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합법화" 광화문에서도 한국판 '검은 시위' 열린다

2016. 10. 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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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워마드 등 여성커뮤니티 23·30일 이틀간
복지부 “낙태 의사 처벌 강화 재검토”

“내 몸은 내 선택”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하는 정부의 입법예고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6-10-15 연합뉴스

A(35·여)씨는 지금도 5년 전의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게 갑작스런 결별 통보를 받은 뒤 A씨는 뒤늦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생명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전 남자친구를 찾아 갔지만 그는 이미 또 다른 여성을 사귀고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아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도, 아이도 불행해질 것 같았다. 눈물로 몇날 며칠을 지새며 고민하던 A씨는 결국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의 부모는 “여자가 그런 수술까지 받고 몸을 버리다니 집안의 망신”이라며 “결혼하긴 틀렸으니 차라리 산에라도 들어가서 속죄하고 살라”고 힐난했다. A씨는 “충격으로 홧김에 하신 말씀이었지만 두고 두고 상처가 된다”며 “서로 사랑해도 결국은 왜 여성들만 모든 책임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생 죄인으로 숨죽여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흐느꼈다.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시술을 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지난달 입법 예고한 뒤 논란이 커지고 있다. 폴란드의 ‘검은 시위대’에서 착안해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들이 잇따라 거리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와 여성커뮤니티 연합은 오는 23일과 30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이들은 ‘낙태’라는 단어 대신 ‘임신중단’이라는 표현을 써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행사 주최 측은 “개정안은 표면적으로 불법낙태 수술의에 대한 처벌 강화지만, 결과적으로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 결정권을 억압하게 될 것”이라며 “시위를 통해 임신중단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알리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 유형을 8가지로 제시하며 여기에 불법 낙태수술을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집도의 자격정지 1개월이라는 기존 처벌 기준을 최대 12개월로 늘리는 등 상향시켰다. 이후 의료계와 여성계의 거센 반발이 일자 복지부는 관련 규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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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 합법화 시위 기획단은 “우리 사회에선 생명의 존엄성을 이유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범법자가 되고, 위험 속에 죽어가는 현실은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모든 여성은 자유롭게 이를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절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여성 인권 운동가들은 여성의 주체성과 자기결정권, 낙태를 원하는 대상이 미혼자보다 주로 기혼 여성인 점 등을 이유로 합법화를 주장했다. 임신중절은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들에게 무거운 주제였다. 여성이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문란했을 것’이라는 편견과 낙인이 뒤따랐다.

성폭력에 의한 임신은 중절이 허용되지만 피해 사실을 사법기관에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증명의 어려움과 수치심을 극복해야만 했다. 때문에 복지부의 이번 개정안 입법 예고가 사회적 억압에 짓눌렸던 여성들에게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폴란드에서는 여성들의 전국적인 대규모 항의 시위로 인해 낙태 전면금지 법안의 폐기 수순에 들어간 상태다.

앞서 여성단체와 시민들 수백명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였다. 오는 23일과 30일 열릴 시위는 이와 별개로 여성들만 참여해, 개정안 저지와 더불어 임신중단 합법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불법 낙태수술에 관한 법령은 입법예고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과 자격정지 기간은 전문가 및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면서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복지부는 이르면 19일 차관 주재로 의료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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