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아동 최대 67만명 빈곤에 허덕

남혜정 2016. 10. 1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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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세계 빈곤 퇴치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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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영훈이(10·가명)는 하굣길에 간식을 사 먹거나 가족과 외식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이모, 엄마, 동생 셋과 함께 아홉 식구가 방 3개짜리 반지하 다세대주택에 사는 영훈이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버지는 수년 전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고 마트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건강 악화로 무직 상태다. 외삼촌이 벌어오는 월 140만원에 온 가족이 의지하는 형편이다. 9인가구 최저생계비 245만원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월세 70만원에다 도시가스비, 전기료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고작 40만원 정도. 외할머니는 심장질환과 당뇨를 앓고 있지만 병원비 부담 탓에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영훈이네는 교육급여를 제외한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 단절이 인정되지 않는 바람에 부양의무자 조건에서 탈락했다. 다행히 자치구 측의 도움을 받아 부모가 이혼소송 절차를 밟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으려면 반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아동들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16일 순천향대 허선 교수(사회복지학과)가 최근 발표한 아동 빈곤의 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은 최소 39만명에서 최대 6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복지 사각지대 아동은 소득과 재산 수준은 낮지만 정책 기준상 정부로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차상위가구(19만6779명)와 중위소득 50% 미만의 저소득가구(47만9028명) 아동을 포함한 수치다. 이는 2011년 한국복지패널 조사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로 2012년 이후에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 결과도 없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낸 복지사각지대 빈곤아동가구 현황 분석 및 복지서비스 욕구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사각지대 아동의 생활은 기초생활수급가구 아이들보다 훨씬 열악했다. 공과금을 못 내거나 전기·전화·수도·난방이 끊어지고 아픈데도 병원에 못 가는 고통을 겪는 아동가구 비율이 수급가구보다 차상위계층에서 높게 나왔다. 정부 지원을 받는 아동에 비해 사각지대 아동의 학업 성적과 자존감이 낮아 ‘빈곤의 대물림’ 고착화도 우려된다.

경기도에 사는 세진이(6·가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세진이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월 30만원과 할머니에게 나오는 노령연금(월 20만원)으로 생활한다. 공과금을 내기에도 빠듯한 환경에 사는 세진이는 또래보다 신체발달도 더딘 상황이다.

정부도 이 같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생계·의료·주거·교육으로 세분화한 맞춤형 기초수급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규 수급자가 76만명 증가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현재 33만명 증가에 그쳤다.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이 많다는 얘기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김은정 소장은 “부모가 이혼해 같이 살지 않거나 양육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 실질적인 부양능력이 없는 조부모라도 현행법상 부양의무자이기에 수급에서 제외되곤 한다”며 “부양의무자 선정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대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아동빈곤 해결을 위해 현재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가구 단위가 아니라 아동을 직접적 대상으로 지원하는 아동수당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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