문화사회를 의정 단상에서 대변할 수 있는 다양성도 확보되었다고 믿는다. 아직 부족한 점은 있지만 그래도 굉장히 발전한 거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물론 정치인들의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꼭 필요할 것 같다. 법보다 인간애가 우선이다."

대선이 끝난 후 어떤 역할을 할 건가.

"선대위원장 제의도 예상밖이었고 대선 이후의 정치활동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후 방송사 임원인 지인들에게 구직 제안을 했다. 내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묵상해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문명평론가'로 인생에서 세 번째 변곡점을 찍으려 한다. 문명평론가로서의 내가 진행하는 고급 대담프로를 하나 진행하고 싶다. 저축이 별로 없으니 방송수입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유다. 새벽시간대여도 상관없다."

홍사덕 전 의원은 시종일관 온화한 표정으로 주변인에 대해서도 "내가 좋아하는 손학규씨" "내 친구인 김덕룡" "훌륭한 김종인 박사" 등 긍정적인 수사가 대부분이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왜 그를 좌장으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신비하다 못해 소통과 해석이 힘든 박 전 위원장을 그가 부드러운 언어로 통역해주는 느낌이다. 해석은 우리 각자의 몫이지만….

< 글·유인경 선임기자|사진·김석구 선임기자 >

이번주부터 유인경 경향신문 부국장과 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의 인터뷰가 격주로 실립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과 '지승호가 만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특별한 인터뷰의 매력을 선사할 것입니다.

경향신문 유인경 부국장은 < 뉴스메이커 > (지금의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 뉴스메이커 > 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연재했습니다.

지승호 작가는 인터뷰집만 29권을 출간한 인터뷰 전문 작가입니다. 2002년 9월 <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출간을 시작으로 11년간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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