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상금 사양한 '관광버스 義人'

윤형준 기자 2016. 10. 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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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빠질 수 없어.." 인터뷰도 거절한 관광버스 義人] 화재현장 목숨 건 善行 소현섭씨 "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의롭고 필요한 곳에 써주세요" 불길 속 울산관광버스 참변 때 부상자 4명 자기 車로 병원 옮겨 - 교장에게 오히려 고개 숙여.. "義人으로 포장돼 부끄럽고 학교에 누를 끼쳐 죄송" - SNS에선.. "실천으로 윤리 가르친 윤리선생" 제자들 "자랑스러워요" 퍼날라

5000만원 상금과 쏟아지는 찬사를, '의인(義人)'은 "받을 자격이 없다"며 오히려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13일 밤 10명이 사망한 '울산 관광버스 참사' 현장에서 추가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들을 구조한 뒤 자신의 차로 병원으로 옮긴 '관광버스 의인' 소현섭(30·사진)씨가 한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의 '의인상(義人賞)'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수상을 정중히 고사(固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단은 표창과 함께 상금 5000만원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소씨가 한사코 거절해 무산됐다.

이 재단은 소씨에게 상을 받으라고 거듭 설득했지만, 소씨는 그때마다 "상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의롭고 필요한 곳에 써달라" "오히려 상처를 입은 유가족에게 드려야 할 돈이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재단 관계자는 21일 "그동안 희생정신을 기려야 할 의인 20여명에게 의인상을 시상했는데, 이런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소씨는 강원 동해시 묵호고등학교에서 윤리 과목을 가르치는 2년 차 교사다. 그는 지난 13일 휴가를 내고 부모님이 계시는 경남 창원으로 가다 경부고속도로 언양 IC 부근에서 화염(火焰)에 휩싸인 관광버스를 목격했다. 그는 승용차를 세우고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어 부상자 4명을 구해내고, 이들을 자신의 차로 병원까지 옮겼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병원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소씨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한 본지 취재에 "상금을 거절한 것은 맞지만 당연한 일을 두고 의인처럼 묘사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며 "이 일을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씨는 사고 다음 날 일부 언론 인터뷰에 응했지만, 이후에는 추가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지는 소씨의 사연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기사화하기로 했다.

소씨가 구조 활동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부상자들을 치료한 병원도 그가 '교사'라는 사실밖에는 몰랐다. 마침 그에게 구조된 부상자의 가족이 그의 연락처를 갖고 있어 선행(善行)이 늦게나마 드러나게 됐다. 소씨에게 상을 주려 했던 공익재단도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선행을 높이 샀다고 한다.

소씨가 사고를 목격했을 당시 현장은 이미 불길과 기름 투성이였다. 언제 버스가 폭발할지 몰라 섣불리 승객 구조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씨는 망설임 없이 버스로 달려들었다. 그는 사고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불길이 너무 세 무서웠지만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겠다는 생각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본인도 다칠 수 있고, 후송 과정에서 부상자의 상태가 악화될 경우 책임 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런 소씨의 활동이 알려지며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선 작은 파장(波長)이 일었다. 많은 시민이 "실천으로 윤리를 가르친 참 스승"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소씨의 제자들은 "선생님이 자랑스럽다"는 댓글을 올리고 해당 뉴스를 퍼 날랐다. 그러나 정작 소씨는 의인이나 영웅이라는 찬사를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공익재단 관계자는 "선배 교사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잦은 언론 노출로 교사로서 본분을 잊을까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씨는 21일 본지가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연락해도 받지 않다가 학교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비로소 받았다. 그는 "아직 슬퍼하는 유가족이 있는데 내가 의인으로 축하받는 건 옳지 않고 그럴 일도 아니다"며 "상금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애초에 상을 받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며 추가 인터뷰를 거절했다.

소씨는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윤리 교사였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윤리교육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행이 알려진 뒤에도 평소와 똑같은 학교생활을 했다고 동료 교사들은 전했다. 묵호고 홍은만 교장은 본지 통화에서 "지난 17일 교장실에서 소 선생을 만났는데 '의인으로 포장된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며 "칭찬하는데 오히려 '학교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천생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장이 "자칫 위험한 행동일 수 있었다"고 하자 소씨는 "버스 안 승객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소씨가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까닭은 학생들 교육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뷰 때문에 아이들 수업을 빼먹거나 등한할 수 없다. 지금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학생 교육이 내 본연의 임무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큰불이 났을 때 밧줄로 주민 10명을 구한 '동아줄 의인' 이승선(52)씨가 한 공익법인의 상금 3000만원을 거절했다. 당시 이씨는 "이번 일로 칭찬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소중한 돈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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