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위협하는 자동차 '안전벨트 클립'

박진만 2016. 10. 25.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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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 귀찮다는 이유로.. 경고음 무력화

가격 6000원 안팎… 쉽게 구해

올해 1월 클립 장착했던 운전자

벽에 충돌한 사고로 사망하기도

“불법자동차로 판단할 근거 없어”

정부는 규정 없다며 단속 뒷짐만

택시 조수석에 장착돼 있는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 제거 클립.

대학생 김모(23)씨는 지난 달 서울 영등포구 한 교차로에서 택시를 탔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택시 앞 좌석 조수석에 탑승한 김씨는 안전벨트 꽂이에 작은 ‘액세서리’가 꽂혀 있어 벨트를 맬 수 없었다. 평소 안전벨트를 꼬박꼬박 착용하던 터라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택시기사와 괜히 실랑이를 할까 봐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는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교차로에서 무리하게 직진하려다 급정거를 했고, 김씨는 몸이 앞으로 쏠려 차량 앞 유리에 이마를 부닥칠 뻔 했다. 그는 24일 “사고를 당할 뻔한 후 ‘다시는 앞 좌석에 앉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안전벨트를 눈 뜬 장님으로 만드는 장비가 버젓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목숨을 저당 잡힌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경고음이 나지 않게 하는 장식품이 탑승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고음 제거 클립’이라는 불리는 이 제품은 안전벨트 꽂이에 삽입하는 소품으로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차량 시스템은 착용한 것으로 인식한다.

교통안전공단은 1999년 안전벨트 법제화 이후 2001년 78.5%에 달했던 앞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이 2013년 56.6%까지 떨어지자 조수석에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을 설치한 차량에 신차안전도평가 시 가산점을 주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신규 차량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했다.

그러나 안전벨트를 귀찮게 여기는 탑승자들이 많아지면서 경고음을 무력화하는 꼼수도 덩달아 등장했다. 부부가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10분 거리의 회사로 출근하는 박모(38)씨는 “경고음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어서 벨트 클립을 끼우고 다닌다”고 말했다. 특히 택시들은 고객 편의를 위해 벨트 클립을 장착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택시기사 김모(48)씨는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하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영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클립을 꽂고 운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안전벨트 클립은 온ㆍ오프라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이 6,000원 안팎으로 저렴하고 반짝거리는 큐빅이 박힌 제품부터 귀여운 캐릭터 모양까지 디자인도 다양하다. 자동차소품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박모(60)씨는 “2013년 벨트 미착용 경고음 차량이 생산되면서 이전과 비교해 클립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었다”며 “클립을 자동차 내부를 꾸며주는 액세서리 정도로 인식하는 구매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벨트 클립은 당연하게도 사고 위험성을 크게 높인다. 올해 1월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벽에 충돌한 승용차 안에서 클립이 장착돼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운전자가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관련 규정이 없다며 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안전벨트 클립은 자동차관리법상 차량 구조변경에 해당되지 않아 불법 자동차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단속을 담당하는 경찰 역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안전벨트 클립을 단속할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벨트 미착용 단속을 통해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며 “위해 요소가 큰 만큼 제품 자체를 안전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제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운전자와 탑승자의 안전불감증을 일깨워 주는 경고음을 무력화하는 것은 생명을 볼모로 한 도박”이라며 “정부는 클립 착용을 개인 선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품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는 보완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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