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려도.. 그의 '야구 도전'은 계속된다
28일(한국 시각) 미국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 MLB(미 프로야구) LA 에인절스의 홈 구장인 이곳 마운드에 앳된 얼굴의 한국 청년이 섰다. 그에겐 시구자를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도, 2만여 팬이 보내는 갈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감동의 진동'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관중석을 천천히 둘러본 청년은 능숙한 폼으로 와인드업한 다음 에인절스의 최지만(25)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이날 에인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을 앞두고 시구자로 나선 인물은 청각장애인 야구부 이야기를 다룬 국내 영화 '글러브'의 실제 주인공 중 한 명인 서길원(21)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말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힘들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충주성심학교에 들어간 그는 학교 야구부에서 포수로 뛰며 인생의 좌표를 새로 설정했다.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몇 시간씩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교사 서문은경(43)씨가 "길원이는 목숨을 걸고 야구를 했다"고 말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이 직업 야구 선수가 되기엔 난관이 많았다. 박상수(46) 성심학교 야구부 감독은 "졸업생 중 극소수가 대학에서도 야구에 도전하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길원은 2011년 미국 워싱턴DC의 청각장애인 학교인 갤러데트(Gallaudet) 대학에서 이 학교 부속 고교 야구팀과 친선 경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갤러데트대 커티스 프라이드(48) 감독이 서길원을 보고 "훌륭한 포수다. 졸업한 뒤에 오면 받아주겠다"고 격려했다. 프라이드 감독도 청각장애가 있지만 1993~2006년 메이저리그의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등에서 외야수로 뛴 경력이 있다. 서길원은 장명희 전 성심학교 교장수녀와 미국 워싱턴DC의 한인 천주교신자 모임 등의 도움으로 2014년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갤러데트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현재 이 대학 청각장애인 야구팀에서 포수를 맡고 있다.
서길원 같은 청각장애인이 낯선 외국 땅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2년간 갤러데트대 기숙사에서 혼자 살며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대학 강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영어식 수화'도 새로 익혀야 했다. 요즘은 프라이드 감독의 지도 아래 뛰어난 선수들과 야구를 즐기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국, 미국 친구와 자취 생활도 시작했다. 학교에선 성적이 나쁘면 야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야구 시즌 중에도 오후 8시까지 훈련을 하고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28일 서길원의 시구는 메이저리그 에인절스의 최지만이 주선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2014년부터 서길원을 후원한 최지만은 "난 마이너리그에서 매일 힘든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장애를 딛고 야구에 도전하는 길원이 소식을 듣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면서 "후원을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시구를 마친 서길원은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 스마트폰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인 카카오톡을 통해 문자로 소감을 묻자 "많이 떨렸지만 너무 좋았어요"라는 답장이 왔다. "야구팬들에게 청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행복하다"는 글도 보내왔다. "미국에선 청각장애인들도 노력하면 교사도 될 수 있고 회계사도 될 수 있어요. 불가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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